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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사상과 예 법 에 담겨있는 겸손

sosoart 2015. 4. 3. 22:18

한국 전통사상과 예 법 에 담겨있는 겸손
       
       

겸손에 뿌리를 둔 공동체 문화

겸손은 예로부터 심신의 수양과 대인관계에서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중요시해왔다. 다른 사람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낮추는 것, 무조건 자신을 깎아내리거나 모자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타인에 대한 존중에 바탕을 둔 것이 바로 겸손이다. 존중하는 마음에서 겸손이 자라고, 겸손에서 예의와 질서가 생기며, 예의와 질서를 통해 공동체가 유지된다. 겸손은 공동체를 유지하는 기본 토대가 되는 것이다.

우리민족은 아버지를 소개할 때 ‘내 아버지’가 아닌 ‘우리 아버지’라고 한다. 우리가 영어나 서양의 언어를 배울 때도 이해하기 어려운 게 언어적으로 미국은 항상 ‘my father’라고 한다. 우리는 항상‘우리’라는 말을 쓴다‘. 우리가 잘 살아야 돼’라고 해야지 내가 잘 살아야 돼’하면 문제가 된다. ‘우리’라는 굳건한 공동체 의식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우리 민족의 공동체 의식은 국채보상운동이나 IMF 금 모으기 운동, 태안기름유출 사건으로 발휘되었고 대한민국의 저력으로 세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우리 민족에게는 ‘다스림’ 마저도 소수가 다수를 누르고 통제하고 몰아가는 것 이 아니다. ‘다스림’이란 ‘다-살림’으로 겸손함을 가진 소수가 모두를 살리기 위한 ‘지혜로운 배려’와 ‘존중’으로 모두를 하나로 만드는 리더십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상생과 조화,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우리’라는 가치가 살아있는 공동체 의식, 이기심이 아닌 공심을 선택하게 하는 교육, 두루 이롭게 하는 정치, 더불어 살아가는 경제로 공심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 이 바로 오천년 한민족의 철학이다.

01.흥인지문 편액. 태조 이성계는 한양천도 후 공동체를 위한 가르침을 백성에게 알리기 위해 한양의 4대문의 이름에 대입시켰다. ⓒ문화재청 02.덕흥리 벽화고분에 그려있는 묘주와 13군 태수들의 절하는 모습.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겸손의 문화를 꽃피운 한민족의 철학

이 철학이 ‘홍익인간 재세이화弘益人間在世理化’라는 단군의 건국이념이다. 이는‘사람 안 에 하늘과 땅과 사람이 모두 들어있다’는 조화와 상생의 천지인天地人사상을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생활철학으로 구체화한 것이다. ‘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리라’ 라는 단군의 뜻은 단순한 통치이념이나 지배 이데올로기가 아니 었다. 한민족이 처음 나라를 세웠을 때 “이렇게 한번 살아보자. 다같이 이런 나라를 한번 만들어 보자”며 품었던 민족의 첫 마음, 우리 선조들이 공동체와 국가, 그리고 개인의 삶을 통하여 실현하고자 했던 염원과 이상, ‘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우리조상들의 대답, 그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삶의 가치와 존재 이유가 바로 홍익이었다. 한편 『태백일사』「한국본기」중에 오훈五訓이 있는데, 오훈의 다섯번째 항목인‘겸화불투謙和不鬪’는 겸손하고 화복하여 싸우지 아니한다고 이르고 있다.

이어 배달국倍達國시대에는 나라의 체계를 바로 세우는 중심가치, 삼륜구서三輪九誓중 구서의 다섯번째 항목이‘손우군遜于群’으로 무리에게는 겸손하라고 하였다. 삼국시대에는 그 범위가 넓어지고 제천행사를 통해 두레 공동체 의식으로 발전하였고, 조선시대에는 향약을 기반으로 향촌 사회의 자치 규약과 공동체 조직으로 구체화 됐으며, 서원과 함께 향촌사회의 발전에 기여했다. 홍익은 두레 정신, 품앗이 문화, 상부상조의 생활화 등 화합과 상생의 공동체 문화를 탄생시킨 원동력이었다. 조선시대의 중심 가치였던 사단칠정四端七情중 사단의 인의예지仁義禮智에 신信을 더하여 오상五常이라 한다. 태조 이성계는 도읍을 한양으로 옮긴 뒤 공동체를 위한 가르침을 백성에게 알리고 교육시키기 위 해 한양의 4대문大門의 이름에 대입시켰다. 동대문은 흥인지문興仁之門, 서대문은 돈의문敦義門, 남대문은 숭례문崇禮門, 북대문은 홍지문弘智門, 그리고 중앙에는 보신각普信閣으로 이름 지었다

03. 합장은 두 손바닥을 가슴 앞에 모아 세우고 허리를 굽혀 하는 절이다. 절은 자기를 낮추어 겸손한 마음으로 얼을 찾는다는 뜻이 담겨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4. 월드컵 예선경기를 앞두고 태극기를 펼치고 있는 응원단. 태극기에는‘ 사람 안에 하늘과 땅과 사람이 모두 들어있다’는 조화와 상생의 천지인(天地人)사상이 담겨있다. ⓒ연합콘텐츠

겸손을 행동으로 실현한 예법

‘누구나 태양과 같이 밝은 본성을 지니고 있어 사람 안에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로 녹아 있다. 본심본태양앙명本心本太陽昻明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이라는 문구가 최치원선생이 한자로 번역한『천부경』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고대로부터 사람은 누구나 태양처럼 밝은 본성, 신성, 얼을 지닌 존재로 보았다. 사람이 본성을 깨달으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게 되고, 본성의 이치에 따라 세상을 두루 이롭게 하며 얼을 키우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두었다.

그리하여 어린이는 얼이 어리기 시작한 상태, 얼이 덜성장한 사람을 말하고, 어른은 얼이 큰 사람, 어르신은 얼이 커서 신과 같은 사람을 뜻한다. 이는 육체가 나이 들어 그냥 늙은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죽는 순간까지 계속 성장하는 존재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이런 문화 속에 자연스레 어린이는 어른과 어르신을 공경하고 겸손한 예를 갖추어야 함을 알게 되는 것이다.

또한 얼을 키우는 예법이자 수행법으로 절 문화가 있다. 절은 ‘제 얼’의 준말로 자기를 낮추어 겸손한 마음으로 얼을 찾는다는 뜻이 담겨있다. 절은 나를 대단한 것인양 내세우고 높이는 아상我想을 버리게 하고 마음의 겸양謙讓을 갖추어 하심下心을 이루게 한다. 그래서 절은 사람의 가장 겸손한 마음을 담은 아름다운 행동이라 여겨지고 있다. 절은 하늘에 올리는 것이나 땅 에올리는 것이나 조상이나 어르신에게 하는 것이나 모두 같은 것으로, 존재하는 모두의 뿌리인 하늘 앞에 존중과 겸손을 표하는 것이다. 진정한 겸손은 나와 상대에 대한 깊은 존중에서 비롯되기에 나도 남도 가장 신성한 존재로 인정하는 민족의 철학은 겸손의 문화를 꽃피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05. 최치원 선생이 한자로 번역한『천부경』.‘ 누구나 태양과 같이 밝은 본성을 지니고 있어 사람안에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로 녹아 있다.’는 문구가 전해지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6. 국채 1300만원보상 취지 보도기사. 우리 민족의 공동체 의식은 국채보상운동이나 IMF 금 모으기 운동, 태안기름유출 사건으로 발휘되었다. ⓒ대구시청

공동체 문화를 바로 세우기 위한 홍익철학

공자는『논어』에서 ‘군자들이 살고 있는 구이(九夷: 동이, 곧 우리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고 했으며, 공자의 7대손 공빈이 기록한 『동이열전』에는 ‘그 나라는 크지만 교만하지 않고 그 병사는 강하나 침략하지 않는다. 풍속이 순후하여 길가는 사람은 길을 양보하고 먹는 자는 밥을 미루고 남녀는 따로 거처하니 가히 동방예의禮儀의 군자국君子國이라 하겠다’고 전한다.

그러나 지금의 대한민국은 주변국의 수많은 역사왜곡과 분별없이 받아들인 많은 외래문화 속에서 아름다운 ‘우리’라는 공동체문화가 무너지게 되었고, 성공 중심의 무한경쟁 속에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해지며 겸손과 배려의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나만 행복하려고 하는 사회는 결코 행복한 사회를 이룰 수 없다. 물질문명의 한계에서 새로운 정신문명의 시대를 열어가는 열쇠는 조화와 상생의 공동체 의식, 반만년 한민족의 홍익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 홍익은 진정한 겸손으로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고, 나를 살리고 우리를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글. 김창환 (서울국학원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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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