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저 붉은 얼굴
이영춘
아이 하나 낳고 셋방을 살던 그 때
아침 해는 둥그렇게 떠 오르는데
출근하려고 막 골목길을 돌아 나오는데
뒤에서 야야! 야야!
아버지 목소리 들린다
“저어--너-- 한 삼 십 만 원 읎겠니?”
그 말 하려고 엊저녁에 딸네 집에 오신 아버지
밤 새 만석 같은 이 말, 그 한 마디 뱉지 못해
하얗게 몸을 뒤척이시다가
해 뜨는 골목길에서 붉은 얼굴 감추시고
천형처럼 무거운 그 말 뱉으셨을 텐데
철부지 초년 생, 그 딸
“아부지, 내가 뭔 돈이 있어요?!”
싹뚝 무 토막 자르듯 그 한 마디 뱉고 돌아섰던
녹 쓴 철대문 앞 골목길,
가난한 골목길의 그 길이만큼 내가 뱉은 그 말,
아버지 심장에 천 근 쇠못이 되었을 그 말,
오래오래 가슴 속 붉은 강물로 살아
아버지 무덤, 그 봉분까지 치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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