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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미술의 현장 84-유휴 공공시설을 문화예술공간으로

sosoart 2013. 5. 8. 15:26

지금, 한국미술의 현장 

  

(84) 유휴 공공시설을 문화예술공간으로

박현욱

                                                                               박현욱: 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부장

얼마 전 어느 일간지에 ‘잠실운동장 523억(5년간) 적자… 서울시, 중국에 땅 매각 추진’(중앙일보, 2013.4.2)이라는 보도가 났다. 88서울올림픽을 치룬 이후 잠실운동장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사실을 떠나 이제는 외국에 매각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제 역할을 못하고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먼저 잠실운동장이 어디 88년 서울올림픽만을 위해서 중요하겠는가? 원래 뽕밭이 있었던 잠실은 강남, 한강개발과 함께 빌딩숲으로 바뀌었으니 해방 이후 서울 성장사에 있어서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상징이다. 또 올림픽은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소위 ‘올림픽 정신’은 공공질서, 도시정책, 환경,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우리나라를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정신적 밑거름이 되었다. 그런 상징적인 장소가 경제적인 논리에 의해 해외로 매각이 검토되고 있다는 것은 참 가슴 아픈 일이다. 또 하나는 경제적인 면에서도 연간 100억 원이 넘는 잠실운동장 운영에 필요한 명시적 비용보다도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데 오는 암묵적 비용은 이보다 훨씬 더 클 것이라는 생각이다. 

왜 난데없는 잠실운동장 이야기냐고? 잠실운동장에 관한 보도기사가 나간 10일 뒤 다른 한 신문에서는 ‘미술자료 5만6천여 점 맡아줄 곳 어디 없소’(한겨레신문, 2013.4.12)라는 기사를 읽었다. 내용인즉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의 김달진 관장이 요즘 시름에 빠져있다고 한다. 그동안 박물관을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아 공간을 마련해서 운영해 왔는데, 자금 회수 지점이 다가오는 요즘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어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김달진 관장은 자신의 일생을 미술자료 수집에 바쳐 국가나 공공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왔다. 그런 그가 자료를 보관할 장소를 구할 돈이 없어 길거리로 나앉게 생겼다니 남의 일 같지 않다. 그는 공적기관에서 자료를 맡아준다면 지금까지 수집한 모든 자료를 기증할 생각까지 하고 있다고 한다. 
  



유휴 공공시설을 문화예술공간으로 활용
모든 분야에서 아카이브는 해당 분야의 시간, 공간, 사람, 그리고 그 분야의 활동을 입증해 줄 중요한 1차 자료이다. 미술 분야에서도 많은 전시회가 열리고 작품이 생산되고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진다. 특히 전시회는 끝나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다. 결국 그 전시회를 말해줄 수 있는 것은 도록과 팸플릿, 포스터, 사진, 신문기사 등 아카이브 뿐이다. 가끔 어떤 작품이나 무명의 작가가 미술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훌륭한 작품과 작가로 재탄생되는 경우가 있는데, 모두 아카이브로 인해 작품과 작가의 가치가 재평가 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해 전부터 미술, 공연 등 문화예술분야에서 아카이브의 중요성이 거론되었고, 분야별로 공공기관에서 아카이브를 수집하여 정리하고 있다. 그러나 워낙 출발이 늦은 공공의 경우 앞선 시기의 아카이브에 대해서는 빈 것들이 많다. 오래 전부터 묵묵하게 일을 해온 개인수집가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초창기 각 분야의 활동들을 재구성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우리 주위에는 잠실운동장과 같은 용도를 찾아 해매는 유휴 공공시설도 많고, 또한 김달진 관장과 같이 해당분야의 소중한 자료를 오랫동안 수집해온 개인수집가들도 상당히 있다. 그런데 한쪽은 시설을 활용할 방도를 찾지 못해서 쩔쩔매고 있으며, 다른 한쪽은 자료를 보관할 시설이 없어서 발을 동동 굴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휴 공공시설을 문화예술자료를 보관하고 전시하고 서비스하는 문화예술공간으로 활용할 묘안은 없을까? 경제 논리를 떠나 좀 다른 각도에서 고민한다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이러한 안타까운 문제들이 쉽게 풀릴 수 있을 것이다. 경제가 우리를 살아가게 해준다면, 문화와 예술은 우리에게 살아야하는 이유를 말해주기 때문이다.

 출처: 김달진 미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