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탁/ 김지하
새파란 별이 뜬다
가슴 복판에 배꼽에
뇌 속에서도 뜬다
나무가 내 속에 자란다
나는 죽어서
나무 위에
조각달로 뜬다
탄생의 미묘한 때를
알려다오
박차고 나가
우주가 되리
부활하리
- 시집『중심의 괴로움 중』(솔,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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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20여년 전 시인이 모 일간지에 급진세력을 비난하는 내용의 글을 발표하고서 격심한 논쟁을 불러 일으킨 뒤 1년 5개월간의 침묵 끝에 쓴 글이다. 70년대 옥고를 치른후 80년대에는 시인으로서 보다는 사상가로서 더 잘알려진 김지하씨는 이 시에서 그동안 가꿔온 생명사상을 주제로 생명기운의 우주적 순환과 탄생의 신비를 묘사하고 있다. ‘줄탁동기’란 본시 불가에서 나온 말로 ‘줄’은 병아리가 막 껍질을 깨고 밖으로 나오려 할 때 안에서 쪼는 것을 말하며, ‘탁’은 같은 때에 암탉이 밖에서 껍질을 쪼는 것을 뜻한다. 세상에 첫발을 디딜 때 안팎의 관계가 이러해야 하듯이 깨침을 위한 단계에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인용할 때 주로 쓰는 말이다.
요즘은 이 말이 종교불문하고 기독교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것을 듣는다. 인간을 찾아오시는 하나님과 응답하는 인간이 만나는 지점을 두고 같은 말을 쓴다. 김지하의 이 시에서도 불교의 윤회와 기독교의 부활이 혼재해 있다. 모든 일에는 순서와 시기가 있다. 그 시기를 놓치면 성사가 안 되는 것이 세상 이치다. 새 역사를 쓰고 새 시대를 만들어 가는 데 있어서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때를 놓치거나 너무 앞서게 되면 많은 희생이 따르고 비극적 상황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음을 우리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참으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가르침이자 매력적인 이치라 하겠다.
계절의 순환과 인생의 생로병사도 우주의 크다란 신비, 사랑의 신묘한 줄탁동기, 그 조화로움일 것이다. 줄탁동기에도 선행의 조건이 있을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잠언처럼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이 우선이다. 그리고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은 선물을 받는 것과 같다'는 말도 있듯 적절한 때의 조언도 필요하다. 장단이 맞고 타이밍을 교감하고, 시그널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채널을 잘 맞추어 경청함이 무엇보다 중요하리라. 손학규 전 대표의 재보선 출마포기도 줄탁동기의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한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정의당 천호선 대표가 제2의 부마항쟁을 일으켜 박근혜정부를 규탄해야 한다는 부산 발언은 줄탁동기의 원리와도 거리가 멀뿐 아니라 정치적 상상력이 지나치게 뻗어간 큰 실언이 아닐 수 없다.
권순진
Time / Alan Parsons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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