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樂茶軒-문화와 예술/詩가 있는 뜨락

[스크랩] 평생 섬을 사랑한 시인 이생진 (펌)

sosoart 2013. 3. 4. 21:58

설교하는 바다
이생진

성산포에서는
설교를 바다가 하고
목사는 바다를 듣는다
기도보다 더 잔잔한 바다
꽃보다 더 섬세한 바다
성산포에서는
사람보다 바다가 더
잘 산다

- * -

평생 섬을 사랑한 시인이 있었지요.
그 시인이 이생진이란 시인입니다.
성산포시인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긴 바다가 먼저 취한다’고 한
시인이기도 합니다. 벌써 칠순을 넘어선 나이지요.
삶 또한 자신의 시어만큼이나
간결하고 깔끔하게 연륜에 물들었지요.


[금상] 삶/이성대




몸가짐도, 말투도, 차림도 군살 하나 없는 분이랍니다.
사람에겐 저마다의 숨기지 못하는 것들이 있더군요.
마음을 숨기려 해도
얼굴에 행동에 슬쩍 묻혀지는 것을 알게 모르게 느끼고 살지요.
섬을 사랑한 시인의 시는 바다냄새가 나지요.
바다와 섬과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어울렁더울렁의 섬마을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바다가 찰랑찰랑 넘치고 있지요.


[은상]낚시/이말용




성산포엔 그를 위한 거처도 한 칸 있다고 합니다.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는 외딴 방,
있는 거라곤 시야 가득 안기는
섬과 바다뿐이라고 합니다.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일이 생업인 한 분이
그물보관창고를 손질해 내 주었다고 합니다.
섬을 사랑하는 그래서 바다를 사랑하게 된 사람들만의
마음씀씀이가 교감된 것이지요.
주고받는 마음이 곱기만 합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시인은
바닷가에 거처를 갖는 호사도 누리게 된 게지요.


[은상] 추암의 아침/옥맹선




세상에서 쓸쓸한 것만한 시상이 어디있을라고요?
진정 이 세상에는 쓸쓸하게 기울어가는 저녁노을이나
사람의 기울어가는 나이가 주는 느낌은
굉장하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시인은 이런 말을 했지요.

내 시는 외로와요. 내가 외롭거든요.

외로움이 나쁜 것만은 아니지요.
이생진 시인은 사람은 외로운데서 에너지가 나온다고 했지요.
시도 마찬가지로 외로움의 산물인 셈이지요.


[동상] 질주/노숙자




산다는 게 그렇거든요.
같은 날을 반복해서 사는 것이 인생인데
더 살아야하느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지요.
더 비관적으로 이야기하면
삶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결국은 죽어가는 과정일 뿐이라고
누군가 우기면 화를 내며 대어들만 한
특별한 것이 없더군요.

고독은 태생적이기도 하고 근본적이기도 합니다.
인간에게 고립은 필연이거든요.
고독도 실은 고립되었다는 의식에서
출발하는 지도 모르지요.
오죽하면 군중 속의 고독이란 말이 생겨났을라고요.


[동상] 아침바다/지순자




사람은
저마다 독립된 섬이라는 생각을 저버릴 수 없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고독이 동동 떠있는 섬이라고
하면 틀린 말인가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배를 만들어야 하는 게지요.
사람과 사람을 소통하는
배를 만들어야 하는 게지요.  
 
우리가 생각하기에 이생진 시인의 고향은
바다일 거라는 선입견을 갖게 되지요.
헌데 시인의 고향은 충남 서산이랍니다.
그만큼 시인은 우리에게 바다를
충분하고 만족스럽게 선물한 셈이지요.


[동상]선재도 어민들/강복원




바다를 몸으로 마음으로 그리고 생활 속에서 체험한 시인의 시는
바다를 아주 쉽게 접하게 하는 능력이 있지요.
이생진 시인의 시는 설명이 필요 없는 시거든요.
그의 시를 읽으면
바다가 금세 가슴에 찰랑거리는 것을
느낄 만큼 친숙하게 다가오지요.
다른 시 하나 더 읽어볼까요.


[가작] 바닷가 소경/문진상




성산포에서는
교장도 바다를 보고
지서장도 바다를 본다
부엌으로 들어온 바다가
아내랑 나갔는데
냉큼 돌아오지 않는다
다락문을 열고 먹을 것을
찾다가도
손이 풍덩 바다에 빠진다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나를 더 많이 본다

-바다를 본다-



[가작] 함상견시/박영균




무슨 설명이, 시평이 필요하겠습니까.
나머지는 군더더기지요.
시보다 시평이 어려운 것에 대해
저는 반기를 드는 사람 중에 하나거든요.
쉽고 간결하면서도 감동을 주는 시를
시평이 망쳐놓는 것을 종종 보거든요.
논리적이거나 진부한 설명을 전문적인 용어까지 써가면서 쓴
시평을 보면 시를 버려놓는구나 싶거든요.

이생진 시인의 시는 다른 어느 시보다도 쉽지요.
그런데 울림은 크거든요.


[가작] 옛해전의 재현/강법권




이생진 시인의 시는
그림자 혼자서 마당을 건너는 산사에
아주 간혹 울리는 풍경소리 같지요.
건너 편 산도 잠시 들렀다 가고,
앞마을 닭소리도 들렀다 가는 산사에
맑은 풍경소리가 주는 기쁨은
여간한 게 아니지요. 


가작] 무제Ⅲ/이용석




시인에게 섬은
어려서부터 친숙한 놀이터였다고 합니다.
집에서 조금만 달려 나가면
안면도, 간월도를 품에
안을 수 있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처음엔 화가가 되고 싶었다지요.
하지만 중3때 선친을 잃은 뒤
종이와 물감 살 돈조차 짐스러웠지요.
화첩을 접고 책을 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속삭이듯 글을 썼답니다.
어쩌면 자신에게 띄우는
연서였을 지도 모르지요.


[가작] 관심/김기정




소년은 그땐 정말 좌절했지요.
내가 왜 이런 운명에 처해야 되는가,
아버지 무덤 앞에 주저앉아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요.
가난은 때로 아프게 다가오거든요.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가난이거든요.
가난했던 집안에서
소년의 어머니는 고생을 많이 하셨지요.
바느질품도 팔고, 행상도 하면서 키웠지요.
하루는 시인의 어머니가 이렇게 이야기 했답니다.

얘야, 네 시는 왜 그렇게 슬프냐?
이름난 시인이 된 아들에게 생전의 어머니는 그런 말을 했는데 그 말에 놀란 아들의 대답은 이랬답니다.
세상이 슬퍼서 그래요.


[가작] 견학/성낙진




시인은 고등학교 시절에는 곧잘 무전여행으로 떠돌았지요.
여행은
외로움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의 길떠남이거든요.
혼자 길을 떠나는 사람의 마음은 고독한 사람만이 알지요.
그가 가는 곳은 언제나
바다가 가까이 있었습니다.
떠오르는 단상들을 메모로 긁적이다가
밤이면 간이역에 몸을 뉘였고
아침에 일어나보면
거지들과 함께 누워있는 일도 있었습니다.
새우등을 하고 자는 시인의 어린 시절은 참 고단했던 게지요.

인생의 무게가 그리 무거운 것을
일찍 깨우친 것이
그를 시인으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장려] 퍼레이드/박인호




아래로 동생이 넷이나 되는 아버지 없는 집안에서
6년제 농업학교를 마친 뒤
일찍 생활전선에 나섰답니다.
어머니를 돕고 싶어
한때 싸전에서 일을 한 적도 있었지요.
하지만 내성적인 남학생의 장사솜씨는 신통치 않았습니다.
딱하게 여긴 주변 어른의 소개로
잠깐 동안 관공서에 근무한 경험도 있었고요.


바다사진 공모 당선작
[대상] 항구의 아침/강혜선





중학교 영어교사와 고등학교 미술교사 자격을 취득한 뒤
교사생활을 하던 중
6ㆍ25징병으로 군인이 되었는데
군생활 중 2년간의 대학공부를 했습니다.
제대 후 다시 직장생활을 하며 야간대 학생이 되었습니다.
주경야독으로 30대엔 대학원에도 진학하기도 했으나
글을 쓰기 위해 도중에 접었지요.
시는 늘 그를 따라다녔지요.
언제부턴가 버릴 수 없는 친구가 되었음을 깨달은 게지요.


[장려] 통티모르의 아이들/김태균




시인은 보성, 성남 중고등학교 등에서
30여 년간 교직생활을 했지요.
유난히 아이들에게 시 암송시키기를 좋아하던
영어선생님이었습니다.
우리말로 시를 짓는 영어선생님이었지요.

8년 전인 1993년 퇴직했습니다.
아이들을 사랑했지만,
섬에 가고 싶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고 합니다.
남들보다 앞당겨 퇴직한 뒤
섬을 찾아 나섰습니다.


[장려] 해상진화훈련/박희봉




섬이 그리워서 돈을 모았지요.
평생 매달 월급에서 1%씩 따로 떼어놓았지요.
그걸 모은 돈이랑
퇴직금이랑 받아서,
그중 내가 쓸 돈 얼마간만 빼고는
나머지는 집사람에게 다 줬다고 합니다.

여자도 경제적인 힘이 있어야 자유로운 거라고
시인은 이야기 했습니다.
사실 그 동안 섬에 다니느라
가족에겐 많이 소홀했던 미안함이
앞섰음을 인정해야 하거든요.


[장려] 해무/진석봉




집사람 친구들은
'네 남편은 왜 그렇게 섬에 씌워 사냐.'고 했을 거라며
지레 짐작도 하는 걸 보면
아내에 대한 미안함은 여전한가 봅니다.
나이가 들고 나서 '그래도 당신 덕분에 내가 그만큼 시를 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종종 고맙다는 말도 한다는 데,
진심이라는 말까지 덧붙이는 걸 보면
아직도 쑥스러움이 남아있음이 분명하지요.
아직도 소년 같은 마음이 남아있는 게지요


[장려] 질주/최관식




무인도 500여개를 포함해
국내의 섬은 약 3,200개 정도 된답니다.
그 중 1,000개쯤을 만났다고 하니 대단한
섬 애호가인 셈이지요.
만재도는 10년이나 별러서 만난 섬이었답니다.
어렵사리 찾아간 섬이었는데
풍랑에 발길이 막혀 목전에서
뱃머리를 돌려야 한 기억도 두어 차례 된답니다.

뱃편도 간단치 않지만,
어떤 섬은 18일이나 끊임없이 걸어 다니며
글을 쓴 곳도 있답니다.
섬은 시가 되었지요. 바다는 시인을 불렀고요.

[장려] 연산호와 자리떼/강익찬




무명시절, 간첩으로 오인 받아
수시로 검문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나마 나으면 부동산 투기꾼이란 의심도 들었지요.
한 번은 배를 타고 가다가
출석부를 부르듯 줄줄이 섬 이름을 외어 맞히는 그를 보고
선장까지 간첩 아니냐며 놀랐다고 합니다.

성산포 일출 앞에 서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하다는 시인은
아직도 섬소년임에 틀림없습니다.


[장려] 어부/김용열




국민적 애송시가 된
'그리운 바다 성산포'가 태어난 건
우연이라고 시인은 이야기 합니다.
다른 시를 정리할 겸 성산포를 찾은 새벽,
일출 앞에서 뭉클대는 가슴을 참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시인은 주체 못하고
허겁지겁 바다 곁으로 달려갔습니다.

성산포가 부르고, 시인은 받아 적었습니다.
미처 노트도 챙겨가지 못한 터라
급한 대로 손바닥에,
뒷주머니에서 끌려나온 껌종이에
글을 적어 넣었답니다.
성산포 시가 대부분 짧은 건 그 때문이라고 합니다.


[장려] 성화 점등식/박경수




성산포 연작시 앞에
처음으로 출판사가 책을 내고 싶다고 나섰을 땐,
그만한 감격이 없었다고 시인은 회고 했습니다.
시인에게
자신의 시를 알아봐 주는 것 이상의 기쁨이 있을라고요.
시인은 시를 쓰고 출판사는 책을 만들어주는
이런 행복한 만남은 큰 행복을 만들어냈습니다.


[장려] 머드와 젊음/진정균




많은 사람들이 책을 찾았고
시인은 시를 쓴 것이 행복해지는 일이
벌어진 것이지요.
별다른 계약조건 하나 없이 건네준 원고가
20여 년간 즐겨 찾는 시집으로,
시낭송 음반으로
이렇게 남다른 사랑을 받았던 건
행복한 사건이지요.


[장려] 귀항/이규복


아무런 계약사항이 없었기에 지금도
인세 한 푼 받지 않는
스테디셀러이기도 하고요.

참 아름다운 시인 한 분을 만나 반가웠습니다.
행복하기도 했고요.
시는 사람을 순한 바람이 되게 하거든요.


-글. 신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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