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樂茶軒-문화와 예술/詩가 있는 뜨락

그리움/ 박건한

sosoart 2013. 6. 3. 22:13

 

그리움

                          박건한

 

빈곳을 채우는 바람처럼

그대 소리도 없이

내 마음 빈 곳에 드러앉아

나뭇잎 흔들리듯

나를 부들부들 떨게 하고 있나니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아니 보이지만 만질 수 없는 어둠처럼

그대 소리도 없이

내 마음 빈 곳에 드러앉아

수많은 밤 잠 못 이루게

나를 뒤척이고 있나니

 

 

 

오늘 /박건한

바위도 그 언젠가는 돌멩이
흙도 그 언젠가는 먼지
바위가
마침내 먼지되어 사라지는 날...

따져보면
오늘이 바로 그날.....

 

 

어느 날 갑자기

                                              박건한

 

이슬은

아침의 풀잎세계를 돌돌 말아

지평선 아래

어느 마을 마당에

지도이듯 펼쳐 놓고 사라지고

 

갈매기는

저녁의 타는 놀 한 자락 끌어다

수평선 아래

바다 맨 밑바닥에

비단 필이듯 펼쳐 놓고 사라지고

 

사람은

한평생 그 무엇 한 끝을 붙잡고

땅속 깊은 어느 망각의 골짜기로

어느 날 갑자기

바람이듯 무너지듯 사라지고

 

사라지고 말면 그뿐.

그런데

과연 그 무엇은 무엇이며

무엇이 혼불 되어

하늘나라로 다시 치솟는 것일까.

 

 

 

                        —《미네르바》201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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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한 / 1966년 《문학》지 신인작품으로 등단. 1977년 시집 『우리나라 사과』간행. 파주 출판도시 활판공방 주간.

 

우리나라 사과

                   박건한 

 겨울에
오히려 뺨이 붉은 당신, 언제나
여름날의 햇살과 시냇물소리 속에 있고
그러나 당신의 붉힌 뺨이 붉혀지기 전에
나는 벌써 겨울보다 먼저 와 있는
봄 속을 뛰어간다.
가령 이른 새벽녘
옛날의 미술사가 칼그네에 다시 오르고, 사방에서
시린 눈빛들이 모여서 수런거리는
때는, 늘
내게 기침을 촉구하는 당신.
겨울에 마침내 내게 와서
바람결도 끊긴 잠 속에서도
이처럼 흔들어 깨우는가.
드디어 감은 눈 속의 뜬 눈으로
내가
우리 집 뒷마당에 서성이는
헛것들의 옷자락에라도
매달릴 때까지......
그러나 당신의 파랗게 질린 뺨이 질리기 전에
이미 여름날의 무성한 잎들을 데불고 가는
나를 행여 아시는가.
아직은 어린 신부
부끄러운 당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