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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일반│2019김포국제조각공원 세미나 / 1990년대 이후의 국내 조각공원과 공공미술-김성호

sosoart 2020. 5. 7.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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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일반│2019김포국제조각공원 세미나 / 1990년대 이후의 국내 조각공원과 공공미술

김성호


1990년대 이후의 국내 조각공원과 공공미술



김성호(미술평론가, 2020창원조각비엔날레 총감독)





I. 들어가는 말 : 조각공원 속 공공미술
이 글은 1990년대 이후의 국재 조각공원과 공공미술을 살펴본다. 공공미술(Public Art)이라 함은 1967년 존 윌레트(John Willett)의 ‘도시 속 예술(Art in a City)’에서 그 개념이 처음 사용된 이래, 대중에게 공개된 장소에 설치, 전시되는 예술품이자 그것을 실천하는 미술 유형을 통칭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분명코 미술가 개인의 내밀한 예술 작품으로 시작된 순수 예술의 장에서의 미술 유형과는 분명코 다른 지점을 제기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장소성과 대중 공개성을 그 대표적인 특징으로 삼고 있는 미술 유형이다. 따라서 공공미술은 맥락(context)으로서의 ‘장소 속 미술’ 혹은 ‘장소로서의 미술’이란 성격과 더불어 예술 작품 향수의 주체자(subject)로서의 ‘불특정 다수의 일반 대중’을 염두에 두고 있는 미술로 정초된다.  
오늘날 이러한 공공미술의 범주는 창조적 도시 혹은 도시 디자인이나 커뮤니티아트의 개념을 수용하면서 점차 다양하게 변모하고 있는 중이다. 도시 디자인과 관련해서는 장소와 결합하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장소 자체를 위한 디자인 개념이 강조되고 있다. 
한편, 커뮤니티아트와 관련해서 변모하고 있는 공공미술의 최근 개념은 지역 공동체를 강조하기에 이른다. 즉 ‘대중 공개성’이란 범주에서 ‘불특정 다수의 일반 대중’이라는 개념보다는 ‘지역민 혹은 지역 공동체’라는 커뮤니티를 강조하게 됨으로써 공공미술을 ‘개방된 장소에 지역의 공동체와 함께 만들어서 설치해나가는 모든 종류의 미술’로 정의하는데 있어 별 이견이 없게 된 것이다.   
한편 조각공원의 모토는 조각이라는 예술품을 자연 지형에 반영구적으로 전시함으로써 지역민들에게 일상 속에서 예술을 대면하는 ‘일상의 예술화’를 도모하는 취지와 더불어 갤러리나 미술관 전시회를 통해서만 볼 수 있었던 예술작품을 화이트큐브 밖으로 끌고 나와 공공의 장소에 설치, 대중에게 공개함으로써, 문화계급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예술의 민주화’를 성취시키는 지점에 있다고 할 것이다. 조각공원이 지향해 온 한 방향성인 공공성은 조각공원에 놓이는 조각예술품을 점차 공공미술(Public Art)의 성격으로 규정지어온 것이 사실이다. 특히 최근 들어 미술의 사회적 역할과 공공성의 개념이 조각공원에 요구되어 오면서, 이미 조각공원은 공공미술의 한 유형으로 자리잡아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공공미술과 조각공원이 오늘날 공유하는 문제의식들은 무엇인가? 아울러 양자가 오늘날 지향해나가야 할 바는 무엇인가? 이러한 내용을 검토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소논문에서 1990년대 이후 한국에서의 공공미술과 조각공원에 관련하여 제기된 여러 문제의식들과 더불어 현재적 상황을 면밀해 고찰해봄으로써 그것의 미래적 향방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II. 국내 공공미술 정책의 변화 : 기념비, 미술장식품, 건축물미술작품 
국내의 공공미술의 역사는 기념비로부터 시작된다고 보는 것이 일반론이다. 이와 관련한 대개 미술사적 접근의 논문들에서 비판적으로 드러나듯이 당시의 공공미술이란 대개 국가의 이데올로기를 국민들에게 계도하기 위한 이순신, 세종대왕, 김유신, 유관순 등의 위인들의 기념비였으며 ‘석고상과 같은 공공조각으로서의 성격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들’이 다수 있었다. 이 시기의 기념비적 조각이란 공공성 혹은 예술성이 앞서는 것이기보다는 대개 국가의 이데올로기에 예술이 도구화되었던 것임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후 공공미술의 개념이 새로이 등장하기 시작한 국내의 초기형 공공미술에서는 일명 플롭 아트(Plop art)라 불리웠다. 이것은 한국에서, 1950년대 프랑스의 퍼센트 법(1%법)과 1960년대 미국의 ‘건축물 속의 미술 프로그램’이 유입되어 접목된 채, 소위 ‘미술장식품’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1972년 8월 문화진흥예술법이 제정되면서 건축법에 대한 미술장식품 조항이 도입되면서 건축비 1%를 권장사항으로 규정하였다. 이 제도는 1995년 문화예술진흥법, 문화예술진흥법 시행령, 지방자치단체 조례 및 규칙의 체계로 일원화되었다. 핵심적인 내용은 1995년 대통령 공약사항으로 동법에서 의무사항을 개정하였다는 사실이다. 당시의 시행령에 따르면, ‘1만 제곱미터 이상’과 ‘각 동이 위치한 단지 내의 특정한 장소에 미술장식의 의무 설치’를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미술장식품 설치 조건으로 연면적 1만 제곱미터 이상이 되어야만 적용이 되었다. 
2000년 문화예술진흥법에 제11조는 건축 비용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회화, 조각 등 미술장식품에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그 비용을 건축 비용의 1/100이하의 범위 안으로 규정하고 있다. 제24조의 3(미술장식 심의 위원회)에서는 미술, 건축, 환경, 공간 디자인, 도시계획 분야 등의 전문가 및 시민 대표 등으로 구성되는 미술장식 심의위원회를 운영하도록 하였으며 ‘미술장식과 환경과의 조화’, ‘미술장식의 도시 미관에 대한 기여도’, ‘미술장식과 건축물의 조화’ 등을 심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10년 조사에 따르면, 당시 총 11,962건의 미술 작품이 설치되었고 누적 설치 금액은 약 7,276억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아울러 1개당 평균 작품비는 1억 정도였고, 1995년 이래 한해 평균 설치 작품 수는 전국적으로 800-1200점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2011년에는 전국 각지에 설치된 미술장식품이 대략 약 2만 여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지하듯, ‘상징조형물’로 순화되어 사용되기도 한 이것은 건축물의 예산 일부를 예술 작품에 할당시킴으로써, 예술가 지원과 더불어 도시의 일상 공간의 예술화를 촉진시키려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고자 했다. 특히 예술가 지원과 관련하여 그간의 ‘건축물 미술장식 제도’가 사회적 논란이 가열되자, 이 제도는 ‘2011년 5월 문화예술진흥법에 의해서 ‘공공미술 개념과 선택적 기금제’를 도입, 개정하여, 11월 26일부터 시행‘되었다. 이 제도는 건축물을 연면적 1만 제곱미터 이상 신축 혹은 증축할 때에 1안)으로서 ’건축 비용의 1%이하를 미술 작품의 설치에 사용‘하는 기존의 제도에 추가된 2안)으로서 ’설치 비용의 70%를 기금으로 출연‘하는 것을 가리킨다. 건축주는 작품을 설치하는 대신 문화예술진흥기금(관리주체 :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으로 납부할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건축물미술장식제도‘라는 용어 역시 최근에 ’건축물미술작품‘라는 용어로 전환되었는데, 전자가 미술 작품을 도구적으로 만드는 측면이 있었다고 한다면, 후자는 공공미술의 장에서 평가해야 할 주요 가치 중 하나로 ’예술성‘을 고려하고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III. 국내 공공미술의 전개  
1990년대 조각공원과 공공미술의 시작을 만든 계기는 1988년 ‘서울하계올림픽’이었다. 한국에서 1987년 직접 민주주의의 열기가 정점을 찍고 난 후, 1988년 개최된 올림픽이라는 거대 행사는 한국 국민에게 민주화의 열매를 돌려주려는 일련의 정치적 노력들을 선보인다. ‘서울올림픽조각공원’은 이러한 정치적 의도를 바탕에 깔고 방대한 규모로 급조된 다수의 프로젝트들 중 하나였다. 즉 ‘43만평 부지에 문화예술, 생활체육, 환경생태, 역사체험 등의 종합적 테마를 기반으로 다양한 시설들을 구축해온 조각공원’으로, 현재 공원내부에 조각공원 미술품을 관리하기 위한 목적의 소마(SOMA)미술관이 위치해 있다.
아이러니하게 이것은 ‘서울 시민들에게 예술 속 쉼터의 공간’을 제공한다는 미명 아래 공공성을 표방하며 등장한 현대적 의미의 첫 조각공원이었다. 
이후 1990년대 초반에 개시된 지방자치라는 직접민주주의 체제는 각 단체장으로 하여금 지역발전과 지역문화예술 진흥이라는 ‘두 마리 토끼 사냥’을 위해 발 벗고 뛰게 만들었고, 그 과정 중에 비교적 수월하게 가시적 결과물을 생산해내는 ‘미술관, 공연장, 조각공원’과 같은 문화 기반 시설 건립을 목표를 설정, 실천하게 만들었다. 
특히 1997년 이래로 중앙정부는 지역 문화예술 진흥이라는 취지 아래, 예술의 민주화와 공공성을 화두로 삼고, 지자체들의 조각공원 조성을 적극 장려하고 지원하기에 이르렀다. 

1997년 1개소(전남 보성), 1999년 5개소(강원 설악, 경북 안동, 충북 충주, 광주 서구, 경남 김해), 2000년 11개소(부산 남구, 경북 김천, 경기 이천, 경기 김포, 경기 안산, 강원 동해, 충남 아산, 전북 정읍, 전북 임실, 전남 영암, 전남 해남), 2001년 10개소(대전 중구, 광주 동구, 경북 영덕, 경남 남해 등), 2002년 7개소(부산 남구, 광주 광산, 원주, 천안, 임실, 나주, 경남 도립미술관), 2003년 8개소(부산 서구, 제천, 청원, 익산, 무주, 정읍, 담양, 마산) 

 아울러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한 지자체들의 다양한 예술 이벤트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면서 이들 프로젝트들과 다수 연계되어 전개되기도 한 조각공원은 지역, 자연생태, 공공미술의 상호 만남을 꾀하면서 점차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어오기에 이르렀다. 
2000년대 이르러 이러한 다양한 유형들을 참조하면서 지역 특성화를 실현하려는 취지를 십분 살리며 조성된 조각공원으로는 안양예술공원(2005), 노을조각공원(2009)이 대표적이다. 
먼저, 안양예술공원은 안양공공미술프로젝트(APAP, Anyang Public Art Project, 2005)와 긴밀하게 연계되면서 조성된 공원으로 부지 내에 따로 조각공원을 조성했다. 2002년부터 예술도시(Art City) 구축을 목적으로 시작된 후 2005년 프로젝트로 성격이 바뀌면서 시민의 문화예술에 대한 향수를 진작시키기 위한 공간의 한 방편으로 조각공원을 조성을 시행한 것이다. 여기서 주요한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도시 개발과와 문화관광부의 문화예술과의 협력을 통해 이 프로젝트가 실행되었다는 점이다. 한편으로는 지자체의 주도적 역할과 중앙정부의 지원이 맞물리고, 한편으로는 도시 재생과 공공미술이 결합되는 다차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조각공원이 조성된 것이다.
한편, 노을조각공원은 상암동 쓰레기 매립지인 난지도 위에 세워짐으로써, 생태 복원의 노력에 예술작품이 함께 한 독특한 사례를 남겼다. 그것은 자연의 본성 자체를 존중하는 조각공원을 서울이라는 도시에 자리매김함으로써 생태미학에 의한 미학도시 구축이라는 해석에까지 이르게 할 만큼 호평을 받았다. 최만린, 김영원, 이종각, 박종배, 강희덕, 김광우, 박석원 등 원로의 반열에 올라선 중진 이상의 조각가들의 작품만을 선별함으로써 일정 부분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오히려 이것이 다른 조각공원과 차별화하는 지점으로 평가받기에 이른다. 일례로 ‘현대 작곡가 강석희와 협엽한 강은엽의 소리조각’은 모뉴먼트 지향의 공공조각의 정형화된 틀을 탈피하는 새로운 모델로 등장하기도 했다. 
이렇듯 인공의 공원을 조성하고 여기에 예술품이 개입하는 조각공원의 전형은 최근 들어, 많이 변모해가고 있다. 특히 공공미술이라는 차원과 순수 미술이라는 차원이 상호 작용하면서 조각공원의 바람직한 모델을 만들어가는 작업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 

한국에서 이러한 미술장식품 제도와 조각공원 조성이 피상적으로 분리되어 실행된 듯이 보이지만, 정작 조각공원 조성에 참여한 조각 예술품들은 미술장식품 제도에 참여하는 조각의 유형별 특성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조각공원 조성의 초기 단계에 참여했던 조각품들은 대개 갤러리나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조각의 덩치를 단순히 크게 키운 모뉴멘트의 유형으로 야외 공간에 설치된 것이었다. 즉 미술장식품 제도에 참여했던 작품들의 유형을 조각공원에 고스란히 재생시켜놓은 것이 초기 조각공원의 대표적 속성이었던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한국에서 조각공원 조성 초기에는 공공미술의 이론과 실제가 따로따로 진행되어 온 것이나 다름없다고 할 것이다. 


IV. 해외 공공미술 : 예술성과 공공성 사이 
우리는 공공미술 혹은 조각공원에 관한 성공과 실패에 관한 외국적 사례들을 부지기수로 학습했다. 이것은 ‘공공의 장소성’이 불러일으킨 순기능과 역기능에 관한 것이었다. 또한 그것은 공공의 기능에 복무하는 예술(가)의 딜레마에 관한 것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1981년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가 미국 뉴욕 연방 광장에 세운 ‘틸트 아크(tilted Arc)이다. 구체적으로 뉴욕시의 제이콥 제피츠(Jacob K, Javits) 연방 빌딩 앞 광장에 설치된 이 작품은 거대한 철판이 광장 한 복판에 설치됨으로써 대중의 통행과 전망적 시야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거듭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녹슨 철의 장벽, 산업폐기물 조각’이라는 부정적인 대중의 여론과 철거 요구에 맞선 세라의 철거 거부라는 일련의 사건들은 당시 공공미술에 대한 수많은 담론을 생성시키며 화제를 불러일으키기에 족했다. 결국 법원에서 이 작품이 대중의 공익성을 침해한다는 주민의 의견을 받아들여 철거되고 말았지만, 여전히 공공미술의 성공과 실패 담론에서 회자되는 사례로 남았다. 
한편, 마야 린(Maya Lin)의 베트남 참전 용사 추모 조형물 ‘베트남전쟁 메모리얼’(1918-83)은 ‘공공미술로서의 조각공원’이라는 향방을 검토하는 이 글에서 매우 주요한 사례가 된다. 위싱턴 소재의 베트남 전쟁 추모공원에 설치된 그녀의 작품은 검은 화강석에 새겨 놓은 월남전 사상자와 실종자 명단 5만 7천여 이름이 전부였다. 즉 예술품으로 보이지 않는 작품을 공공미술로 설치함으로써 대중의 기대치와 괴리 사이에서 반발을 불러일으킨 대표적인 사례가 된다. 숭고함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철거의 요구까지 받았던 이 작품은 오히려 훗날 작가 린의 예술 세계의 진폭을 넓히는 주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기에 이른다. 
이 상반된 둘의 사례를 통해서 우리는 공공미술이 작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에 부합해야 한다는 책무를 지니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지역민의 생활 공간을 방해하지 않는 범주 내에서의 예술 창작을 고민하게 만드는 리처드 세라의 사례나, 예술 작품에 대한 일반 대중의 기대치와 그것에 대한 복무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일깨우는 마야 린의 사례는 매우 주요하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사례는 어렵지 않게 살펴볼 수 있다.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가 포스코센터 앞에 설치했던 작품 ‘아마벨(Amabel)은 대표적이다. 17억원에 이르는 이 작품은 작품성 평가는 논외로 치고 공공성의 의미에서 주변 환경과의 부조화를 이유로 ‘흉물스러운 고철 덩어리’로 비난받기에 족했다. 여러 논란 끝에 이 작품은 결국 존치로 논란의 종지부를 찍었다. 
청계천 복원과 맞물려 실행된 글랜스 올덴버그의 작품 ‘스프링(spring)’ 또한 공공미술에서의 많은 논란거리를 일으킨 사례이다. 34억원이 투입된 이 작품은, 작가의 유명세에 기댄 서울시의 ‘비민주적 작가 선정’이라는 비판과 함께 주변 환경과의 부조화라는 이유로 ‘반자연적 형태’로 설치된 ‘알맹이를 빼먹은 다슬기 껍데기’라는 비판을 감수해야만 했다. 논란을 거치는 과정에도 현재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올덴버그의 이 작품은 공공미술의 또 다른 문제의식들을 오늘날 제기한다.
특히 도시 공간에 개입하는 공공미술은 지역민 혹은 대중의 다양한 시선이 부딪힌다는 점에서 작가 개인의 예술작품으로서만 고려되기보다는 대중의 예술적 취향과 기대치에 부합하는 방식을 일정 부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공공미술가, 기획자들이 예술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해야만 하는 양날의 칼과 같은 딜레마이다. 그런 면에서, “창의적 과정을 통한 문제의 해결”로 공공예술을 정의하거나 “공공성의 핵심적 특징은 다원사회의 창의 자원인 차이들의 화려한 쟁투”란 비유는 그런 면에서 공공미술이 당면한 딜레마를 표현하는 말로 적절해 보인다. 
반면에 조각공원에서는 예술작품들이 작가 개인의 예술작품이라는 차원에 집중되는 것마저 용인하면서 이러한 딜레마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다만 야외설치에 따른 보관의 문제와 같은 소소한 문제의식 정도를 제기할 따름이지만, 도시공간의 공공미술처럼 공공의 기대치에 부합해야 한다는 강박적 의식으로부터는 작가들이 일정부분 자유로울 수 있다. 조각공원이 인공적으로 조성되었다고 할지라도, 그만큼 조각공원의 장소성이 친자연적인 유휴지의 공간으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V. 해외 공공미술 : 조각공원에서 도시 디자인으로
'공공예술전략은 도시의 상징성과 거리의 미관성을 제고, 도시에 대한 이미지와 상징성을 제고하는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그것은 미학적인 도시 이미지를 창출, 예술가의 유입을 강화, 지역을 기반으로 한 창조성을 강화하는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국내의 공공미술 전문가가 잘 진단하고 있듯이 공공미술이란 도시 이미지를 창출하기 위한  “통합화된 계획과 설계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앞서의 예술가, 지역의 창조성, 도시 이미지와 같은 3항의 문제는 우리의 논의에 있어서 외국의 공공미술 사례에서 살펴볼 수 있는 ‘공공미술, 조각공원, 도시 디자인’이라는 3가지 개념과 맞물린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뉴딜 시기에 펼쳤던 공공미술 지원 정책에서 드러나듯이, 초기에는 경제 공황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실직자를 구제하고, 예술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지역을 활성화하는 범정부적 프로젝트로 공공미술이 가시화되었다. 이후 도시의 재생과 그것에 관한 미학 창출을 위해 미술관이나 갤러리 안의 미술 유형이 크기를 키워 야외로, 공원으로 뛰쳐나가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전개는 훗날 도시 디자인의 면모로 전개되기에 이른다.  
공공미술에서의 성공과 실패의 사례는 장소에 설치된 개별의 조각 작품에 집중되기 보다는 실상 전체적인 공공미술이 놓이는 컨텍스트(조각공원, 도시 등)에 대한 발전적 플랜, 기능, 그리고 그 역할에 대한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게 일반적이다. 달리 말해, 공공미술은 다원적 프로젝트를 결합하는 전체 단위의 맥락에서 그 성공과 실패의 사례를 가늠하는 경향이 많다. 그것은 마치 도시 재생을 도모하는 도시 디자인의 맥락처럼 전체적인 단위에서 모색되어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영국의 ‘노섬버랜드 공공미술(Northumberland Public Art Initiative)’의 성공사례는 ‘공공미술→ 조각공원→ 도시디자인’으로 전개되는 향방을 논의하는데 있어서 주요한 사례가 된다. 인구 30만의 소도시 노섬버랜드는, 낙후된 도시 전체를 문화도시로 재생하기 위한 거시적 프로젝트로 마련되면서 구역별로 차별화된 공공미술 전략을 구사했다는 점에서 우리의 논의에 주요한 사례로 언급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여러 권역별 프로젝트 중 공장과 주민 밀집 지역이 있는 남동부의 공공미술프로젝트나, 농촌공공미술 위원회(Rural Commission), 해안공공미술 위원회(Coastal Commission)을 창설하여 농촌 및 해안의 자연경관과 공공미술의 관계를 실험했던 공공미술프로젝트는 우리의 확장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논의들과 연계된다. 즉 대표적인 명소 개발 및 지원, 문화적 명소의 시설 개선, 문화적 경관과 공원의 질적 수준 제고 등의 세부별 목표를 권역별 특성에 따라 맞춤 적용함으로써, 획일적인 공공미술의 유형들을 다양하게 변주시키는 성과들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도시 전체를 공공미술을 통해 문화도시로 재생한 사례는 비단 유럽의 사례만이 아니다. 일본 동경도 다치기와(市)의 파레 다치가와는 또 다른 사례이다. 2차 세계대전 후, 타치가아 비행장이 미군에게 접수되어 군사기지 거리로 부흥했었던 이 도시는 1977년 미군기지가 일본에 반환되면서 문화도시 디자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되었다. 특히 ‘아트 플래너(art planner)의 개념을 도입하여 아트 프론트 갤러리에 예술도시에 관한 기획을 의뢰했던 점’은, 도시 재생이라는 것이 도시 전문가의 역할만으로는 절대적으로 불충분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환기시켜준다. 이 공공미술프로젝트는 계획 그 자체가 하나의 성공한 문화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서, 세계 36개국 92명의 작가들이 참여하여 제작한 109점의 공공미술품이 도시 곳곳에 설치됨으로써 다치기와(市)는 오늘날 예술을 통한 도시 재생의 명소가 되었다. 즉 단순한 미술프로젝트가 아닌 도시 재생의 개념으로 공공미술이 접목되어 도시 전체를 조각공원화한 공공미술프로젝트였던 것이다. 이러한 도시 재생은 오늘날 문화도시 디자인이라는 차원을 촉발시키게 만들었는데, 여기에는 지역에 대한 예술공간화를 시도하기 위한 필수적 인력으로 문화예술전문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 또한 우리로 하여금 곱씹어보게 만든다.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의 논의에 있어서, 도시 자체를 대규모의 조각공원으로 전환시키는 대표적인 공공미술프로젝트인 독일의 ‘뮌스터(Munster)조각프로젝트’를 빼놓을 수 없겠다. 독일 북서부의 작은 마을인 이곳에서 1977년 처음으로 개최되어 10년마다 정기적으로 개최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낳고 있는 이 프로젝트의 시작은 실상 아이러니 자체이다. 발단은 영국 현대 조각가 헨리 무어의 작품 기증을 두고 이를 거부하고자 지역 언론과 주민들이 벌인 캠페인에서 얻은 엉뚱한 결론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즉, 지역민들은 현대미술에 대한 보다 나은 이해를 위해서 당시 베스트 팔리안미술관장인 클라우스 부스만이 제안한 야외조각미술전 개최를 받아들이면서 이 프로젝트가 비로소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이다. 2007년 4회째를 맞이한 이 프로젝트는 현재 공공미술과 도시의 관계를 사회학, 정치학, 미학으로 탐색하면서 도시 전체를 조각공원화하는 글로벌 프로젝트로 정착되어 문화도시 재생을 희망하는 세계 도처의 문화도시 모델이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공공미술에서 자주 회자되는 1970년대 '시카고 공공미술 프로그램” 1990년대 말의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Millennium Park, Chicago)를 살펴본다. 1998년 시카고 철도청의 재산으로 도시공원을 계획하면서 문화, 예술, 공공미술, 도시디자인이 총체적으로 실행된 이 프로젝트는 일리노이 중심을 지나는 철길을 변형시키고 주차장, 이동로, 야외공연장을 계획하는 방대한 지형도 개편으로 이어진 작업이었다. 특히 99,000m2의 공원 면적에 건축가, 예술가, 디자인의 다양한 공공미술을 대거 참여시킨 프로젝트를 통해서 도시 전체를 문화, 예술로 숨쉬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는 평가가 있어왔다. 물론, 여기에는 시카고 시의 도시계획가와 같은 전문가와 프랭크 게리와 같은 예술가, 그리고 지역사회의 협력이 트라이앵글을 이루지 않았다면 오늘날처럼 공공미술의 성과가 소개되는 사례를 만들지 못했을지 모른다. 
덧붙일 것은 이러한 ‘유형의 공공미술에 무형의 콘텐츠를 결합’시켰다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2004년 공원을 개방한 이래, 다양한 문화 예술 이벤트들을 통해서 무형의 콘텐츠를 결합시키는 다차원의 프로그램들이 병행시킴으로써 조각공원의 문화예술을 도시 전체로 확산시키는데 기여했다.   

공공미술과 관련한 상기한 성공과 실패의 사례들을 통해서 우리가 검토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주로 공공미술 실패의 사례는 상징조형물처럼 단독으로 주요 도시공간에 점유될 때 발생되는 게 일반적인데, 전체 도시 지형에 대한 해석 자체가 전적으로 아티스트 개인에게 집중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성공적 사례는 대개 도시 전체를 조각공원화하는 프로젝트형 사업으로 추진될 때, 그 효과가 명징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물론  도시 전체에 대한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실패 사례 또한 부지기수로 많다. 다만 우리가 기존 프로젝트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으려 하기 보다는 이미 성공한 사례들을 참조하고 벤치마킹(benchmarking)하려 시도하기 때문에 실패의 사례들을 쉬이 잊어버리는 것이다.  


VI. 2000년대 이후 국내 공공미술 : 커뮤니티형 공공미술과 프로젝트형 도시디자인
2000년대 중반 이후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공공미술프로젝트는 한국의 공공미술 지형을 ‘지역민과 교감을 시도하는 공공미술’의 커뮤니티아트 유형 혹은 프로젝트형으로 정초하고 확산시키는데 일정한 기여를 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2006년, 문화관광부의 주도 아래 시행된 Art in City 2006은 대표적이다. 문화관광부가 직접 공공미술의 시범사업에 관한 프로젝트 기획안을 발의하고 지역민의 프로젝트 공모를 통해서 진행했던 이 사업은 지역민의 요구를 수렴하면서 참여형 공공미술을 진행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할 것이다. 특히 ‘소외지역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미술‘을 표방한 이 사업은 문화적 소외를 극복하고 지역의 문화 향수의 균등한 기회 제공을 통해서 문화 복지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노력들과 함께 이루어졌다. Art in City 2006에서는 부천의 원종동 프로젝트, 광명의 철산동 프로젝트, 남양주군의 마석 프로젝트, 대전의 홈리스 프로젝트, 군산 해망동 프로젝트, 광주 중흥동 프로젝트, 대구 성서공단 프로젝트, 합천 승산 프로젝트, 부산 물만골 프로젝트, 부산 수정동 프로젝트 등 10개의 공모 사업과 더불어 자체 기획 사업인 낙산 프로젝트가 합쳐져 전국에 걸쳐 11개의 프로젝트가 추진되었다. 특히 낙산 프로젝트는 대학로, 이화동, 동숭동, 낙산공원, 서울성곽으로 헐겁게 이어지는 문화벨트를 단단하게 구축하고자 한 일련의 시도들이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아울러 이주노동자의 참여를 촉구했던 마석 프로젝트 역시 참여형 공공미술프로젝트의 이상을 지향하는 주목할 만한 사업이었다. 
2007년, 지속형으로 이루어진 Art in City 2007에서는 서울 성산동, 인천 우각로, 안양 인덕원, 안산 원곡동, 강원 태백 철암역, 청주 중앙공원 등 총 16개의 지역에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특히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하드웨어적 공공미술 외에 소프트웨어적 공공미술, 즉 컨텐츠에 집중하는 프로젝트가 활기를 띠면서 진행되었다는 사실이다. 주민 참여 인터뷰 프로그램으로 기획된 ‘서울 성산동 프로젝트’, 그리고 담양 5일장의 활기찬 공간으로 들어가 ‘장날 라디오 방송국’을 진행한 ‘담양 5일장 프로젝트’ 역시 주목할 만한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2년 동안의 사업을 끝으로 마무리된 Art in City는 ‘소외 계층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미술시범사업’이라는 사업명의 한계를 탈피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를 안고 있다. 또한 관 주도의 공공미술 프로젝트였다는 점에서 민간적 자율성에 기반한 프로젝트의 노력들을 온전히 수렴하지 못했다는 비판적 지적 역시 있었다. 다만 “예술을 통해 생활 공간을 재창조하면서 공공미술 작가와 단체를 양성하는 긍정적인 효과”외에도 한국의 지형도에 공공미술의 텃밭을 일구고 거기에 씨를 뿌려 공공미술의 대중화에 일정부분 기여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2009년, 정부 주도로 전국을 대상으로 시작된 ‘마을미술 프로젝트’ 역시 농촌 마을, 전통적 재래시장, 이주노동자 밀집 지역, 폐광 지역 등 문화 소외 지역 혹은 경제적 낙후 지역 20여 곳이 선정되어 펼쳐진 사업이었던 만큼, 그 한계 역시 명징했다. 특히 이 사업은 강원도 사북의 폐광 지역의 공공벽화의 경우처럼 지역의 문화예술적 환경 개선에 주로 역량을 기울임으로써 Art in City가 그간 도모했던 컨텐츠형 사업은 부족했다는 평가 역시 가능하다. 다만 하드웨어적 공공미술이라 할지라도 대중들의 참여를 유발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은 공공미술의 창작 주체와 향수 주체의 커뮤니케이션을 일정 부분 가능케 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프로젝트였다는 평가를 가능하게 한다.  
지자체 주도의 공공미술프로젝트 또한 유념할 만하다. 이것은 대개 도시 디자인 계획의 일환으로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공공미술로 정초된다.  
특히 2007년, 시범 사업으로 시작된 ‘서울도시갤러리 프로젝트’는 ‘도시가 작품이다.(city as oeuvre)라는 슬로건 아래, 서울시를 예술공원, 혹은 조각공원화하려는 시도를 우리에게 선보였다. 2008년에는 ‘장소형 공공미술과 커뮤니티형 공공미술 두 가지 방향’으로 사업을 추진하면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균형을 조율하는 정책을 펼친 것으로 평가된다. 서울역사박물관, 덕수궁 돌담길, 인사동 입구, 정동길, 광화문, 경복궁 등 서울의 역사 생태학을 복원하고, 세종문화회관, 서래섬, 동대문입구, 동회시장 등 대중적 공간을 예술화하려는 시도를 통해서 총 33곳에서 수많은 프로젝트가 실행되었다. 특히 놀이방과 공부방을 찾아가는 프로젝트나 2007-2008년 망원동 일대에서 진행, 낡은 컨테이너를 리모델링해서 ’동네 예술가 센터‘를 건립하고 주민들이 원하는 공간에 예술의 언어로 호흡을 건네고 재생시키는 작업인 ‘예술가가 달려갑니다.’프로젝트는 소프트웨어적 공공미술을 구현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논의에 있어서 유효하다. 2008년까지의 사업 이래, 2009년부터는 서울시와 함께 하는 조형물과 하늘 공원 희망전망대 프로젝트를 펼친 바 있다. 
2007년, 경기문화재단의 ‘유휴 공간 활성화 프로젝트’라는 공간 재생 프로그램은 후에 자생적인 활동을 펼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공공미술의 관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프로젝트는 공모를 통해 5개의 프로젝트를 선정하여 진행했는데, 부천시 계수동 지역을 리서칭하고 아카이브한 계수동 프로젝트, 시흥시 매화동의 마을회관을 리모델링해서 주민문화센터를 구축한 프로젝트, 안양의 한 다방을 대안공간 리트머스로 리모델링한 프로젝트, 재래시장에 리폼 공작소를 열었던 프로젝트, ‘뚝딱 도깨비 공작소’ 그리고 동두천 중앙역 빈 점포를 활용한 레지던시 프로젝트인 ‘프로젝트 스레이스 D' 등이 그것이다. 
2007년도 안양공공미술프로젝트(APAP)를 중심으로 공공장소와 현대미술과의 만남에 대한 사례 역시 빼놓을 수 없겠다. 안양시 만안구의 안양예술공원을 탄생시키면서 ‘도시 발전과 융합형 공공미술을 시도’했던 1회(2005, 이영철 예술감독), 안양시 평촌 도심에서 예술가 중심의 공공미술프로젝트를 진행했던 2회(2007, 김성원 예술감독), ‘예술이기보다는 건축 프로젝트를 시도’했던 3회(2010, 박경 예술감독) 그리고 최근 6회(2019, 김윤섭 예술감독)에 이르기까지 이 프로젝트는 매번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운용해왔다. 독립적이고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서 2007년 안양공공예술재단을 설립해서 운영한 것은 공공예술정책의 한 모델이 되기에 이르렀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이처럼, 2000년대 이후의 공공미술의 주 흐름은 한편으로는 커뮤니티아트 유형으로 또 한편으로는 도시 디자인을 지향하는 프로젝트형 사업으로 진행되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혁신도시 계획 기준’(건설교통부, 2007. 4)의 무모한 성취를 위해 공공미술이 도구적으로 실행된 점 역시 없지 않다. 물론 그것이 도시디자인의 거시적 틀 안에서가 아닌 상징조형물의 범주로 실행되었다 할지라도 대개는 전체적 프로젝트 속에서 부단히 예술가, 국가, 대중이 협의하고 조율하는 오늘날 변모된 공공미술의 유형을 살피기에 부족함은 없을 것이다.  
한편, 프로젝트 유형의 공공미술은 민간 차원에서 벌이기는 재정 여건상 매우 어렵다는 점에서, 새로운 과제를 우리에게 안겨준다. 예를 들어 중앙정부이든, 지자체 정부이든, 관주도의 공공미술프로젝트는 예술가 지원과 지역의 문화 재생이라는 차원에서 매우 긴요한 역할을 한 것만은 사실이다. 일테면 상암디지털미디어시티(DMC) 조성프로젝트의 기획 협의에서 “계획의 방향과 위치를 설정하고 작가 선정 방식을 건축주, 서울시, 자문위원회를 통해 실시하였으며”, 계획 협의에서는 ”작가와 건축주, 건축가, 서울시, 자문위원단으로 건축과 환경조형물을 연계하고 입지 기업의 특성과 DMC의 특수성을 살린 계획을 유도“한 것은 좋은 예이다. 그러나 그 계획이 모두 훌륭히 성취된 것은 아니다. 그저 ‘관람 위주의 조각 작품만이 놓이게 된 것으로 평가된 경우’ 또한 없지 않다. 
이러한 차원에서 관 주도의 프로젝트형 공공미술은 일정 부분 예술가 집단의 자생적인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통제한다는 명목하에 창의적인 공공미술의 다양한 가능성을 억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즉 대중의 이해와 참여를 전제로 예술가의 창작을 얼마든지 구속할 수 있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대중의 요구로부터 일정 부분 자유로운 현대미술로서의 공공미술을 언급하는 다음의 언급은 유의미하다. : “현대 미술이란, 쉽게 이해 가능한 것만을 제안하지 않는다. 그래서 공공장소에서의 만남은 언제나 예기치 못한 반응이 있으며, 예술과 사회가 미래지향적 소통을 위해서는 장소를 자기화하는 전유(appropriate), 재생(regenarate), 전환(transform)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VII. 나오는 말 : 국내 공공미술의 비전과 과제  
1980년대 <건축물 미술장식 제도>라는 이름으로 미술장식품 혹은 상징조형물의 형식으로 시작된 한국의 공공미술은 이후 1990년대 중후반 <공공미술 지원 사업>에 근거한 지방자치제의 조각공원 조성 사업으로 이어졌고, 2000년대 이후부터는 주로 커뮤니티아트 혹은 프로젝트형 도시디자인 사업으로서 진행되고 있다. 하드웨어적 공공미술만이 아닌 컨텐츠가 주도하는 소프트웨어적 공공미술이 보다 활성화됨으로써 오늘날은 ‘새로운 장르로서 공공미술(new genre public art)’을 지향한다. 그것은 물리적 공간에 귀속되는 차원을 넘어서 문화, 사회적 소통과 참여의 공간으로 확장하는 공공미술의 시대적 소명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공공미술의 미래적 비전과 과제는 무엇일까? 대개 이러한 관점은 ‘공공미술을 통한 공공 공간의 활성화, 공공미술을 통한 지역 재생, 그리고 공공미술 활성화를 위한 제도개선 등 3가지 범주’에서 주로 고찰되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여기서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서 도출된 내용들을 다음처럼 정리할 수 있겠다
1) 오늘날의 공공미술, 혹은 공공조각은 창조적 도시의 기치 아래 문화도시 디자인, 공공 디자인의 개념과 맞물려 계획되어야 한다. 그것은 야외 부지에 기념비적 조각품을 몇 점 얹어놓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도시 전체를 밑그림으로 하는 ‘도시 이미지 그리기’라는 거시적 프로젝트 아래 계획되어야만 한다. 이 경우 미술품의 크기만 키워 야외에 놓는 식으로 획일화된 유형의 조각공원을 탈피하는 독창적 시도들이 지역별 특성에 맞게 다양하게 실험될 수 있는 것이다. 
2) 오늘날 프로젝트형으로 추진되고 있는 공공미술의 경우 지역 균형 발전의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만큼, 지역에서의 특성화된 맥락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지역의 경제, 산업, 문화의 제 특성을 십분 고려하면서, 그 특성이 잘 드러나게 하는 방식으로 도시의 일상과 예술을 연계하는 현실적이고 실제적 프로젝트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이 경우 외부적 요인에 의한 1차적 이미지와 지역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가는 2차적 이미지가 결합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 
3) 국가적 차원에서, 지자체의 차원에서 국가와 지역을 함께 발전시킬 수 있는 다양한 유형의 공공미술에 대한 정책적 연구와 그것의 발전을 위한 중장기 비전을 필히 마련해야만 할 것이다. 조각공원이라는 것이 한 번의 기획으로 정리되는 것이 아닌 만큼, 중장기 비전 속에서 세부적 기획이 고려되어야만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지역의 대표적 산업 시설을 조각공원에 활용하는 방식 역시 일회성이 아닌 장기적 프로젝트 속에서 순차적 진행에 관한 미래적 밑그림을 세밀하게 그려낼 필요가 있다. 
4) 공공미술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에 관한 다양한 담론들을 지역민의 참여를 통해 꾸준히 생성해내고 지역 주민의 의견이 고루 반영되는 소통의 결과물로 조각공원을 구축해야만 할 것이다. 공공미술에 관한 한, 지역민은 예술의 향수 주체이지만 예술의 공동 창작 주체이기 때문이다. 
5) 공공미술에 기반한 조각공원 조성 및 프로그램 운영에 관한 다양한 지원 구조를 고려해야만 한다. 
-‘공공미술 개념과 선택적 기금제’는 이제 시작인 만큼 그 유효성이 검토될 것이지만, 현재로서는 하나의 가능성에 대한 실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지자체 행사일 경우,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제반 여건을 마련해야만 할 것이다. 이 경우 정기 공모를 통한 문예진흥기금 지원이라는 임시적 재정 지원이 아닌 독립적인 중앙정부의 기금 제도를 확립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공공미술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에 있어서 ‘지방자치 단체와 민간의 공공미술 수행 역량 강화를 위한 다양한 지원 제도의 정립’을 필요로 한다. 중앙 지원에 관한 서구적 예로, 1970년대 시작된 미국의 국립예술진흥기금(NEA), 프랑스의 공공미술주문기금, 1983년 설립된 영국의 공공미술발전기금과 같은 상시적 지원이 가능한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정부 차원에서 고려되고 선행될 필요가 있다.
-또한 지역 내 기업들의 사회 공헌을 유도해서 지원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해야만 할 것이다. 이 경우 문화재단 설립을 통한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 이러한 시스템은 민간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실행 시에도 지속적인 지원 여부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효율적일 수 있다. 한편, 조각공원 조성 이후에 관리 주체를 법인화하는 방식으로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 
6) 장소형 공공미술 외에 커뮤니티 공공미술을, 그리고 하드웨어적 공공미술 외에 컨텐츠 중심의 소프트웨어적 공공미술을 면밀히 검토하고 그것의 장점과 전시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7) 공공미술의 유형 중, 조각공원의 여러 폐해 중 하나는, 큐레이터가 유명 작가 위주의 작품으로 공원을 구성하려고 시도하면서 부가적으로 설명되는 것이다. 즉 특정 작가의 편식 현상이 전국의 조각공원을 잠식하는 폐단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8) 공공미술에 기반한 프로젝트형 사업으로 진행할 경우, 프로젝트를 입안하고 실행할 문화예술기획자가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열린 시스템을 구축해야만 할 것이다. 특히 일반 도시 전문가가 아닌 예술기획자가 프로젝트의 지휘 계열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까닭은 공공미술이란 도시 발전계획을 기본으로 삼아 개념을 도출하고 이를 구체화하는 도시 전문가의 방식뿐만 아니라 거기에 개입하는 예술 작품을 맥락화하고 조절할 수 있는 예술기획자의 방식이 힘겨루기를 언제나 지속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9)마지막으로 공공미술 정책 입안과 실행에 있어서 예술가 소외 문제를 필히 극복해야만 할 것이다. 예술가들이 공공미술 참여에 있어서 단지 작품 제작자로 이용당하고 소외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예술가들이 현대 미술의 자유로운 표현 정신을 공공장소에서 실험하는 것 자체가 도시 디자인의 전체 지도 속에서 배제되는 경우는 빈번하게 일어난다. 공공미술이 획일화되기 보다는 다원화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점에서도 예술가들의 예술 창작의 아이디어가 수렴되고 그들의 창작물이 특별한 제한 조치 없이 용인될 수 있는 프로그램 역시 차별적으로 개발되어야만 할 것이다. ●

 **주석 생략  
 
출전 / 
김성호, 「1990년대 이후의 국내 조각공원과 공공미술」, 발제문, 자료집, 2019. 
《2019김포국제조각세미나 - 조각공원과 대중의 소통 그리고 미래》, (2019. 11. 15, 김포국제조각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