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樂茶軒-문화와 예술/詩가 있는 뜨락

[스크랩] 그 옛날의 사랑/오탁번

sosoart 2013. 1. 1. 16:41

 

그 옛날의 사랑
오탁번 지붕 위에 널린 빨간 고추의 매운 뺨에 가을 햇살 실고추처럼 간지럽고 애벌레로 길고 긴 세월을 땅 속에 살다가 우화羽化되어 하늘로 나는 쓰르라미의 짧은 생애를 끝내는 울음이 두레박에 넘치는 우물물만큼 맑을 때 그 옛날의 사랑이여 우리들이 소곤댔던 정다운 이야기는 추석 송편이 솔잎 내음 속에 익는 해거름 장지문에 창호지 새로 바르면서 따다가 붙인 코스모스 꽃잎처럼 그 때의 빛깔과 향기로 남아 있는가 물동이 이고 눈썹 훔치면서 걸어오던 누나의 발자욱도 배추흰나비 날아오르던 잘 자란 배추밭의 곧바른 밭이랑도 그 자리에 그냥 있는가 방물장수가 풀어놓던 빨간 털실과 오디빛 참빚도 어머니가 퍼주던 보리쌀 한 되만큼 소복하게 다들 그 자리에 잘 있는가 툇마루에 엎드려 몽당연필에 침 발라가며 쓴 단기 4287년 가을 어느 날의 일기도 마분지 공책에 깨알처럼 그냥 그대로 있는가 그 옛날의 사랑이여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차윤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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