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樂茶軒-문화와 예술/詩가 있는 뜨락

[스크랩] 저녁 먹고 동네 한 바퀴 / 복효근

sosoart 2013. 10. 1. 21:22

 

 

 

 

 

 

 

 

 

6월 저녁 어스름

어둠이 사물의 경계를 지워나갈 때

저녁 먹고 동네 한 바퀴

어두워지는 일이 이리 좋은 것인 줄 이제 알게 되네

흐릿해져서

흐릿해져서 산도 나무도

무엇보다도 죽도록 사랑하고 죽도록 싸웠던 일들도 흐릿

흐릿해져서

개망초 떼로 피어선 저것들이 안개꽃이댜 찔레꽃이댜

안개꽃이면 어떻고 찔레꽃이면 어뗘

개망초면 어떻고 또 아니면 어뗘

꽃다워서 좋더니만

이제 꽃답지 아니해서 좋네 이녁

화장을 해서 좋더니

화장하지 않아서 좋을 때가 이렇게 왔네

저녁 이맘때의 공기 속엔 누가 진정제라도 뿌려놓은 듯

내 안에 날뛰던 짐승도 순하게 엎드리네

이녁이라고 어디 다를라고

뭐 죽도록 억울하지는 않아서 세상 다 용납하고 받아들이겠다는 듯

어둠 속에 둥글어진 어깨를 보네

이대로 한 이십 년 한꺼번에 더 늙어지면

더 어둡고 더 흐릿해져서

죽음까지도 이웃집 가듯 아무렇지도 않을 깜냥이 될까

모든 일이 꼭 이승에서만이란 법이 어디 있간디

개망초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뗘

꽃이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뗘

그때 기억할까 못 하면 또 어뗘

저녁 먹고 동네 한 바퀴

 

지는 꽃 쪽으로도 마음 수굿이 기울어지던

 

 

 

                                     저녁 먹고 동네 한 바퀴 / 복효근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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