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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마울 공간구조와 논리

sosoart 2010. 3. 3. 12:59

평화로운 공동의 삶터
2010-02-12 오전 11:38





마을 공간 요소의 관계 엿보기

흔히 우리 전통마을은 자연스러워 보인다고 하지만, 그곳에서 어떤 질서나 논리를 감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사각형이나 원 같은 기하학적인 순수 도형만을 질서로 생각하고 있다. 우리의 삶이 유기적인 자연환경을 떠나 경직된 인공환경에 묻힘에 따라 생겨난 관념이리라. 특히 일정한 간격으로 나란히 선 아파트단지에서 살면서 이런 관념이 굳어진 것 같다.

이 글에서 필자는 한국 전통마을의 아름다움 속에 숨어 있는 공간구조의 논리를 설명하고자 한다. 여기서 공간구조란 마을공간을 이루는 요소들 사이의 관계, 그리고 공간요소와 마을공간 전체의 관계를 말한다.





전통마을의 공간구성요소

똑같은 집들 일색인 현대의 주거지와 달리, 전통마을은 토지이용과 공간요소 모두 다양하다. 이런 다양성이 전통마을이 갖는 환경친화성과 지속가능성의 밑바탕을 이룬다. 먼저, 마을의 토지이용은 크게 주거지와 농경지 그리고 주변 자연요소로 나뉜다. 이들을 좀 더 세분해 보면 주거지는 대지와 길, 그리고 대지 위에 놓이는 주택과 공동시설로 구성된다. 농경지는 논과 밭으로, 주변 자연요소는 산과 하천으로 나눌 수 있다.

여러 공간요소들 중 특히, 마을의 구성요소들을 서로 연결시켜 하나의 유기적인 마을영역으로 조직하는 길은 마을의 공간구조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 마을의 주거지에서 외부공간은 주로 길이다. 이는 서양의 전통적인 정주지에서 외부공간이 가로와 광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과 비교된다.

마을에서 길의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우선적인 요인은‘이동 목표점의 위치’인데, 주거지 내부에서 이동의 목표점으로는 각 주택의 입구를 비롯해 정자, 사당 등 공동시설물을 들 수 있다. 마을길은 두 가지의 기능을 지니는데, 그 하나는 각각의 주택이나 공동시설로 이동하는‘통로’역할이며 또 하나는 농작물의 건조, 만남, 어린이의 놀이와 같은‘행위의 장소’역할이다. 곧, 길은 통로이자 공동생활의 장소인 것이다.        

마을 내부의 길은‘안길’과‘샛길’로 구분된다. 안길은 마을공간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들을 연결하는 도로로, 마을입구에서 시작하여 마을 후면의 경계까지 이어진다. 안길은 주거지가 형성되면서 가장 먼저 생겨나는 마을의 주도로이다. 그것은 중요한 요소들을 연결하는, 통과의 성격이 강한 도로로서 마을공간을 전체적으로 조직하는 축軸의 역할을 한다. 안길의 형태는 굴곡이 심하지 않은 직선형이거나 마을에 따라서는 몇 개의 직선형이 결합된 형태로 형성되기도 한다.

샛길은 안길에서 뻗어 나와 각각의 대지에 접근하고 진입하는 데 이용된다. 이렇게 샛길은 통과도로라기보다 주택으로 접근하는 접근로이다. 샛길은 일반적으로 한 집의 대지에서 종결되는 막다른 골목이거나 고리 모양의 자유로운 형태를 취한다. 샛길은 남부지방에서 고샅, 제주도에서는 올레라고도 불린다. 샛길을 무엇보다도 마을공간을 변화무쌍하고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요소이다.

앞서 분류한 마을공간의 구성요소들은 일정한 논리에 따라 결합되어 마을공간을 이룬다. 특히 씨족마을에서는 그러한 마을 공간구조의 논리가 명료하게 읽힌다. 씨족은 동성동본同姓同本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을 말하며, 하나 또는 수 개의 씨족집단이 지연을 바탕으로 일정지역에 공존할 때 이를 씨족마을이라 한다. 조선시대에 와서 씨족마을은 마을구성의 지배적인 현상으로 나타나 한국사회가 근대화를 지향하면서 씨족의 결합이 약화되기 이전까지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왔다. 그러므로 씨족마을은 한국 전통마을의 가장 중요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오랜 기간 동안의 현지 사례조사를 통해 정위성定位性·연계성·상관성·위계성 등 서로 밀접히 관련되는 네 개의 개념으로 씨족마을의 공간구조를 설명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마을의 전체 공간과 공간요소들의 관계는 정위성과 연계성의 개념으로, 공간요소들 사이의 관계는 상관성과 위계성의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다.

 

정위성定位性 - 위치가 다르면 성격도 다르다

사회관계에서 상하질서를 중시하는 한국 전통사회의 특성은 마을의 공간구조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며 그 결과 전통마을은 균일하지 않은 장소의 체계가 되었다. 정위성은 마을공간에서 공간요소의 위치가 달라지면 그 공간요소의 특성에도 차이가 생긴다는 개념이다. 여기에는 주민들의 사회경제적 차이가 필연적으로 공간상의 차이를 초래했을 것이라고 보는 관점이 깔려 있다. 그러므로 정위성은 다음에 설명되는 위계성의 개념과 밀접히 관련된다.

하나의 마을 안에서도 동일한 부류의 공간요소들이 상이점을 갖는다고 보는 정위성은 주택을 지역적·경제적·문화적 산물로 보는 거시적 시각을 보완해준다. 정위성에 따르면, 한 마을에서도 상대적 위치에 따라 주택의 규모와 격식은 물론 유형도 달라질 수 있다.  

정위성의 개념으로 마을의 공간구조를 파악할 때는 마을 전前 - 후後 공간의 차이에 따른 공간요소의 차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전형적인 씨족마을의 마을공간은 위치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서로 다른 영역성을 갖는다.  

 ▶ 전면 : 위계가 낮음, 사회적 영역, 속俗; 주로 정자가 위치함

 ▶ 후면 : 위계가 높음, 정신적 영역, 성聖; 주로 사당·재실·선산 등 의식儀式공간이 위치함

그리고 전·후면의 사이에 개인적 영역이 위치한다. 그런데 이같은 전후의 위계는 일반적으로 지형의 높고 낮음과도 일치한다. 곧, 지형이 높은 장소는 정신적, 사회적 위계도 높다고 할 수 있다.



연계성Sequence  - 길을 따라 요소들이 이어져 의미있는 마을공간이 된다

공간요소들은 일대 일로 관계를 형성하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서는 일련의 요소들이 하나의 선적인 관계를 이루어 마을공간을 구성한다. 연계성은 공간요소들의 연속적인 연결관계를 의미한다. 그것은 사람의 이동에 의한 공간요소의 시간적 배열을 함축하고 있는 개념으로, 마을공간의 깊이감을 형성하는 원리이다. 그런데 공간요소를 연결하는 것은 길이므로 연계성은 길과의 관계에서 파악된다. 마을에서 하나의 공간요소가 갖는 특성은 그것 자체의 논리에 한정되지 않고 그것에 이르는 경로와 관련된다. 마을공간 전체에 존재하는 기본적인 연계성은 다음과 같다.



개별 주택으로부터 마을입구, 공동시설 또는 농경지로 이어지는 연계적 과정은 길의 체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한 연결과정은 일반적으로 ‘주택입구▶ 샛길▶ 안길▶ 공동시설(특히 정자亭子) ▶ 마을입구’의 순서로 구성된다. 주택에서 마을입구에 이르는 과정에는 마을의 중심적 사회시설인 정자가 배치되어 있으므로 거주자들은 마을 안팎을 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 접촉한다. 그림2에서 보듯이, 경북 김천시 구성면 원터마을에서는 아름다운 정자인 방초정芳草亭이 마을의 중심적 사회시설인데 마을의 길이 방초정에 모여지도록 체계가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공간을 이동하면서 자연스레 정자를 거치게 되고 그러한 일상적인 움직임 속에서 사회적 관계를 다진다.



상관성 - 요소들은 서로 영향을 미친다

공간요소가 결합하여 마을공간을 이루는 과정에서, 앞서 형성된 요소는 후에 형성되는 요소에 일정한 영향을 가한다. 또한 어떤 한 요소의 변화는 다른 요소들에 영향을 미친다. 마을공간에서 요소들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상대요소를 고려하고 배려하여 형성·변화되므로 일방적이기보다는 서로 대등한 관계를 형성한다. 상관성이란 이러한 공간요소들 사이의 상호관련성, 곧 공간요소들이 결합하는 원칙을 말한다. 상관성은 마을공간을 모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공동성의 삶터로 만들어주는 개념이다.

상관성의 기초적인 원리는 서로 근접성을 가지려는‘통합’과 격리되어 독립성을 가지려하는‘분리’이다. 이 통합과 분리는 물리적인 연결과 단절로 나타나기도 하며 더욱 복잡한 건축적 처리로 표명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동등한 두 영역 사이는 기본적으로 분리의 관계를 이룬다. 서로 다른 영역의 요소들은 통합과 분리의 두 측면을 동시에 갖는데, 그 요소들이 갖는 성격의 차이가 클수록 분리의 관계에 가까워진다. 이를테면 공적인 길과 사적인 주거공간의 관계는 공간이 갖는 성격의 차이로 인해 통합보다는 분리의 관계이다. 이렇게 볼 때, 마을을 이루는 개별 주택들 사이는 분리의 관계일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전통마을에서는 거주자들 사이에 일상적인 왕래가 잦다. 따라서 주택 사이가 서로 통합될 필요성도 존재한다. 서로 모순되는 요구가 있는 것이다. 이에 대응하여 마을의 개별 주택들은 독립적인 주생활을 확보하면서도 동시에 서로 연결될 수 있는, 통합과 분리의 변증법적인 균형을 이루게 된다. 그림3은 과거 전남 나주시 다도면의 도래마을에서 관찰한 이런 이중적 관계를 보여준다. 곧, 여섯 집은 각각 대문과 담장으로 독립된 주거영역을 형성하면서 동시에 인접한 주거로 왕래할 수 있는 샛문을 두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 집들의 거주자들은 서로 형제관계 혹은 그에 버금가는 친밀한 혈연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여기서 샛문은 일상생활에서 그러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물리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위계성 - 크기와 모양이 다른 요소들이 유기적인 마을공간을 만든다

위계란 요소들 사이에 존재하는 크기·형상·위치의 차이를 말한다. 예외적인 크기, 독특한 형상, 중요한 위치를 통해 위계를 높일 수 있다. 위계가 높은 것은 형태나 공간이 시각적으로 독특하게 보이고 하나의 공간조직에서 중요한 것으로 인식된다. 그리고 여러 가지의 구성요소를 구비해 격식을 갖춘 공간이나 건축물은 그렇지 못한 것보다 위계가 높다고 간주된다. 이러한 차이는 요소가 전체 마을공간조직에서 갖는 상대적 중요성과 기능적·형태적·상징적 역할을 보여준다.   

씨족마을은 성리학적 유교문화의 자연·공간관을 반영하고 있다. 성리학에서는 위계적 질서의 표현, 곧 예禮가 강조되며 이는 주거공간에서 위계성이나 차별성이라는 개념으로 자리잡는다. 따라서 씨족마을에서는 상징적인 의례儀禮와 관련되는 요소가 중시된다.

씨족마을의 위계성을 공간요소 별로 요약하면, 길은‘안길>샛길’, 주택은‘종가>일반 주택’, 그리고 ‘공동시설>주택’의 위계관계가 성립된다. 각 공간요소 별로 위계가 높은 요소들은 마을 공간구조의 기본 틀을 이룬다.  


글·사진 | 한필원 ATA 대표, 한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사진·(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제공

출처: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