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들 비 퍼붓는 날, 벼락을 두려워하지 않으리
김기영
온갖 저주로 퍼붓는 폭우 사이로
벼락은 세상을 찢고 천둥은 지붕을 때릴 때
누군들 벼락을 두려워하지 않으리?
내 열다섯 소년이던 6.25사변 피난 시절
마을 사람들의 "벼락맞아 뒤질 놈"은
벼락을 맞고 까맣게 타서 죽었다.
내 비록
죄 짓고 살지는 않았지만
내 마음
저 지하의 갱도보다 더 깊숙한 곳에 감추어 둔
세상의 벼락맞아 뒤질 놈을 향한
마음 속 날카로운 칼을 버리지 않았음에
비오고 벼락 치는 날...
나도 조금은 두렵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거개의 그만한 이들은 인정이란 이름으로
“사람 사는 거이 다 그렇지 뭐....”
“사람이 밉나? 죄가 밉지!” 라며 너그러이 용서하고
제 마음 편히 추스르며 살아가는 데
바보 같은 내 인생은
가슴 깊은 곳에서 칼을 갈며
언젠가 유용하게 쓸 일이 있으려니....
소중히 보듬고 있었다
그러니, 벼락 치는 날
번개 번쩍이는 날
어찌 벼락이 무섭지 않겠는가?
버리자, 버리자, 버려 버리자......
세상 모든 미움, 즐거움
모두가 부질없음은 한 길로 통하는데
그냥 살자
그렇게 살다보면 한 세상 가는 것인데.....
그렇게 많은 사람 중에도
벼락을 맞을 놈은 마른하늘 아래서도 맞을 것이고
벼락을 맞아도 살 놈은 살 것이다
그래 그렇게 살아가자
나의 칼은 벼락에 맡기고
그냥 흙탕물 쏟아 흐르는 강변에서
도도한 소용돌이만 보면 되는 것이지....
비 쏟아지는 날
벼락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어디 나 뿐이며, 누군들 무슨 상관이냐?
젊은 시절 어느 노트에 적어놓은 어느 시인의 벼락이야기 입니다.
저도 십 수 년전 정권이 바끠어 온갖 비렁뱅이같은 자들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안하무인으로 공직의 질서와 도덕 그리고 양심을
저버린채 노는 꼴이 하 볼상 사나워 정년65세가 보장된 일터를 박차고 나왔었습니다.
세상에 나오니 직장이란 든든한 울타리가 없어지고 주변엔 사기와 거짓과 탐욕과 부조리, 부패만이 만연한 사회 속에서 퇴직한 직장인의 의욕과 순수는 처참하게 짓밟혀갔습니다.
이제 나이를 먹고 돌아보니, 내 자신에게도 세상물정 하나도 모르는근거없는 자신감과 책상물림들의 어리석음 그리고 옳고 바르게 살려는 착한 자는 그레샴의 법칙에 의해 악한 자의 밥이 되거나 도태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모든 욕심은 슬며시 내려놓게 되었고 깊은 호수의 물처럼 맑은 마음과 넉넉치 않아도 나물 먹고 물 마시며 그 생활에 만족하고 스스로를 즐기게 되는 도인의 마음이 되어감을 느낍니다.
이 시의 내용처럼 이 세상 벼락 맞아 죽을 놈들이 너무 많지만, 어느 벼락 치는 날 그놈들이 죽지 않았다고 한탄할 일도 없고 그저 자신의 성찰과 무욕의 마음으로 스스로 도인이 되어 살아간다면 그것으로 한 세상 왔다가는 것이려니 생각을 하기로 했습니다.
더 바란다면 그 미워했던 마음도 모두 버리고 마냥 무취, 무색으로 살아가는 것도 한 세상 사는 것이 아닐까 여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