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공화국/ 장근배
화살나무들이 울타리로 서있는 그 곳은 가을이면 단풍
이 좋았다. 옻나무와 화살나무 중 어떤 나무가 더 단풍이
고운 나무냐고 두 사람이 말씨름 하고 있을 때 화살나무
울타리 사이로 난 개구멍으로 몸을 굽혀 들어온 사람이 단
풍이 가장 아름다운 나무는 정금나무라고 우겼다. 그들은
모두가 시인이었다. 자기가 알고 있는 나무가 가장 아름다운
단풍이 든다고 우기는 시인들이 개구멍 사이로 모여들어
그 곳은 인구밀도 높은 시인 공화국이 되었다.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시인이라고 불러주면 시인이 되고,
자칭 시인이라는 사람들도 시인이 되는 그 나라는 시인의
숫자가 동네 강아지 숫자보다 더 많았다. 모두가 자기만
의 문법으로 노래 불러대는 시인 공화국에서 튀기 위해선
베일에 가린 것처럼 글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시인 두 사람
만 주막에 모이면 높은 지붕도 낮았다. 시는 설명이어서는 안
된다고 침을 튀기는 시인, 은유나 환유여야 한다는 시인, 리얼
리즘이나 모더니즘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밤을 새웠다. 어떤
사람은 그 게 무든 말인지도 모르면서 우기기도 했다. 그게
무얼 뜻하는지 모르기는 주막집 강아지도 마찬가지였다.
답이 없는 공론인 수밖에 없는 그들의 우김질은 끝 갈 곳이 없어
어떤 시인들은 튀기 위하여 날마다 술을 마시기도 하고 색다른
모자를 쓰기도 하고 파이프 담배를 물기도 하고 수염을 길기도
하였다. 울타리 밖의 사람들이 본 시인공화국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미친 사람들이었다.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淸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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