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철도 신호체계의 역사를 간직한 대한제국기 철도 통표 | |||
작성자 | 문화재청 | 전화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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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5-07-02 | 조회수 | 30 |
아날로그 방식의 열차 운행 허가증 신호기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을까? 철도에서 사용하는 신호기의 시초는 1825년 영국에서 시작되었고, 말을 타고 가는 기마수는 기차가 출발하기 전 앞서서 출발하여 선로의 상태를 확인하고 안전하다고 생각되면 녹색깃발을, 선로 앞에 위험요소가 있을 때는 붉은색 깃발을 들어 표시했다고 한다. 대한제국기의 철도통표란 무엇일까? 통표라는 이름은 우리가 흔히 들어볼 수 있는 말이 아닐 것이다. 이는 단선구간 철도에서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증표로 사용했던 것으로 통표폐색기 설비가 도입되기 전, 기계장치를 이용하지 않고 양 역 간의 협의에 의해 역장과 기관사 간에 주고받던 일종의 열차 운행 허가증이다. 현재 국내에 남아있는 대한제국기의 철도통표는 5점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 개통 초기에 사용되었던 ‘경인선 572’, 1906년 경의선이 개통되면서부터 1908년까지 시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301’, 1904년 2월 서울~의주 간 군용철도 부설을 비롯하여 이후 부설되는 임시군용철도에서 사용되던 ‘3237’, 1902년 경의선 기공 이후 일부 공사구간에서 사용되다가 1906년 4월 경의선이 개통되면서 사용중지된 ‘1199’, 이후 1905년 경부선 개통과 함께 사용되었던 ‘경부선 2245’가 있다. 이후 통표폐색기가 나오면서 지름 10cm의 통표를 사용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근대의 견인차 역할을 한 증기기관차 세계적으로 기차가 처음 만들어지고 움직이게 된 것은 언제쯤일까? 1804년 2월 영국의 트레비딕이라는 사람이 화차5량에 10톤의 철과 사람 70명을 태우고 시험을 한 것 이 최초 철도의 모습이었으나 실패로 끝나고, 이후 1825년 영국의 조지 스티븐슨이 제작한 로코모션호를 시작으로 세계 각국에 철도 건설의 붐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언제 철도가 들어오게 되었을까? 1876년 2월 26일 병자수호조약 체결을 계기로 그해 4월 수신사로 파견된 김기수 예조참의가 1877년에 펴낸 저서 『일동기유』에 요코하마에서 신바시까지 처음으로 기차를 타면서 ‘화륜거’라 칭하며 소개한 것 이 최초이다. 이후 1887년 주미조선공사 박정양을 수행하는 이하영이 귀국하면서 미국에서 편리하게 이용했던 철도의 모형(기관차와 객차, 화차)을 구입해 들어와 고종황제와 대신들에게 보여주며 철도의 편리성과 효용성을 강조함으로써 철도 도입문제를 논의하게 된 것이다. 이후 많은 열강들은 철도 부설에 대한 치열한 경쟁을 벌였으며, 특히 일본은 몰래 한국에 측량기사를 데려와 은밀히 답사를 하는 등 한국의 철도부설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던 중 1896년 고종황제는 미국인 모어스에게 경인선 부설권을 부여하였고 특허를 받은 모어스는 1897년 3월 22일에 우각동역 터에서 한국 최초의 철도공사 기공식을 거행하였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으로 철도부설권을 차지하지 못한 일본은 경인선 부설권을 획득하고자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 모어스는 이러한 일본의 매수공작에 견디다 못해 일본에게 부설권을 매각했다. 경인선 공사기간 30개월 중 약 80%의 공사가 진행된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모어스에게 부설권을 매수한 일본은 1899년 4월 23일 인천에서 기공식을 다시 거행하고, 1899년 9월 18일 개통 시까지 5개월간 공사하였으나 당시 대홍수가 일어나 한강철교 부설이 늦어짐에 따라 공사가 완료된 구간인 한강 이전 인천에서 노량진역까지만 임시 개통을 하였다. 이때 발행된 [독립신문]에는 ‘철도 개업예식을 위해 인천에서 화륜거가 떠나 영등포(노량진)로 와서 내외 귀빈을 모시고 인천으로 향하는데 화륜거 구르는 소리는 우뢰와 같아 천지를 진동하고 기관차의 굴뚝 연기는 하늘로 솟아오르더라…’는 기사가 실렸다. 당시의 경인선에서 달리는 열차의 속도는 시속 22km로 인천에서 노량진역까지 1시간 30분이 소요됐다고 한다. 한강철교가 1900년 7월 5일 개통됨에 따라 경성역까지 전 구간 개통이 되어 11월 12일 경성역에서 개통 기념식을 거행하였고 이후 명실상부한 철도의 시대가 도래했다.
글. 박효진 (철도박물관 학예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