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樂茶軒-문화와 예술/詩가 있는 뜨락

붉은 깃털의 새떼/ 김용택

sosoart 2013. 12. 28. 19:52

 

 

 

제주의 안개낀 초원에서

 

 

붉은 깃털의 새떼

                              김용택

 

마을 앞 정자나무 아래 들면

숨을 멈추라

바람의 노래를 들을 것이다

울고 왔다 웃고 갔을 인생과

울고 왔다 울고 간 인생들을

그리고 그 사랑을

그리하여 그 세월이 두 팔로도 모자라게

자랐음을

 

 

이 나무 아래 들면

눈을 감으라. 수없이 많은

새 이파리들이 새 역사를 쓰고

새 정부를 조각하는 꿈을 꿀 것이다

나뭇가지들이 자라는 동안

달빛이 나뭇잎들을 지나며 전설을 만들고

사랑하는 이들이

물고기들이 물을 차고 뛰어올랐다가 떨어지며

일으키는 파문 속에 갇혀

그대를 기다리다 갔음을 알리라

 

 

이 나무 아래 들면 발걸음을 멈추라

이 나무가 한 알 작은 씨앗이었음을

바람과 비와 햇살을 품은

흙 속에 묻혀 돋아난

두 잎

어린 새싹이었음을 눈부셔하라

 

 

발걸음을 멈추고 숨을 멈추고

눈을 감고 생각하라

이 나무의 씨가 또 한그루의 커다란

나무를 키울 씨를 이 지상에 떨어뜨릴 것임을 믿으라

그들이 해와 달과 바람을 따르며

이 세상으로 솟아오르는

그 소리를 들으라

아버지가 죽고 그 아들이 죽고

그 아들이 태어나 이 나무 아래 서서

나무를 올려다볼 것임을 믿으라

어둔 밤 별빛이 지상을 지나며 하는 일이 끊임없음을

그 사랑의 노래를 들으며

어느 날 땅으로 내린 나뭇잎들이

일제히 날개를 치며

눈부신 하늘로 날아오를

붉은 깃의 새떼가 될 것을 믿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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