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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하우스 전- 기계화된 환경 속, 인생이라는 무대/ 이선영

sosoart 2015. 4. 3. 22:13

이선영 

 

바우하우스 전 / 기계화된 환경 속, 인생이라는 무대

이선영

기계화된 환경 속, 인생이라는 무대

바우하우스의 무대실험-인간, 공간, 기계 전 (11.12--2015.2.27,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이선영(미술평론가)

   

나에게 바우하우스는 파울 클레나 바실리 칸딘스키 같은 유명 화가가 교수로 있었던 대안적인 미술교육센터, 또는 20세기 전반기 기하추상이라는 범 유럽적 현상의 독일판, 또는 1920년대 유토피아적 의식으로 충전된 건축과 디자인의 흐름 정도로 기억되어 있었다.  1919년 그로피우스에 의해 설립 되어 데사우와 베를린으로 이동하면서도 실험을 지속해오다가 1933년 국가사회주의 체제로부터 억압받고 결국 문을 닫은 바우하우스는 지금에 와서야 더욱 본격적으로 펼쳐진 현대적 요소들의 실험 무대였다. 바우하우스의 다양한 요소 중에서 무대실험에 역점을 두고 기획 되어, 독일과 노르웨이를 거쳐 한국에 온 이 전시는 예술의 핵심에 있는 어떤 요소를 건드린다. 몇 번 바뀐 교장들이 모두 건축가였던 바우하우스는 과거에 대성당--그로피우스는 [바우하우스 강령](1919)에서 ‘그것은 새로운 신앙의 투명한 상징과 같이 몇 백 만이나 되는 직인의 손으로 언젠가는 하늘에로 높아져 갈 것’이라고 선언했다--이 그러했듯이, 건축으로 싸안을 수 있는 종합예술을 지향했다. 


 

요스트 슈미트, 기계적 무대 층별 상대위치, 1925, 바우하우스 데사우 재단


 

로타르 슈라이어, 연극 남자의 마스크, 1920, 바우하우스 데사우 재단

 

로버트 휴즈는 [새로움의 전통]에서 바우하우스라는 명칭이 애초에 영웅적이고 이상주의적인 과업을 공동으로 수행하는 장인들의 사회를 의미한다고 지적하면서, 유토피아적 집산체제의 상징으로서 성당이 가지는 이미지는 바우하우스 신화의 일부분을 이룬다고 말한다. 그로피우스의 말대로 바우하우스는 집산적인 의지로 만들어진 ‘수정과 같은 새로운 신념의 상징’으로 자처하며, 수도원과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예술과 세계를 개혁해야 한다는 임무에서 그로피우스는 성직자 같은 면모까지 보였다. 조형적 합리주의를 이끈 힘이 반드시 합리주의 였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20세기는 이미 대성당의 시대는 아니었기에 새로운 실험의 무대가 필요했다. 무대는 하나의 소실점만을 가지는 원근법적 공간을 넘어서 다양한 시점과 용도를 요구했다. 모형으로 제작된 그로피우스의 [총체극장]은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무대가 변화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무대란 그 자체가 종합예술이므로 무대실험은 바우하우스의 여러 요소 중의 하나가 아니라 핵심에 있다. 


무대는 표현이라는 기능을 충족시켜야 하는 일종의 건축으로, 바우하우스를 이루었던 다양한 구성원들이 다 같이 참여할 수 있었던 유일한 분야였을 것이다. 바우하우스의 무대실험은 기계화된 환경 속, 인생이라는 무대, 그 속의 인간을 요약한다. 복잡다단한 인생을 무대에 올려 다양한 실험적 유희가 가능했던 것은 인간과 환경(무대)을 기하학적으로 감축한 것에 있다. 감축은 단순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장기판과 그 위의 말들이라는 이미지만 본다면 단순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전시가 주목하는 바우하우스의 무대실험 본질은 감축된 기본 요소들 간의 복잡한 게임의 수를 명쾌한 시각언어로 가시화한 것이다. 기하학적 단순화란 축소가 아니라, 확장을 위한 방법이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까지도 포괄한다. 전시장 곳곳에 배치된 영상과 조형물은 희미한 유물이나 자료를 넘어서, 그 당시를 입체적으로 복구한다. 지금 봐도 재미있고 미래적이어서 놀랍다. 


동영상으로 시연되는 가운데 전시장 한켠에 서있는 기기묘묘한 의상들은 자크 아탈리가 [21세기 사전]에서 쓴 미래의 놀이와 예술을 예견하는 듯하다. 아탈리는 미래의 놀이와 예술이 발레, 콘써트, 마임, 낭독이 뒤섞여 연극의 원조인 종교의식이나 성속의 초월의식과 유사한 축제의 형식을 띄게 될 것이라 예견했으며, 가장 오래된 예술은 이렇게 해서 최신화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단색 바탕에 모서리, 원, 그리드 같은 구조가 있는 추상적인 배경 속에서 가면과 기하학적으로 디자인된 의상을 입고서 자동인형처럼 춤추는 캐릭터들은 자연은 물론, 인간의 육체와 무의식까지 전면적인 코드화가 진행되고 있는 현대를 선취한다. 바우하우스의 무대실험은 코드화가 반드시 부정적인 의미만을 가지지 않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코드화는 챨리 채플린을 당황하게 했던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을 떠오르게 하지만, 거기에는 생산력의 혁명을 통한 인류의 해방이라는 전망 또한 있었다. 


 

 

샤를로트 루돌프, 팔루카와 그녀의 그림자, 1925, 바우하우스 데사우 재단


루드비히 히르쉬펠트-마크, 색채-빛-놀이, 1923년경, 바우하우스 데사우 재단


무대라는 예술의 장에서 실행된 코드들 간의 실험은 ‘녹색과 고동색’으로 상징되는 맹목적 자연과 고루한 전통으로부터의 해방, 맹목과 미몽에서 깨어나 합리적이고 투명한 소통을 구축하려는 집단적 노력이다. 합리화를 통한 생산력의 증대라는 실익이나 편리한 기능을 넘어서 이렇듯 경쾌하고 명쾌한 요소 없었다면, 인간들이 억압과 부자유를 낳을 수 있는 그러한 코드화를 흔쾌히 받아들였을지 만무하다. 코드화는 당시로서는 아직 현실이 아니라 이상이었고, 그만큼 가치중립적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전시의 작품들과 자료들을 보면, 무릇 모든 생성기의 문화운동이 그러하듯이, 가치중립을 넘어서 열렬하게 추구된다. 이러한 과도한 의지는 누군가에게는 무정부주의적인 혼돈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창조적 생성이었다. 종국적으로는 다수가 될 소수의 실험이었고, 그래서 쫒겨 다니면서 실천할 수밖에 없었던 단명했던 문예사조였지만, 오늘날 그들이 생각하고 창안한 모델들은 현실 속에 편재한다. 


20세기 말에야 꽃이 피는 정보혁명에 의해 디지털 언어로 호환될 수 있는 많은 요소들이 아날로그로 구현됨으로서, 그들의 무대실험은 생생하면서도 기이한 현실감을 준다. 생성기에는 모순과 역설을 포함하여 그것이 배태된 실재적 바탕 또한 감지된다. 특히 바우하우스의 무대실험에는 코드와 체계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하는 몸이 현전한다. 몸이 이미 괄호쳐진 디지털 문명, 이에 대항하는 탈 경계화 된 비체의(abject) 육체가 극단적으로 대립하기 이전에, 그 두 국면이 만나는 순간이 바우하우스의 무대실험 곳곳에서 발견된다. 서커스라는 완벽하게 조율된 마술적 무대와 반쯤은 기계인 광대적 존재들은 그러한 실험에 어울릴법한 상황과 인물이다. 바우하우스가 시대와 지역을 넘어서 현대문화와 예술을 관통하는 어떤 정신적, 물질적 자원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별도의 전시공간에 한국의 작가들을 포함시켰다. 



안상수+Pati, 바우야!놀자 집놀이 한글 활자춤, 2014, performance


 

안상수+Pati, 바우야!놀자 집놀이 한글 활자춤, 2014, performance

 

바우하우스의 다양한 무대의상들이 진열된 공간 한 켠에 서있는 백남준의 작품은 전후 바우하우스의 명맥을 이은 구체예술의 한 예이다. 오래된 음향기기와 복잡다단하게 흐르는 현대적 영상이 흘러나오는 모니터로 이루어진 백남준의 작품은 사물의 편에서 소음과 침묵을 예술에 포함한다. 이미지와 소리 간의 현대적 공감각은 미술관 중정에 설치된 오재우의 작품과 중정을 둘러싼 사면의 유리창에 조형적으로 표현한 김영나의 악보에서도 발견된다. 유리창에 다양한 형태와 색채로 구현한 김영나의 작품은 색과 음, 리듬과 형태의 조합을 보여준다. 오재우의 작품은 공업용 파이프를 얽어서 만든 대형 구조물 여러 구멍에서는 구음으로 이루어진 전통가락과 그것을 재구성한 전자음이 반복된다. 오재우의 또 다른 작품은 정형화된 무용수의 동작들을 재편집하여 기하학적 무늬의 흐름으로 만든 것이다. 구음이나 육체같은 자연적 요소가 코드화되어 시청각적 편집 기술을 통과했을 때, 자연도 인공도 아닌 모호한 것들이 생성된다. 


일련의 단위들로 이루어진 구조적 장치는 예술의 중요한 원천인 자연을 새롭게  배치한다. 불투명한 실체는 보다 투명해지고, 투명한 도구는 실재적 원천을 만난다는 점에서 바우하우스의 정신과 닿아있다. 이상하게 왜곡된 한경우의 무대에 들어선 관객은 무대 맞은 편 장소에 비치는 영상에서 왜곡이 시각적 트릭을 통해서 정상화되는, 말하자면 왜곡이 왜곡된 [견디기 힘든 큐브]를 보게 된다. 조소희의 [수공기하학]은 계단에 놓인 접은 구조물을 통해 주변적인 무대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는 작은 존재들을 무대의 전면에 올린다. 안상수+PaTI는 안상수체로 유명한 작가와 그가 설립한 파주타이포그래피 학교가 함께 하는 워크샵을 통해 교수-학생 공동체라는 바우하우스의 선례를 따른다. 바우하우스의 기하학적 스타일은 단순화의 악취미가 아니라, 도시라는 새로운 생태계에서 밀집하여 살게 된 인간들 간의 새로운 상호소통의 방식에 대한 실험이다. 도시의 대중 같은 익명적 타자와 소통하기 위한 방식으로 그들이 몰두한 언어와 문법은 형태와 색채의 요소와 그것의 구조적 법칙으로 구성된다. 


 

오재우, 내부의 유배지, Internal Exile, 2014, Mixed media, Dimension variable. 유리창의 작품은 김영나의 2분 13초.


 

 

한경우, 견디기 힘든 큐브, Intolerable Cube, 2014, mixed media, Dimension variable


기계적으로 보일만큼의 단순화는 추상적인 구성요소들의 기능관계만을 남겨두려는 선택 때문이다. 이 구성 법칙은 자연과 예술에  동일하게 적용되었기에, 무대나 건축 같은 환경 뿐 아니라, 인간 역시 같은 방식으로 코드화 된다. 논리적 투명성을 탑재한 보편 언어를 구축하려는 그들의 시도는 자연은 물론, 추상도 넘어서는 새로운 언어를 요구했는데, 그것은 바우하우스가 있던 독일 뿐 아니라 러시아까지도 포괄하는 국제적 구성주의의 언어, 그리고 전후에 이를 계승했던 구체(concret) 예술의 언어였다. 구성/구체 예술--구성/구체자체가 예술을 지양하는 개념이긴 하지만--의 언어는 19세기말의 상징주의와는 다른 차원의 공(共)감각을 열었으며, 바우하우스, 특히 무대공방은 그 중심에 있었다. 이 전시에서 ‘분위기 장치’라는 항목으로 분류된 작품들에서 발견되는, 빛과 결합하여 운동하는 기하학적 패턴은 자연이나 인간, 그리고 이전의 양식으로부터 자율화된 선, 색, 면으로 구성되는 것들이 환경의 차원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구성주의적 형상’이란 코너에 걸린 기하학적 ‘그림’들은 그 자체의 자족성을 가지기보다는 3차원 이상에서 실현 돼야 할 설계도면처럼 보인다. 현대의 분위기는 더 이상 어떤 존재로부터 만들어지지 않는다. 존재, 그리고 이후에 나왔던 실존이란 개념 역시 지극히 불투명하다. 인간을 포함한 자연은 불투명한 덩어리가 아니라, 낱낱이 합리화되어 공간에 펼쳐질 수 있어야 했다. 기하학적 평면들이 조합되어 이루어진 무대나 무대의상은 물론, ‘조각적인 안무’ 코너에서 집중적으로 보여 지는 추상적 좌표에 맞춰 움직이는 배우들은 구성주의 언어에 내재된 투명한 합리성을 시연한다. 그것은 존재론적 실체가 아닌 요소들 간의 관계를 중심에 놓는다. 그래서 인간의 몸이나 동작 역시 일정한 규칙에 따라 구축되는 구조로 나타난다. 몸 위에 옷이 입혀지기 보다는, 몸은 옷처럼, 옷은 몸처럼 보인다. 몸과 옷은 서로 접속될 수 있는 매체들이며, 침해될 수 없는 본질이 아니라 가변성을 지닌다. 


대상, 물적 실체가 요소들의 관계성, 과정으로 이동하는 것은 근대과학의 방식이었다. 조형예술 역시 과학기술과 호환될 수 있는 보편적 언어의 하나가 되어야 했다. 실재는 과정이 되었다. [과정과 실재]를 쓴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존재의 독립성이란 수세기 동안 철학적 연구를 사로잡아온 오도된 개념이었다. 모든 개별자는 우주의 다른 모든 것들과 접촉하고 연결되는 방식으로만 이해될 뿐이다’라고 말한바 있는데, 과학이나 예술에서 요소들 간의 관계를 실험하기 위한 선재 조건은 분절화였으며, 인간 또한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바우하우스의 무대실험은 보여준다. 물론 이러한 흐름은 바우하우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회화를 ‘자연에 근거한 구축’으로 보았던 세잔은 화가들에게 자연을 ‘원통, 구, 원주로 취급하라’고 하였으며, 이는 20세기의 입체파와 꼴라주 등으로 이어졌다. 가령 1912년 피카소의 작품 [기타]는 구성조각(constructed sculpture)으로, 조각의 개념을 입체에서 면에 의한 구성으로, 하나의 덩어리에서 세분화된 부분으로, 닫혀 진 입체에서 열려진 합성물, 열려진 구조로 전환했다. 


 

발터 그로피우스, 총체 극장(에르빈 피스카토어를 위한 프로젝트), 1926-27, 쾰른대학교 극장콜렉션


바우하우스의 무대 의상들을 보면 얼굴이나 인체 역시 기하학적 요소들로 구성됨을 알 수 있다. 몸의 어두운 내부는 기계처럼 구조화된 단위들의 조합으로 펼쳐져 드러나야 했으며, 인간의 동작 또한 그러하다. 덩어리가 아닌 판의 조합들은 예측과 제어가 더 용이하다. 시뮬레이션은 물론이다. 이러한 실험들을 통해 인체, 또는 인간의 경계를 넘어서 다양한 것들과 접속하고 이질적인 것들을 내부화시킬 수 있는 여지를 최대화 한다. 그것은 자율적 인간이 타율화 되는 것인가, 아니면 이질 접속을 통해 외계로 확장되는 것인가. 재현이라는 전통적 미학을 거부했던 바우하우스로서는 신과 같은 연출자의 시나리오를 재현하는 꼭두각시가 아니라, 인간과 함께 공(共)진화하는, 기계를 포함한 사물과의 접속을 적극적으로 시도하기 위한 방식이었을 것이다. 바우하우스가 재현에 근거한 전통적인 교육 방법이 아니라 교수-학생 공동체의 워크샵이나 축제, 놀이, 파티들을 집단적으로 즐겼음을 염두에 둘 때 더욱 그러하다. 


인간과 공간을 매개하는 것은 기계이다. 바우하우스의 무대실험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인간과 공간 역시 기계의 일종이라는 관념을 깔고 있다. 18세기의 의사이자 철학자 라 메트리를 비롯해 유물론적 철학 전통에서 말하는 기계-인간(L'homme-machine)이 꼭 인간의 부조리한 미래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호흡, 순환, 소화같은 기본적인 생명 과정의 상당부분이 기계적 반사로 이루어져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다만 인간은 ‘보다 완전한 기계인 동물’(데카르트)과 달리, ‘불완전한 기계’(차페크)일 따름이다. 로봇이라는 말을 만든 작가 차페크의 작품에는 이러한 불완전한 기계가 등장하여 러시아 혁명을 암시하는 말투로, ‘인간은 기계가 되지 않을 것이며, 생산을 위한 장치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창조주가 될 것이다’고 외친다. 차페크는 로봇이 사랑이나 공포 따위를 느끼지 못하기에 사람보다 덜 완전하다고 하였다. 


야마구치 가쓰히로는 [로봇 아방가르드]에서 1910-20년대의 작가들이 속이 가득 찬 흙덩이를 파헤치고, 그것을 평면조합에 의한 공간을 포함한 형태로 바꾸어 나가면서, 기계 그 자체가 지니는 합목적성의 조건을 여러 가지 소재로 구성했다고 말한다. 구성주의로 대변되는 1910-20년대의 미학은 환경의 기계화이고, 도시가 하나의 거대한 환경기계가 되는 것이었다. 특히 무대는 기계로서의 인간과 환경을 실험하는 장이었다. 물론 그것은 당시까지도 대세였던 자연주의적인 연극이 아니라, 빛과 음향, 색채를 무대조형의 기초적인 요소로 생각하고, 그에 따라 무대공간을 구상적인 대상으로 취하기보다는 조형적이고 종합적인 방법으로 표현하려는 것이다. 구성주의자들은 ‘인간적인 미숙함, 즉 의외성을 대신하여 완벽하게 훈련된 형태와 운동의 유기체’(나움 가보)를 추구하고, 기계적으로 단련된 몸의 역동성과 공간, 형태, 운동, 음향, 그리고 광선과의 종합을 이루고자 하였다. 


 

오스카 슐레머, 3인조 발레 인물연구, 1924, 바우하우스 데사우 재단


[로봇 아방가르드]에 의하면, 구성주의자들은 이러한 무대에는 생생한 표정과 몸짓을 전달하는 배우가 필요하지 않다고 여겨, 유바 마리오네트(Ubar Marionett)를 썼다. 유바 마리오네트란 인간적인 요소를 배제한 생명이 없는 인형을 말한다. 즉 연극에서 이상적인 연기자는 연출가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으며, 따라서 이러한 동작의 조형을 계산할 수 있는 것이 마리오네트였다. 인간=기계의 주제는 인형극에 의한 실험과 인간의 기계화로 실험되었다. 혁명기 러시아에서도 ‘생물학적 기계론’(알렉세이 간)을 극장의 구성주의의 원리에 적용했던 메예르홀트 같은 작가가 있었다. 러시아 아방가르드들이 기계장치의 메커니컬한 움직임을 인간의 신체를 통해 모방했듯이, 서구의 구성주의자들도 연극에서 배우의 행위를 기계화하고 능률화함으로서, 신체의 로봇화 실험을 했다. 그것은 인간의 신체를 중심으로 한 로봇화의 꿈, 즉 기계화에 의한 미의 추구였다. 


특히 ‘개인의 창조활동과 세계의 일반적인 생산력을 결합시키는 문제’(그로피우스)라는 점에서 기계를 옹호한 바우하우스에서의 실험이 두드러졌다. 바우하우스의 학생이었던 H. 디어스틴은 [바우하우스]에서 ‘공간 속의 인물’이라는 주제에 집착한 화가이자 극작가인 오스카 슐레머의 작업을 소개한다. 슐레머의 목적은 ‘공간 속에 인물을 집어넣어’ 구성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의 회화에 나타나는 마네킹이나 인형은 반은 나무이고 반은 사람인 형상으로, 모든 특수성을 피해 기념비적인 결과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슐레머는 [바우하우스 극장]에서 인간의 퍼포먼스가 전개되는 무대를 공간으로 받아들여 그 속에 형태와 색에 의한 조형적 구성을 만든 다음, 그 추상적 공간 속에서 유기체인 인간이 움직이는 구조를 만들려 했다. 그에 의하면 한 인간의 신체에도 숫자가 내재하고 있으며 인체운동, 리듬체조, 체육의 기하학 등이 대응하는데, 이러한 공간과 신체의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슐레머의 작품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수학적이고 기계적인 무용을 역설했는데, 그의 생각으로 원래 인간은 살과 피로 이루어진 유기체인 동시에, 수와 양으로 된 기계이다. 따라서 신체자체가 기계적 활동을 전개함으로서 그 수학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쓰히로는 슐레머의 무대의상이 인간의 자연적인 형태 위에 주위의 입체적인 공간 법칙이 스며들어있다고 평가한다. 즉 머리 몸체, 가슴, 다리 부분은 공간적 입체적 구조물로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슐레머는 공간의 회전, 방향, 절단의 형태로서 팽이나 소용돌이, 소라껍질, 원반 등의 움직임을 추상적으로 끌어내어 이것을 ‘기술적인 유기체’라고 했다. 디어스틴은 [바우하우스]에서 슐레머의 작품에서 동작은 갑작스럽게 끊어지고 모가 났으며, 율동적이기보다는 움직이는 기하학 같았다고 평가한다. 그의 작품에 출현한 배우들이 원통, 원뿔, 구같은 기하학적 형태를 집합해 놓은 것처럼  의상을 입혀서 개별성과 개성이 모두 제거되어 배우들은 인간이 아닌 듯 보였다. 


 

오스카 슐레머, 공간 춤, 중심을 향한 동작, 1927-28(1989년 유리음화 인화), 바우하우스 데사우 재단

 

전시장에는 슐레머의 [3인조 발레 인물연구]가 3차원 상으로 구현되어 있다. 기하학적 형태들이 인간의 몸을 따라 다양하게 배치되어 있고, 알록달록한 의상을 착용한 무용수의 얼굴은 가면으로 처리되어 있다. 전시된 무대의상들은 옷이라기보다는 조작적인 단위들이 체계와 구조적으로 접속되어 있는 매체들로 다가온다. 디어스틴은 슐레머의 바우하우스 워크숍 무대를 소개한다. 여기에서 학생 3명이 만든 ‘기계적 발레’에서는 두꺼운 판지로 된 형상이 등장하는데, 평평한 기하학적 형상으로만 이루어진 이 공연은 움직이는 추상적인 형상을 가지고 끊임없이 변하는 구성을 창조하려는 시도였다. 이 기계적 발레는 추상적인 인형이 그림자 무용수에 의해 조작되는 자동인형 발레였다. 디어스틴의 기록에 의하면 이러한 류의 공연에 대한 평은 엇갈렸다; ‘아무런 감정도 표현되지 않았지만 오히려 감정이 북받혀 오른다...오로지 유희가 전부이다. 해방되거나 해방하는 유희....음악에서와 같이 순수하고 절대적인 형식이다’ 


반면 보수적인 신문에서는 ‘무의미, 무내용인 농담에 불과하며,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공허한 공간에 불과하다’ 그러나 슐레머의 의도는 결코 기계적, 추상적인 무용이 아니라, 오히려 철저하게 기계적 또는 무의미한 소란 속에서 인간의 내면성을 재구성하려는데 있었다는 것이 디어스틴의 평가이다. 인간과 기계를 동일한 반열에 놓는 바우하우스의 관점은 인간과 기계가 공(共)진화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물론 기계에 대한 감정은 양가적이다. 미술사가 노버트 린튼은 데카르트에서 칸트에 이르는 철학자들을 기능적으로 결합된 요소들로부터 정립된 사고체계의 가치를 주장하였는데, 이것이 에펠탑과 같은 공학의 경이를 성취하였다고 말한다. 기계는 제작공정의 투명성을 의미하면서도 동시에 기계에 대한 감정은 경이로운 것이었다. 기계는 그 비인간적인 측면보다도 조직된 시스템 속에서의 적응력으로 예술가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루이스 헬트, 1924년 11월 29일 바이마르 근교 일름슐로셴에서 오스카 슐레머 부부가 참석했던 바우하우스 파티, 1924, 바우하우스 데사우 재단

 

바우하우스의 설립자인 그로피우스는 ‘규격화는 결코 개인의 로봇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각 개인을 지나친 압박으로부터 해방시켜 보다 고차원적인 장에서 자유롭게 조형력을 증진 시킨다’고 항변했다. 기하학적 형태의 정확성, 선명성, 경제성에 대한 표현에는 순수 예술적 형태를 공리주의적 목적과 결합시킬 가능성이 존재하였으며, 2차 대전 이후 전 세계의 도시를 동일한 언어로 통일한 국제주의의 흐름을 야기했다. 바우하우스의 건축가들이 예견하였듯이 무엇보다도 도시자체가 사회적 기계가 되고 있었다.  인간, 공간, 기계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포괄하는 이 전시는 무대를 현대사회의 축약판으로 보게 한다. 바우하우스는 한 때 기계의 측면이 과도하게 강조되어, 기술에 의한 예술의 지양이 이루어지고, 그래서 예술가적 성향의 교수와 학생들이 떠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전시에서 ‘집단 프로그램’ 코너에 집약되어 있는 그들의 창조적이고도 다양한 예술-놀이는 이상적인 예술가 공동체이기도 했던 바우하우스를 이끌어 갔던 근원적 힘이었을 것이다.  


출전; 국립현대미술관 웹진 ART;MU

 

출처: 김달진 미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