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걸작은 이성적이지 않다
모든 것은 하나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왜 이렇게 대작(大作)만을 그리는지, 어떻게 그 크기를 감당하는지에 관한 질문이었다. 심지어 크기만 한 게 아니다. 대작인데, 세밀화다. 나는 이숙자전이 열리고 있는 과천현대미술관 제2전시실에서 이숙자의 그림을 보면서 그런 질문을 하는 게 작가에게 실례가 아닌지 잠시 생각했다. 그런 질문은 너무 많이 듣지 않았나 싶었던 것이고, 그렇다면 답하기 지겨울 것이고, 그런 질문을 하는 나라는 사람은 얼마나 나태해 보일 것인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도 물었다. 묻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과천현대미술관의 제2전시실 안에 임시로 설치되어 있는 아틀리에에서 그와 마주 앉아서 말이다. 그는 반색했다. 왜 아무도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수상(受賞), 국전, 추천작가, 중앙미술대전, 기대, 의지, 부담 등의 단어들이 그의 말 속에서 흘러갔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런 거다. 이르다면 이른 성공을 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힘 있는 작품을 그리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목표를 세운다. 걸작, 다작, 대작.
“그걸 화판에 크게 써놓고 날마다 봤어요.” 나는 웃었고, 당혹스러웠다. 당혹스러웠기 때문에 웃은 건지도 몰랐다. 어쩌면 이렇게 솔직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말할 수가 없는데….” 이렇게도 말했다. “걸작은 모르겠고, 대작과 다작은 할 수 있겠다.” 또 이렇게. “다작도 어렵다, 하지만 대작은 할 수 있겠다!” 그러고 나서 그리게 되는 게 그를 유명하게 한 보리밭 연작이다.
보리밭 그림은 이미지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이 굉장히 다르다. 보리밭보다는 보리 한 포기를, 보리 한 포기보다는 보리 한 알을 보게 된다. 보리 한 알, 잎맥 한 줄기, 보리수염을 그리기 위해, 그 무수빽빽한 것들을 그리기 위해 몇 번의 붓질을 했을지, 그 무모한 에너지에 아득해지는 것이다. 이숙자는 이런 문장을 적어두었다. “파리 몸뚱이만 한 보리알의 모양을 만들기 위해 연황토 물감을 세필에 묻혀 끝이 뾰족하며 위쪽으로 휘어지도록 한 알 한 알 보리알을 그려 나갔다. 이삭 한 개에 30개 정도의 알이 보이고, 화판에 1,500개 이상의 이삭이 있으니 4만5천 개 이삭의 보리알을 그려야 하고, 이것을 7~8회 반복해야 한다. 그리고 보리수염은 보리알의 3배 정도인 15만개 가량의 선을 그어야 기본 작업이 이루어진다.(이숙자, 『이브의 보리밭』, 나남, 1991)”
아틀리에에서 작업 중인 그림의 제목은 <군우-얼룩소 3, 4>였다. 30년 전에 두 폭짜리로 그렸던 그림에 두 폭을 더 이어 붙여 그리고 있다고 했다. “어쩌다 보니 30년이 지났더라고요. 그런데 아직 새롭더라고요. 이유가 없어요. 내가 그리고 싶은데.” 흰색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젖소 그림을 그는 “내 스타일의 컨템포러리”라고 했다. 보리밭을 그리다가 소를 만나게 됐고, 소에서 젖소로 갔다. 백두산을 그리고 다시 젖소를 그리고 있는, 그러니까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는 흐름. 50년간의 이야기다. 50년간의 흐름. “대작만 됐지요.” 그가 말했다.(내가 보기에 그의 그림들은 ‘다작’이기도 했다.)
걸작은 무엇일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생각하는 걸작은 이렇다. “나는 믿는 게 에너지에요. 육체적인 에너지, 정신적인 에너지, 시간적인 에너지. 또 작가가 얼마나 몰입을 했느냐라는 진정성. 그 진정성의 강도. 그런 게 응축이 되면 뭔가 가슴으로 옮겨지는 게 있어요. 그런 게 있어야 해요. 지순하게. 지순한 작가로서의 생각이 전달 된다면.” 그와 헤어지고 돌아 나오면서 ‘지순(至純)’이라는 단어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더할 수 없이 순결한, 지극하게 순수한 어떤 경지. 그것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다가오는가. 영원히 풀리지 않는 그 비이성을 붙들고 섰을 때 한 예술이, 혹은 걸작이 태어난다.
글_한은형
소설가. 2012년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2015년 장편소설 《거짓말》로 한겨레문학상 수상. 소설집으로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가 있다.
출처: ART: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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