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과 채움이 어우러진 공간, 우리 마당 | |||
작성자 | 문화재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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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2-07-12 | 조회수 | 69 |
마당이 담고 있는 풍경 바깥마당 한쪽에 장작을 잘 쌓아두고, 안마당 양지바른 곳에는 곡식과 채소를 말린다. 수확철이 되면 쟁기를 비롯한 각종 농기구를 마당 한 켠에 세워두고, 타작하는 공간으로 활용한다. 현대의 주거생활이 가져다 준 편리함에 익숙해져 있지만 이처럼 시골집 마당에 대한 향수는 강하게 남아 있다. 한여름 밤 무더위를 피해 볼 요량으로 가족이 둘러앉아 옥수수나 시원한 수박을 먹곤 했던 어린 시절 기억 속에도 어김없이 마당이 자리한다. 그저 들마루 하나 내어 놓을 정도면 충분했으니 마당의 크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생활의 중심공간, 마당 우리의 전통가옥은 아무리 규모가 작을 지라도 반드시 마당을 가지고 있다. 여러 개의 마당을 가진 경우 행랑마당, 사랑마당, 안마당, 샛마당(건물과 건물 사이), 중마당(마당과 마당 사이)을 집 안에 두었다. 마당의 위치는 집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바깥마당, 동네마당(동네 사람들이 모여 노는 정자나무 아래), 정자마당(동네 마당에 정자가 마련되어 있을 경우), 우물마당 등 공적인 영역에 위치한 마당에서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졌다. 1년에 두어 차례 열리는 마을축제인 탈놀이도, 정월 대보름의 마당밟기(지신밟기)와 윷놀이도 마당에서 펼쳐졌다. 이처럼 저마다의 위치에서 다양한 쓰임새를 지닌 마당은 집 안팎을 넘나드는 생활 속의 중심 공간이었다. 햇볕과 바람이 머물다 가는 곳 시선의 막힘이 없어 하늘과 땅을 통해 자연의 변화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마당. 비어 있는 듯하지만 햇빛을 담아내고 바람을 받아들인다. 여름 한낮에 노출된 마당은 뜨겁게 데워져 공기가 상승하는 한편, 집 뒷산의 찬 공기는 상대적으로 무거워져 산비탈을 따라 마당 쪽으로 내려와 대청 뒷문을 빠른 속도로 통과한다. 한여름 대청마루가 시원한 비결이다. 반면 겨울에는 햇볕을 마당에 반사시켜 집안으로 끌어들인다. 한옥 마당에 잔디를 깔지 않는 이유도 집으로 반사되는 볕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마당에 나무를 과하게 심지 않고 여백의 공간으로 남기는 것 역시 통풍과 채광을 위해서였다. 뜨겁고 습기 많은 한여름과 추운 겨울을 마당을 통해 조절했던 우리 선조들. 지혜로움이 발휘되었기에 자연 자체와 동화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마당, 다기능 복합문화공간 마당은 여성의 공간인 안채와 남성의 공간인 사랑채의 거리를 적당히 유지시켜 방문객의 시선을 중화시키는 기능도 담당했다. 그러면서도 안채는 안마당과 뒷마당을 동시에 면하고 있어 겹의 공간을 연출한다. 각 채의 출입은 마당이라는 공간을 통해 이루어졌으니 외부가 아닌 내부공간의 홀Hall과 같은 기능을 가지고 있다. 내부공간에서 다하지 못한 건축적 기능을 대신하는 공간인 셈이다. 이와 같은 마당의 기능 확장은 집안에서 큰 일을 치를 때에도 여실히 드러난다.이때에는 아예 부엌과 가까운 안마당에서 음식을 만든다. 혼례식 때는 사랑마당에 전안청奠雁廳을, 안대청에는 초례청醮禮廳을 마련한다. 이때 안마당은 안대청과 함께 손님의 접대공간이 된다. 초상을 치를 때에도 손님 접객 공간으로 마당이 활용된다. 간혹 대청에 제상을 차리고 마당에서 엎드려 절을 올리는 제례공간으로 쓰이는 사례도 있다. 안마당과 사랑마당에 차일을 쳐서 확장된 공간을 마련하여 내부공간이 못다 한 기능을 전담하기도 한다. 이처럼 한국의 마당은 공적인 영역에서 사적인 영역으로, 큰 규모에서 작은 규모로, 범속한 곳에서 신성한 곳으로 넘나들며, 외부공간이자 내부공간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는 독특함을 지니고 있다. 또한 생활공간이자 생업을 위한 작업공간으로 마당을 사용함으로써 주거 내의 대지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막힌 공간, 웅장한 공간보다는 부드럽게 이어지고 생활의 리듬에 따라 공간의 융통성을 중시하는 복합문화공간이 바로 마당이다. 비움으로써 채워지는 마당의 특별함 마당을 통해 여백의 미를 찾아볼 수도 있다. 마당에는 아무것도 두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마당에 식재를 많이 하지 않고 빈 공간으로 남겨둔다. 이렇다 보니 담장을 두르거나 축담을 쌓고, 그도 아니면 나무를 심어서 영역감을 확보했을 때, 비로소 마당의 공간감이 다가온다. 공간의 핵심은 ‘공간을 구성하는 벽이 아니라 벽이 구성한 공허함’이라 했던가. 비워야 진정한 쓸모가 생긴다는 노장사상老莊思想의 가르침을 좇아 전통가옥의 마당은 비어 있기에 편안하고 더욱 여유롭다. 우리 전통가옥의 내부가 좁아도 집안이 넓어 보이는 것도 바로 마당이 있기 때문이다. 한옥의 좁은 방들은 창을 여는 순간 넓은 마당으로 확장되어 좁은 방들이 보상을 받는다. 마당 덕분에 내부공간은 더욱 그윽하고 풍부해지는 것이다.이렇듯 우리의 마당이 치장된 정원이 아닌 빈 공간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자연환경에 순응하며 지세地勢를 인공화하지 않는 원칙과 활용성을 중시한 까닭이다. 따라서 마당은 빈 공간이지만 단순히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로 다음에 채워질 준비를 하고 있는 공간이다. 즉 무한히 확산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건축가들이 마당을 제3의 건물이라 일컬으며, 한옥의 생명력을 마당에서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대인, 마당을 욕심내다 최근 한옥을 토대로 한 ‘전통건축 담아내기’가 아파트에도 확산되면서 마당이 실내공간으로 흡수되고 있다. 일명 도시형 한옥이 그것인데, 마당에 해당하는 거실을 아파트 복판에 배치하여 마당의 역할을 기대하는 움직임이다. 비어 있는 듯하지만 자연을 담고 문화로 채워진 생활의 중심이었던 마당. 오늘날 우리가 현대 건축물을 통해 마당의 기능과 그리움을 채우고자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글·황경순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무형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사 사진·문화재청, 연합콘텐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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