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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꿈꾸는 농토農土를 그리는 화가 박정렬

sosoart 2013. 11. 10. 22:44

 

꿈꾸는 농토農土를 그리는 화가 박정렬


 

박정렬 작 : 영원한 토지,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두물머리 ,97*194센티미터, 2004.

영원한 토지 : 충북 충주시 음성군 소태면, 122*244센티미터, 2005.

영원한 토지 : 경남 하동군 하동읍내 섬진강변 두곡, 91*116센티미터.

영원한 토지 :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귀여3리, 130.3*89.4센티미터.

영원한 토지 : 포항시 기계면, 90.9*72.7센티미터.

영원한 토지 : 전북 정읍시 감곡면 방교리동곡, 90.9*65.1센티미터.

영원한 토지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삼옥리 송이골, 90.9*72.7센티미터

 

 

꿈꾸는 농토農土를 그리는 화가 박정렬

이시환(시인/문학평론가)


때가 되면, 그 너른 논밭의 땅들이 쟁기와 괭이질로 차례차례 뒤엎어지고, 그 위로는 마법의 손길이 지나간 것처럼 이내 파랗게 혹은 누렇게 벼들이 자라나 익어가고, 붉은 황토밭에서는 이쪽 끝에서부터 저쪽 끝까지 줄줄이 골을 따라 비닐이 덮어씌워져 반짝거리는데 그 모습이,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밀려오는 동해바다 눈부신 파도 같다. 하얀 물갈퀴가 지나가는 곳마다 어느새 수박과 참외 넝쿨 우거지고, 고구마 고추 배추 무 등 온갖 채소들이 번갈아가며 무럭무럭 자라난다.


그 너른 농토 구석구석으로 골고루 뿌려지는 햇살과 비와, 바람 속에서 저들의 생명이 무르익어 저마다 열매와 몸통과 뿌리를 다 내어 놓으면 부지런한 농부들의 손길과 발길이 그야말로 논두렁과 밭두렁을 넘나들면서 우리들의 식탁이 더욱 풍성해지건만 정작 농부들의 삶은 언제나 고단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대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농부들의 삶은 참으로 신기하기까지 하다. 뿌린 대로 거둘 수 있도록 다 내어 놓는 대지(大地)는 어느새 텅 비고, 언제 그랬냐는 듯 하얀 눈[雪]과 적요(寂寥)로 뒤덮인다. 군데군데 논 가운데에는 낟가리가 서있고, 논두렁 밭두렁에서는 마른 풀잎만이 사각 사각댄다. 그 너른 농토 구석구석에서 흘린 농부들의 땀과 피로와 노고를 다 덮어둔 채 새로운 꿈을 꾸며 깊은 잠을 자는 대지는 마법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 대지, 그런 농토를 있는 그대로 즐겨 그리는 화가가 있으니, 내 고향 출신 박정렬 화가가 바로 그다. 그의 그림은, 사람과 더불어서 숨을 쉬고 생명력을 내품는 농토가 중심소재다. 그래서 그의 화폭 안에서는 정작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지만 그 보이지 않는 사람의 손길과 발길이 지나간 흔적만은 역력하다. 어쩌면, 그는 그 농토를 통해서 흙의 생명력을 말하고 싶고, 그 위에서 노동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단한, 아니, 거룩한 삶의 역사를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얗게 눈 덮인 논과 밭이 고요하다. 아니, 쓸쓸하다. 아니, 넉넉하다. 아니, 텅 비어있는 농토의 침묵이 무언가를 귓속말로 전해주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의 손길이 머물고, 사람의 분주한 발길이 닿아야 비로소 새롭게 새 생명들로 꿈틀대고 넘실거리는 우리들의 대지요, 농토요, 흙임에 틀림없다. 바로 그곳이 농부들의 삶이 펼쳐지며 언제나 새 역사가 시작되는 현장인 것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바라보노라면 더욱 경건해지고 거룩해지기까지 하다.


텅 빈 겨울 대지가, 농토가 눈에 덮인 채 단잠을 자며 꾸는 꿈을 엿보게 하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농부들의 분주한 마법의 손길을 보게 하고, 그 적요함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역사가 깃들어 있는 ‘웅변하는 침묵’이 바로 박정렬 화가의 그림이 갖는 힘이요, 생명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012년 03월 17일

출처 : 추억은 영원히
글쓴이 : 예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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