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樂茶軒-문화와 예술/詩가 있는 뜨락

[스크랩] 가시 / 정호승

sosoart 2013. 3. 4. 21:55


 

      가시 - 정호승
                         


      지은 죄가 많아


      흠뻑 비를 맞고 봉은사에 갔더니


      내 몸에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손등에는 채송화가


      무릎에는 제비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더니


      야윈 내 젖가슴에는 장미가 피어나


      뚝뚝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장미같이 아름다운 꽃에 가시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토록 가시 많은 나무에


      장미같이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고 생각하라고


      장미는 꽃에서 향기가 나는 게 아니라


      가시에서 향기가 나는 것이라고


      가장 날카로운 가시에서 가장 멀리 가는 향기가 난다고


      장미는 시들지도 않고 자꾸자꾸 피어나


      나는 봉은사 대웅전 처마 밑에 앉아


      평생토록 내 가슴에 피눈물을 흘리게 한


      가시를 힘껏 뽑아내려고 하다가


      슬며시 그만두었다


      - 시집 ‘이 짧은 시간 동안’(창비) -

출처 : nie-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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