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밥해주러 간다/유안진
소에게 여물을 줄 때 그 손은 거룩하다. 소의 여물 먹는 소리는 지상(地上) 최고의 음악이다. 종일 굶은 개에게 저녁밥을 줄 때 동쪽 하늘의 별은 거룩한 빛으로 바뀐다. 젖 뗀 아이에게 밥을 먹일 때 밥풀 묻은 볼따귀와 포도송이 같은 눈빛은 마음으로 스며들어 이내 어찌할 수 없는 커다란 저수지를 만들어 놓는다. 저 세상 태초(太初)로부터 흘러온 물길, 다시 저 태허(太虛)로 흘러가 닿는 생명의 물길! '모성(母性)'이라거니 '사랑'이라거니 '아가페'라거니 하는 말로는 담을 수 없는 겹겹의 감격이 거기에는 있다. '자식 밥 먹이는 일'이 모든 일의 우선이며 많은 사람이 자식 밥 먹이기 위해 길 위에 있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말도 실은 없다. 못나고 부족한 자식은 더 마음이 쓰인다. 실제로 못나고 부족한 것이 아니지만 세상의 해괴한 잣대는 그렇게 서열 지어 묶어놓는다. '취직 못한 막내 눔'이 점점 많아진다. 서둘러 적색(赤色) 신호등을 건너는 할머니도 많아진다.
대낮이 어찌 한밤의 깊이를 헤아리겠느냐 / 유안진
녹음이 짙어지면 검푸르다 단풍도 진할수록 검붉다 깊을수록 바닷물도 검푸르고 장미도 흑장미가 가장 오묘하다
검어진다는 것은 넘어선다는 것 높이를 거꾸로 가늠하게 된다는 것 창세전의 카오스로 천현(天玄)으로 흡수되어 용해되어버린다는 것 어떤 때 얼룩도 때 얼룩일 수가 없어져버린다는 것 오묘 기묘 절묘해진다는 것인데
벌건 대낮이다 흐린 자국까지 낱낱이 까발려서 어쩌자는 거냐 버림받은 찌꺼기들 품어 안는 칠흑 슬픔 바닥 모를 용서의 깊이로 가라앉아 쿤타 킨테에서 버락 오바마까지의 검은 혁명을 음미해보자 암흑보다 깊은 한밤중이 되어서.
공부 /유안진
풀밭에 떼 지어 핀 꽃다지들 꽃다지는 꽃다지라서 충분하듯이 나도 나라는 까닭만으로 가장 멋지고 싶네 시간이 자라 세월이 되는 동안 산수는 자라 미적분이 되고 학교의 수재는 사회의 둔재로 자라고 돼지 저금통은 마이너스 통장으로 자랐네 일상은 생활로, 생활도 삶으로 자라더니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 위해서 그렇게도 오랜 공부가 필요했네 배우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미적분을 몰라도 잘 사는 이들 잘 살아서 뭣에다 쓰게 쓸데가 없어서 잘 산다는 듯이 꽃다지들 저들끼리 멋지게 피어있네. 반성 방법으로 / 유안진 다들 앞으로만 걸어 다니니까. 다들 너무 빨리 걸으니까 따라갈 수 없어서 나는 뒤로 걷는다. 내가 걸어온 발자국을 보고 싶어서 어떻게 생겼나 어떤 색깔인가 얼마나 갈팡질팡 비틀거렸나 아직도 헛발 딛나 헛걸음질인가 내 눈으로 확인하며 걷고 싶어서 역할도 모르고 걸어야 하니까 앞으로 걸어도 앞은 볼 줄 모르니까 볼 수 있는 건 어제의 발자국뿐이니까 가끔은 뒷걸음질이 재미도 된다. 혹시 누가 내 발자국을 신고 따라오나 하고.
검정과 밝음, 밤과 낮, 음과 양…. 빛을 포함한 후자가 평화로운 세계일 것 같지만 유안진 시인(71)에게는 반대다. 그에게 검정(玄)은 단순한 ‘색깔’의 개념이 아니다. 깊고 광활한 태초의 세계다. 무슨 색을 받아들여도 얼룩이 남지 않는 넓은 천연색. 밤은 평화롭고 휴식할 수 있는 시간인 반면 낮은 긴장과 싸움의 시간이다. 어두운 ‘음’은 모성, 즉 돌아가고 돌아가도 결국 우리가 시작해야 할 ‘태초’의 세계다. 우리는 밤에서 휴식하며 ‘음’에서 태어났다. 이른바 ‘검은 평화’다.
Bob let me go 8.APRIL.2013 by Jace
La Sete Di Vivere
Luna sopra di no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