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밥바라기 추억/ 장하빈
겨울 금호강가에서 그에게 편지를 썼다
등에 업혀 새록새록 잠들다가
어두운 강물 속으로 사라져간 개밥바라기
하얗게 얼어붙은 강어귀에서
모닥불 지펴놓고 그를 기다렸다
한참 뒤, 폭설 내려와
강의 제단에 바쳐지는 눈발 부둥켜안고
모래톱 돌며 齊(제)를 올렸다
눈 그친 서녘 하늘에 걸린 초롱불 하나
- 시집『비, 혹은 얼룩말』(만인사, 2004)
............................................................................
개밥바라기는 저녁 서쪽 하늘에 가장 먼저 보이는 금성의 별칭이다. 하지만 이 시의 배경을 안다면 결코 낭만적으로 개밥바라기를 추억하지는 못할 것이다. 시인은 사랑하는 어린 아들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면서 ‘어두운 강물 속으로 사라져간 개밥바라기’를 평생 납덩이로 가슴에다 묻는다. 부모의 죽음은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천붕天崩)이라 했고, 자식을 앞세우는 것은 창자가 끊어지는 애달픔이라 했다. 그 애달픔은 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슬픔(참척慘慽)이라 하는데, 자식 잃는 것보다 더한 삶의 고통은 없는 것이다.
그럴 때 부모들은 자식의 죽음이 내 탓이라 여기는 죄책과 분노에 빠지는데 아마 시인도 그랬을 것이다. 김동리는 큰아들을 경기로 앞세우고 ‘한 조각 구름되어 날아간 날, 하늘엔 벙어리 같은 해만 걸려있더라... 지금도 천길 하늘 위에서 우느냐?’며 10년이 넘도록 아파했다. 박완서도 1988년 당시 스물다섯 레지던트였던 외아들을 잃고 수녀원에서 스무 날 넘게 하느님에게 ‘한 말씀만 하시라’고 따졌다. ‘내 아들아, 이 세상에 네가 없다니 그게 정말이냐…무슨 죄로 그런 벌을 받는단 말인가. 하느님은 있는 것이냐?’라고 울부짖었다.
시를 읽으며 자연스레 정지용의 <유리창>이 떠올랐다. 그 역시 시인이 어린 아들을 폐렴으로 잃은 뒤 쓴 시로 절망과 슬픔을 이겨보려 애쓴 흔적이 행간에 빼곡하다.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중략)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중략)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이 시에서 '차고 슬픈 것' '별' '산새' 등은 모두 죽은 아이를 비유하는 시어다. 특히, '물 먹은 별'은 아이의 모습인 '별'을 바라보고 있는 시인의 눈에 눈물이 고였음을 말한다.
그리고 아이를 '산새'로 비유한 것은 산새가 나무에 잠깐 앉았다가 날아가는 것처럼 죽은 아이 또한 그 산새처럼 잠깐 살다가 갔다는 허무감을 드러낸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유리창’은 아이에게로 가는 걸 막는 단절을 의미함과 동시에 시야를 관통시켜 또 다른 세계관으로 연결하고 극복시켜주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서 침몰하는 세월호에 갇혀 배 창문을 통해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얼마나 끔찍한 장면이며 그 확대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또 한 번의 고통이고 참혹이었다.
‘개밥바라기의 추억’은 ‘서녘 하늘에 걸린 초롱불 하나’를 보면서 이승에서의 삶의 공간과 저 우주적 공간을 한층 성숙한 시선으로 이어가고 있는데,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에게도 지금은 저편 어두운 바다로 사라져간 개밥바리기별의 쓰린 기억이지만 언젠가는 저렇듯 우주적 시선으로 극복할 날이 오긴 올 것이다. 날마다 개밥바라기는 강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부모를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을 것이므로...
권순진
Goodbye Little Susy - Bandari
'同樂茶軒-문화와 예술 > 詩가 있는 뜨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벽 안개/ 신경림 (0) | 2014.04.27 |
---|---|
오월/ 오세영 (0) | 2014.04.26 |
슬프다고만 말하지 말자/ 이기철 (0) | 2014.04.25 |
[스크랩] 꽃으로 잎으로 - 유안진 (0) | 2014.04.25 |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0) | 2014.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