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을 걷다
안녕하세요. 문화포털 기자단 1기 김유리입니다:)
기다리던 봄날씨가 조금 늦게 찾아온 듯 합니다. 4월 내내 쌀쌀하더니 이제서야 조금 따뜻해졌네요. 봄이 오면 역시 기지개를 펴고 앞동산 뒷동산에 봄소풍 한 번 가야되겠죠? 오늘은 지난 5월 첫째 주 주말에 다녀 온 ‘서촌답사’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 도서 '서촌방향'
저자 설재우 작가님은 매주 주말마다 서촌답사를 진행하고 계신다.
서촌방향의 저자이신 설재우 작가님은 30년을 넘게 서촌에서 살아온 말 그대로 ‘서촌 토박이’입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 서촌이지만, 최근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모습속에서 서촌이 가진 추억을 알리기 위해 ‘옥인상점’이라는 서촌연구소를 만들었습니다. 여전히 서촌에 자리를 잡고 서촌에 서린 역사와 가치를 알리고 계시죠. 매주 주말이면 작가님은 마이리얼트립을 통해 서촌답사를 신청한 여행객들과 함께 서촌 답사를 진행합니다. 그 때 마다 사람들은 서울에 아직도 이런 골목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라고, 다닥다닥 옹기종이 붙어있는 많은 집들처럼 저마다의 이야기와 역사를 지닌 서촌의 가치에 또 다시 놀라곤 하죠.
-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 서촌
지금 서울이 한강을 기준으로 강남과 강북으로 나뉘어 지듯이 옛날의 서울은 북쪽과 남쪽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북촌에 광화문이 있다면, 서촌은 경복궁을 기준으로 청와대와 인왕산이 일대를 서촌이라고 부르고 있죠. 청와대와 인접한 탓에 개발이 제한되어 그때 그 옛날의 골목과 한옥이 그대로 남아있는 동네입니다.
조선시대 지형도와 90%가 일치한다는 서울 안의 유일무이한 동네 서촌, 북촌의 고급스럽고 깨끗한 한옥에서 어딘가 쓸쓸함을 느끼셨다면 오늘 저와 함께 글과 사진으로나마 서촌답사를 함께 해주세요:) 추억과 감성의 골목길로 지금 초대합니다.
- 일제시대의 아픔이 서린 경복궁역 ~ 경복궁 영추문
답사의 시작은 경복궁역에 위치한 메트로 미술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가본 경복궁역은 으리으리한 동굴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여기서 오늘 답사를 함께 할 다른 분들과 설재우 작가님과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경복궁역의 예전 이름은 중앙정부청사역.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만든 조선 총독부 건물을 해방 이후 정부청사로 사용했었는데요. 문민정부 시절 조선총독부를 폭파시키면서 역의 이름도 경복궁역으로 바뀌었다고 하네요. 초등학생 때 뉴스에서 조선총독부를 헐던 장면을 본 것이 어렴풋이 기억났습니다.
경복궁역을 벗어나 횡단보도를 건너니 영추문과 경복궁 돌담길이 나왔습니다. 오로지 나가기만 할 수 있다는 (강제성은 없지만) 영추문은 가을이 나가는 문이라는 뜻이라네요. 동서남북은 각각 4계절을 상징하는데 그 중에서도 서쪽은 가을을 상징한다고 해서 영추문이라고 합니다.

영추문의 양쪽 벽은 옛것 그대로가 아니라 복원된 것입니다. 조선총독부가 10년에 걸쳐 건설이 되었는데, 그 때 이용한 화강암들을 모두 전차로 옮겼는데, 그 전차가 바로 영추문 앞을 지났다고 하네요. 10년 동안 그 많은 화강암을 옮기면서 영추문의 기반이 약해졌고 총독부가 세워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벽이 무너져버리고 만 것 입니다. (친절한 작가님의 설명) 때 마침 이 날은 숭례문 복구 기념식이 있던 날인데, 사람의 욕심에 병들어가는 문화유산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였습니다.
* 작가님의 한마디 : "사실 영추문 복원은 그리 잘 된 복원이 아니라고 합니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복원의 흔적이 너무나도 뚜렷하죠. 로마에 가면 콜로세움이 복원되어있나요? 무너졌으면 무너진 그대로 있지요. 우리나라도 너무 복원을 당연시 여기기 보다는, 훼손 그 자체를 역사로 인식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작가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무너진 영추문을 보며 왜 영추문이 저리 되었는지, 아픈 역사를 다시 한번 상기해 보는 것이죠."
- 새끼들은 잘 자란다, 백송 이야기

작가님을 따라 들어간 골목에는 커다란 나무 덩어리(?)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 나무들의 정체는 바로 하얀 소나무. 백송나무입니다. 작가님이 사진으로 보여주신 원조 백송나무는 정말 하얗고 크던데(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백송나무였다고 합니다.) 왠일로 우리 앞에는 4개의 백송나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원조 백송나무가 태풍으로 죽어버리자, 솔방울 4개를 묘목으로 지금의 백송나무 4그루가 되었다고 합니다. 재미있게도 이 4그루의 백송은 주인이 다 다른데요. 문화재청, 서울시, 종로구, 그리고 홍기옥 할머니의 소유입니다.
그 중에 한그루는 홍기옥할머니 소유. 백송의 희귀성에 눈이 멀어 독한 누군가 독한 농약을 쳤는데, 할머니가 맨손으로 그 농약들을 거두어 나무들을 살렸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정성에 4그루 중 한그루는 할머니에게 기증 한 것이죠. 백송들을 삥 둘러보면 백송을 추모하는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 집 건너 집이 예술가를 품던 곳
(위) 시인 이상이 운영하던 제비다방. 현대에도 영업을 하지만 지금은 리모델링 중
(아래) 살짝 보이는 2층이 이중섭의 하숙집이다. 사진을 찍기도 버거울 정도로 좁은 골목덕에, 공사가 불가능해 하는 수 없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서촌 골목길투어를 하면서 오래된 집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좁은 간격으로 붙어있는 많은 집들은 얼핏 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나름의 의미가 깊은 집들이 참 많았는데요. 제일 처음 만난 것은 천재 문학가였던 이상의 '제비다방'입니다. 이상은 시인으로 활동함과 동시에 '제비다방'이라는 다방도 함께 운영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리모델링으로 문이 닫혀있어서 아쉽게도 안쪽은 둘러보지 못했습니다. 그밖에도 '소풍'으로 유명한 시인 노천명이 살던 집, 화가 이중섭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전시회 작업을 하던 하숙집도 서촌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한 집 걸러 한 집이 우리나라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예술가를 품었다고 하니 답사 내내 설명을 듣는 머리속은 시와 그림을 떠올리느라 바빱답니다.
- 오랜 골목 한 켠에서 건재한 역사를 만나다, 이상범 가옥
서촌 답사의 하이라이트는 과연 청전 이상범님의 가옥이었습니다. 정천 이상범 선생님은 근대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거장이었습니다. 해군사관학교에 보관되어 있는 이순신장군 초상화를 그렸으며, 특히 산수화에 능했던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동아일보 재직 당시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일장기를 달고 금메달을 획득한 손기정선수의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워버린 이른바 ‘일장기 말소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위) 이상범가옥의 입구 / (아래) 한옥서만 볼 수 있는 하늘, 그리고 회화나무
이웃집의 초인종을 누르듯, 골목 끝 고즈넉한 한옥의 벨을 누르면 청전의 가옥이 열립니다.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는 가옥의 지붕뒤로는 회화나무도 보이고요. 회화나무는 선비정신을 뜻한다고 해서 나라의 허가 없이는 심을 수 없던 귀한 나무였습니다.
가옥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부엌입니다. 청전을 찾아오는 손님이 많다보니 여자들이 부엌에서 상을 차릴 일이 많았는데, 음식을 상에 나를 때 허리가 아프지 않도록 허리높이에 맞게 부엌을 개조한 것입니다. 진정한 젠틀맨은 강남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서촌에 있었나 봅니다:)

(위) 작업실의 습도를 맞추기 위해 만들어진 어항 / (아래) 작업실 일부분 모습
청전의 막내며느리이신 할머니가 집에 계신 날에는 생전 작업을 하시던 작업실을 볼 수 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청전께서 생전에 쓰시던 붓 하나까지 그대로 깨끗하게 보관하고 계셨습니다. 작업실 한켠에는 큰 욕조같이 생긴 것이 잇는데요, 목욕을 하는 욕조가 아니라 잉어를 키우던 어항이라고 합니다. 작업실의 습도를 조절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았다고 하네요.
할머님은 청전의 작품들과 소품 하나하나 친절히 설명 해 주셨습니다. 시아버지이신 청전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느껴지면서, 살짝 코끝이 찡해 지더군요.
- 나라를 지키려던 자, 나라를 팔아먹은 자
박노수가옥
이상범 가옥에서 몇걸음 지나지 않아 또 다시 만난 화백의 가옥. 바로 이상범의 제자인 박노수 화백의 가옥입니다. 역시 한국 근대미술사에 중요한 인물이기도 하지만, 배우 이민정의 외할아버지로 더욱 알려져 있죠^^; 얼마 전 타계하신 후 가옥은 기증되어 박물관으로 변신할 예정입니다. 현재 공사중이라 안에 들어가볼 수는 없었어요.
이 가옥은 박노수 화백 가옥 그 이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는데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조선말기, 그러니까 일제의 지배를 받기 직전입니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후이신 순정효왕후가 병풍뒤에서 어전회의를 엿듣고 있었는데, 당시 회의헤서는 친일 대신들이 한일합방조약을 순종에게 강요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순정효왕후는 옥쇄를 당신의 치마속으로 숨기고 내어주지 않았는데 큰아버지인 윤덕영에게 강제로 빼앗기고 말았죠. 윤덕영은 나라를 팔고 받은 댓가로 어마어마한 별장을 짓게 되는데 그 별장의 일부분이 지금의 박노수 가옥이라고 합니다. 일명 ‘언커크저택’이라고도 불린 이 저택은 대부분 화재로 소실되었고 윤덕영이 딸을 위해 지었다는 별장만이 박노수 가옥으로 남아있는 것이죠.
옥쇄를 치마속에 숨기면서 까지 나라를 지키려고 했던 순정효황후의 낡은 생가 역시 서촌에 자리하고 있는데요. 나라를 지키려했던 왕후의 생가와 나라를 팔아먹은 자가 댓가로 받은 아방궁이 지척을 거리에 두고 함께 있는 동네 서촌. 얼마나 많은 아픔의 역사가 이 동네에 서려있는 것일까요.
- 서촌연구소 옥인상점
(위)옥인상점 입구 (서촌방향의 저자 설재우작가님이 만든 문화공간 02-737-4788)
(아래) 옥인상점 앞에 붙어있는 사진. 사진속의 사진을 통해 서촌의 과거와 현재가 만난다.
친절하게 가이드를 해주시던 작가님이 운영하시는 옥인상점은 서촌의 모습을 지키고 알리는 곳입니다. 이 곳은 할머니가 운영하시던 ‘용오락실’을 작가님이 인수해서 개조한 곳인데요. 곳곳에 오락실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서촌방향’ 책속을 보면 용오락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동전교환기 없이 주인할머니가 일일이 동전을 바꿔주시던 따뜻한 오락실이었다고 합니다.
서촌에 놀러가시는 분들 계시면 옥인상점에도 들러보세요. 인상좋으시고 친절하신 작가님이 반갑게 맞아주실 것 같아요:)
(위) 아날로그 방범창 서촌 / (왼쪽) 어디에서도 보이는 인왕산 / (오른쪽) 나무가로등
소개 해드린 곳 외에도 참신한 아이디어로 굳건한 지역상권을 유지하고 있는 통인시장, 백호가 살던 왕의 정기가 흐르는 산 인왕산. 그리고 할머니의 인정과 손맛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던 점심메뉴까지 다 소개 해드리고 싶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던가요?
직접 설재우작가님의 친절한 가이드를 받으며 서촌의 고즈넉함을 즐기고 싶은 분들을 위해 이만 줄이겠습니다.
덧붙여, 답사를 끝내고 몇일 뒤에 우연히 신문기사를 하나 보았는데요. 서촌을 북촌과 비교하면서 ‘폐허’라며 극단적으로 표현 한 기사였습니다. 그런데 그 ‘폐허’라는 표현이 각종 프렌차이즈 상권 입주와 같은 상업적이고 경제적인 기준에서만 판단되어 나온 것이었습니다. 돈 되는 것이 다가 아닐텐데, 역사적 의미와 가치가 높은 이 따뜻한 동네를 그렇게만 바라보는 기자님의 시선이 너무 안타깝더군요. 실제로 서촌의 지역 상권은 건재하답니다. (아무래도 기사를 쓰신 기자님 서촌답사 한 번 보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