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樂茶軒-문화와 예술/詩가 있는 뜨락

[스크랩] 가장 사나운 짐승/ 구상

sosoart 2014. 9. 1. 22:49

 

 

가장 사나운 짐승/ 구상

 

 

내가 다섯 해나 살다가 온

하와이 호놀룰루 시의 동물원,

철책과 철망 속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짐승과 새들이

길러지고 있었는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그 구경거리의 마지막 코스

“가장 사나운 짐승”이라는

팻말이 붙은 한 우리 속에는

대문짝만한 큰 거울이 놓여 있어

들여다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찔끔 놀라게 하는데

 

오늘날 우리도 때마다

거울에다 얼굴도 마음도 비춰보면서

스스로가 사납고도 고약한 짐승이

되지나 않았는지 살펴볼 일이다.

 

- 시집『인류의 盲點에서』(문학사상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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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사나운 짐승들이 많지만 내가 가장 사나운 짐승일 수 있습니다. 세상에 악한 사람들이 널려있지만 내가 가장 악한 사람일 수도 있고요. 세상에 이중인격자를 많이 보지만 내가 바로 그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일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늘 돌아보고 반성하지 않으면 언제 그렇게 돌변할지도 모릅니다. ‘거울에다 얼굴도 마음도 비춰보면서 스스로가 사납고도 고약한 짐승이 되지나 않았는지 살펴’보는 사람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인간입니다.

 

 사실인즉슨 호랑이와 승냥이 악어 따위가 사나워서 철책 안에다 가두어 두는 게 아니라 인간의 못된 탐욕 때문에 그들이 갇혀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눈에는 철창 밖의 우리 인간들이 ‘가장 사나운 짐승’일 겁니다. 인간의 이기와 욕심으로 무수한 생명들이 무참하게 죽어나가고 그 죽음조차 생명에 대한 배려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잔인함에 이빨을 떨게 합니다. 동물에 대한 해코지만이 아니라 같은 인간을 향해 저질러지는 잔혹사도 그러합니다.

 

 이 땅에도 지금 대량 학살에 버금가는 엄청난 인적 재앙을 겪으면서 오랜 기간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습니다만 세계 도처에서 태연하게 저질러지는 끔찍한 살인은 끊이지 않습니다. 맹수인 사자도 자신을 위협하거나 생존을 위해 먹이를 구할 때가 아니면 사냥에 나서지 않습니다. 동물은 제 배가 채워지면 더 이상 다른 동물을 해치지 않는데 반하여 인간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 이성적인 존재임을 자처하면서 때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오히려 더 사납고 위험한 존재입니다.

 

 하느님이 인간의 영혼에 심어 놓으신 선한 마음이 사라지는 순간, 곧장 사자나 호랑이 같은 짐승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아니 그보다도 훨씬 사납고 무서운 맹수로 전락해 버립니다. 그래서 히틀러나 피노체트, 이디아민이나 폴 포트 같은 이가 나타날 수 있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는 눈곱만큼도 없이 사람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인간의 영혼에 양심이 떠나가고 악신이 들면 인간은 뭐든지 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나중엔 자기가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마비상태에 빠져버리지요.

 

 더러는 그럴싸한 명분과 논리를 둘러대면서 자신들의 생각과 손이 전적으로 옳은 것인 양 사람의 목을 옥죄기도 합니다. 법과 원칙을 내세워 유족들과 대다수 국민들이 요구하는 특별법을 묵살하고 있는데, 애시당초 법과 원칙과 절차가 지켜졌더라면 일어날 변고였겠습니까. 졸지에 비참하게 자식을 잃은 유족들 입장에선 복수라도 하고 싶은 심정일 터인데, 진실을 알고 싶다는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와 명분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한 사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살아도 제대로 살지 못하고 아파하고 있습니다. 피차 고약한 짐승이 되는 일만은 막아야겠습니다.

 

 재작년 저도 하와이에 갔을 때 와이키키 해변 인근에 위치한 호놀룰루 동물원에 잠깐 들른 적이 있었습니다. 동물들이 갇힌 많은 우리를 지나 맨 마지막 자물통이 채워지지 않은 한 우리 앞에 섰습니다. 그곳엔 “Come and look. at the most dangerous creature on Earth”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나도 그만 지구상의 ‘가장 사나운 짐승’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그 후 조금 덜 사나운 짐승으로, 덜 위험한 동물로 살아가겠노라 다짐하였으나 그리 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정치인과 공직자들께도 거울을 한번 들여다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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