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배우나 된 것처럼 박수칠 때 떠난답시고 30년 외길 공직을 박차고 나온 지가 어언 10년이 다 되었습니다.
나도 이제는 소위 국가와 남을 위해서 일을 한다기보다 나를 위해서 일을 해보자는 생각에서 또 여생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자는 목표를 세웠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직장이란 온실에서 생활했던 백면서생 책상물림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가진 것 잃고 주저앉은 몰골이 되어 강원도 홍천의 산촌 산자락에 오두막 같은 초막을 마련하고 자기성찰의 마음 다스림을 하면서 적막과 고립의 시간을 헤매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래도 단절보다는 소통을 위해 세상으로 통하는 문에 빗장은 치지 않고 대문을 비스듬히 열어 놓고 누군가와의 대화를 통해 카타르시스와 위안과 위로를 삼고 미래를 기약하는 힘을 얻고자 메일친구를 사귀고 진솔한 대화를 나누며 마음을 잠시 편하게 내려 놓아둔 적이 있었습니다.
세상엔 나와 같은 처지와 또 상황은 다르지만 그에 버금가는 마음의 상처와 실의의 늪에 빠진 몇 몇의 사람들이 메일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때가 지금으로부터 약 8-9년 전쯤 되는 것 같습니다.
그때의 상황이 생생히 기억도 나지만 나이 들어감에 있어서의 메일친구는 좀 더 담백한 마음으로 흐르는 물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서로의 마음을 잠시 맡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도 펼쳐진 상황은 그때보다 그리 나아진 것은 없지만 이제는 마음의 평안을 얻고자 모두를 버리니 편안한 마음으로 세월을 받아들이고 살아갑니다.
무색무취의 마음으로 또 다시 좋은 메일친구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지난 어느 날 메일친구에게 보낸 답신을 꺼내어 봅니다.
시간상으로는 며칠 지나지 않아 그리 오래 된 것 같지는 않은데, 님과 편지를 주고받는 것이 새삼스레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우리 모두 마음이 그리 편하지만은 않고, 왠지 물길이 가다가 막혀, 어느 곳에서 잠시 소용돌이 되어 정체되고 있는 듯, 몸도 마음도 상쾌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군요.
글쎄요, 님이 무슨 일로 그렇게 심기가 불편해 지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사람 사는 일 모두 내 마음 같지 않지요?
조그만 것, 아주 조그만 것 하나 때문에, 서로의 득실을 따지게 되고, 그러다보면 사람에게 환멸을 느끼게 되고, 더는 상처 받지 않기 위하여 더욱 더 나의 좁은 영역을 방어하게 되어 자신을 한없이 적게만 만들어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스스로 자문하고 신통한 답을 찾지 못한 채, 또 다시 망각하고 어리석음을 되풀이 하게 되는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가 아닌가도 생각이 됩니다.
저는 그런 면에서 이번에 세상을 떠난 걸레스님 중광이란 사람을 참 부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가 진정한 자유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토록 자유분방하게 살려고, 아니 그렇게 보이려고 생활해 왔던 것이 부럽다는 것이지요.
어떻게 보면 思惟에 思惟를 거듭한 결과의 결정이, 그렇게 단순하고 남을 철저히 무시하고 자기의 “멋”대로 살 수 있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無腦의 상태인 사람만이 그렇게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도 생각이 됩니다.
본인 스스로 걸레, 사기꾼이라 하였듯이 그의 한 가지 장점은 솔직하다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는 모든 세속의 사람을 똥으로 보았다는 거지요. 하찮은 똥. 저의 생각으로는 자기는 똥 속에서 똥과 비벼대고 살고 있지만, 자기는 똥을 밟고서 살아간다는 메세지가 아닌가도 생각을 해봅니다.
어쨌던 그의 삶은 여늬 사람의 행각은 아니었고, 그저 제멋에, 제멋대로 살아온, 한없이 자기 생을 즐기다가 간 사람이어서, 참 부럽다는 것이지요.
제가 너무 자의적으로 그 중광스님을 폄하 했는지는 모르지만, 저의 일상적 논리로 바라보면 “이 세상 누구도 존경할 사람은 없는 것 같다”는 것이지요.
단지 내가 살지 못하는 삶을 다른 형태로 살아가는 사람이 부러울 수는 있다는 것입니다.
궤변인가요?
님이 하도 심난해 하기에, 저 역시 마음 또한 덩달아 심난하여 푸념을 해 본 것입니다.
이것은 제 방식입니다만,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너무 기대하지 마십시오. 사람이란 내가 살아가고 있는 동안, 佛家에서 말하는 인연, 즉, 옷깃을 스쳐가는 가벼운 인연도 있겠고, 億劫의 세월에 걸친 모질고, 질긴 인연도 있겠지요.
그러나 인연은 인연으로 끝맺음 되는 것이지, 그 인연이 내 생의 필연이 되어, 숙명처럼 나와 함께 영원히 같이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에게 상대방도 내가 자기를 생각하는 것만큼 해 주기를 기대하지 않고, 그저 내 진심을 거짓으로 도배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대하되 무얼 얻으려 소망하지 않으면, 인간관계에 있어서 많이 자유로워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나고 보면, 또 저만큼 멀리서 보면, 인간의 희로애락이란 것은 맑은 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여울에서 잠시 물거품 되어 사라지듯, 찰라적인 슬픈 감정이 아닌가 생각되어 집니다.
너무 비현실적인 환몽에서 헤매는 몽유병자의 독백 같지요?
저는 그렇게 살아 왔고, 또 앞으로도 개벽이 없는 한은 그렇게 살다가 마감을 할 것 같습니다.
이런 脫離된 현실감각에 제 아내의 마음고생도 많았겠지요. 그러나, 이제는 많이 同和가 되었어요.
어찌 보면 다다이즘과 현실도피가 아닌가? 하며 넌지시 기피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요.
조병화 님의 말처럼 저는 사람을 만나면서부터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살고,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산다고나 할까요?
"작별을 하는 절차를 배우며
작별을 하는 방법을 배우며
작별을 하는 말을 배우며
두고 가는 것을 배우며
떠나는 연습을 하며
서로 마지막 할 말을 배우며 살아간다"고 할 수 있겠지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편합니다.
편하기 위해 그러는 거지, 도통을 하기위해, 진리를 추구하기 위하거나, 어떤 이론의 틀을 정립하기 위한 그런 거창한 것은 아니지요.
그저 그렇게 사는 것이 나로서는 편하다는 것뿐이지요.
여행 한 번 훌쩍 떠나십시오.
혼자라는 것이 어떤 때는 커다란 속박과 방해가 될 때도 있긴 합니다.
그 혼자라는 것도 익숙해 지지 않으면 온통 부자연스럽고 부자유스럽지요.
저는 그전에는 자주는 아니지만 그 혼자라는 자유를 즐기기 위해, 여행을 하거나 낚시여행, 사진여행, 스켓치여행을 가끔은 하곤 했지요. 그러나 진정한 자유는 찾을 수가 없었지요.
내가 속세에서의 인연을 잘라 버리지 않는 한은 자유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니까요.
좋은 친구들과 떠나는 좋은 여행을 계획해 보십시오.
그리고 바가지는 혹시 지나시는 길에 눈에 띠면 그 구입할 수 있는 정보를 한 번 물어봐 주시면 되지, 그리 신경 쓰실 것은 없습니다.
어차피 이번 봄에 박을 심을 예정이니까요. 그런 부탁을 받으면 공연히 신경을 쓰시게 될 테니까 취소하겠습니다. 잊어버리십시오.
아들 녀석이 동락재 주변을 카메라에 담긴 담은 것 같은데, 시간이 촉박해서 눈이 빨리 녹고, 아직 제가 디지틀 카메라를 잘 다룰지 몰라서, 아들 녀석에게 맡겼더니, 아비의 의도를 파악 못하고 제 홈페이지에 담을 생각만 하고 찍어서 그런지 영 마음에 드는 그림이 없군요.
이제 다시 계절별로 담을 생각입니다. 혹 아직 열어본 것이 없다면 그 중에서 괜찮은 것이 있으면 한 번 보여 드리지요.
그저 평범한 시골 풍경이지, 눈에 띄는 그런 경치는 아닙니다.
애인의 얼굴처럼, 제 눈의 안경이듯, 그 사람의 의도와 용도에 따라 풍경과 입지가 달라 보이는 것이니까 그리 좋은 곳이라고 기대하지는 마십시오.
아, 그리고 직장문제는 이사장이 면담하자고 하는 모양인데, 아직 날짜가 잡히질 않았습니다.
개인사업을 하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하는 일들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군요.
직장을 마치 家計의 운영이나, 패거리 식 운영을 하는 것 같고, 개인소유라는 인식의 한계 때문인지, 여러 가지가 마음에 내키지 않습니다. 좀 두고 봐야지요.
전원생활이라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여기에 살아보면서 더욱 절실히 몸으로 느꼈습니다.
적응을 하느냐 못하느냐의 결정은 빠르면 6개월 길면 2년 정도인 것 같더군요.
6개월 안에 살 곳이 못된다고 판단을 내려, 떠나고자 하는 사람이 아마 30퍼센트 쯤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2년 내에 떠나는 사람은 약 반수가 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별장으로 주말주택으로 활용하는 사람은 비교적 오랫동안 집을 소유하고 있더군요. 물론 부동산이기에 보유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 방식이 도시 사람으로서는 제일 적합한 방법인데, 문제는 빈 집의 관리 입니다. 비용도 많이 들어가고 심리적인 부담도 있고.
그래서 제일 좋은 것은, 시골에 별장이나 집을 가지고 있는 친구가 있는 사람이 제일 좋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적하고 풍광 좋은 시골에 1-2천 평의 작지도 크지도 않은 터를 잡고 아담하고 이쁘게 10평정도의 통나무주택, 황토주택을 한 10여 채 지어, 회원제로 임대 운영하는 것도 하나의 수익을 올리는 방법이라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40대 이후의 연령층을 겨냥한 휴양산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3평짜리 주말농장의 밭이라고 그리 간단하거나 호락호락 하지는 않을 겁니다.
아무리 규모가 작다고 한들, 할 것, 있을 것은 다 있어야 하지요.
정말 님의 말처럼 땅의 힘은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내심 감탄과 자연에의 경외감마저 느끼게 되지요. 숙연해 지기도 하고요.
그런데 인간이란 미물은 겸손하지 않고 묵묵하지 않고............. 자연 속에서 그런 인간의 속성과 존재를 깨달을 때엔, 아주 작아지지만 그래도 편안하고, 자연의 섭리와 조화에 동화되어 감을 느끼게 되기도 하지요.
자신을 너무 울타리 안에 가두어 넣고, 울타리를 겹겹이 높이 올리지 마십시오. 인생에 있어 지금이라는 것은 잠시일 뿐 찰라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니겠습니까?
조급함이 밀려 올 때는 잠시 심호흡을 하시고, 숨을 가다듬으십시오.
계획하고 계신 것, 수정, 보완하시어 때가 되었다는 판단이 서시면 과감히 시작하십시오.
그러나, 조금은 미진하다 싶으면 편한 마음으로 시간을 벌어 보십시오.
사업의 경영이라면 너무 잘 아실 테니, 제가 뭐라 할 말도 없습니다. 그저 일반적인 얘기, 그런 얘기일 뿐이지요.
단지 힘들고 외롭고 쓸쓸할 때, 그것을 잠시나마 외면 할 수 있는 조그마한 마음의 터전이라도 된다면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오늘도 날이 좋군요. 사무실에서 잠시 벗어나 인사동 거리라도 한 번 거니는 것도 분위기 쇄신을 위해 좋지 않을까 싶네요.
그림 전시회도 구경하고 차라도 한잔 하시는 것도, 때론 인사동 뒷골목의 빈대떡 대포집에서 젊은이들의 무리에 섞여서 그들의 에너지도 받아보고 생각의 전환을 위해 좋겠지요.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동락재에서 동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