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공예 LIBRARY/미술·디자인·공예 자료집

김원근- 아이 같은 인류의 위대함/ 이선영

sosoart 2016. 8. 18. 20:37

김원근 / 아이 같은 인류의 위대함

이선영

아이 같은 인류의 위대함

  

이선영(미술평론가)

  

레진 에폭시를 재료로 만들어졌으며 화려하게 채색된 김원근의 인체상은 매우 유머러스하다. 그것들은 대부분 아무 액션을 취하지 않고 그냥 우뚝하니 서있을 뿐인데 웃음부터 나온다. 핸드폰을 들고 있거나 작은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있는 남자는 모든 상황을 한 장면에 딱 압축하고 있는 듯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조각의 전통을 따른다. 문학이나 영화와도 다르게 상황을 한 장면에 압축하기 위한 조각가의 노력은 당대의 문화적 습속에 대한 면밀한 연구를 필요로 한다. 다만 지금은 자연이나 종교를 배경으로 한 대리석과 청동의 시대가 아닐 뿐이다. 현대적 재료로 만들어진 김원근의 조각상은 정말 이렇게 생긴 사람이 주변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의 작품 속 인물처럼 생긴 것 자체로 주변을 압도하는 인간이 있다면 인기가 있지 않을까. 마치 만화 속 인물이 튀어나와 있는 것 같은 조각상들은 큰머리에 배불뚝이 몸매로 인체 조각의 이상적인 비례와는 무관하다. 






짧은 머리에 콧수염, 목이 안 보이는 땅땅한 체격이지만, 꽃무늬 남방에 금목걸이를 착용한 그는 나름 듬직하게 생겼다. 격렬한 운동과는 무관한 몸매의 사나이는 복서로 변신하기도 한다. 그는 화려한 가운을 걸치고 경기를 앞두고 비장한 표정을 짓거나 상대에게 패해서 깊은 상처를 입은 채 여인의 무릎에 뻗어 있기도 하다. 복서는 대결해서 싸워 이겨야하는 피곤한 남성의 운명을 대표한다. 남자라면 힘이 세야하며 상대를 때려눕힐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링은 경쟁자와의 승패가 분명히 결정되는 잔혹한 장이다. 문명은 갖가지 추상적 코드로 위장할 뿐, 힘의 역학관계라는 야만적 현실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성이 ‘해방’되기 전 남성은 자신과 자신의 확장 이라할 수 있는 가족을 대변하는 고독한 전사였다. 그러나 김원근의 작품은 그러한 남성적 정체성에 희극적 거리감을 보여준다. 작품 속 남자는 고독한 전사라기보다는 동네에서 힘 좀 쓰는 ‘아는 형님’같은 모습이다. ‘아는 형님’은 단순 무식해 보이지만 의리 있는 캐릭터다. 


그의 꼭 다문 입은 모든 상황에 대해 말이 필요 없이 행동으로 보여준다. 그는 어른의 몸에 아이 같은 유치한 감성을 가진 것일까. 김원근이 만든 모자 상을 보면, 남자 아이가 크기가 그대로 커져 어른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느끼한 콧수염이나 더부룩한 똥배는 어른의 특징이지만, 비례는 별로 변하지 않았다. 우직한 인상에도 불구하고 아직 빠지지 않은 얼굴의 젖살이나 작은 입, 무엇보다도 큰 머리는 아이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짧은 머리에는 개구쟁이 같은 모습도 남아 있다. 그의 작품에서 마초나 조폭처럼 생긴 남자는 꽃다발과 강아지를 들었고, 팔찌에 손가방을 끼고 있으며 여성들이 입을 만한 화려한 셔츠를 걸치고 있다. 그것은 성인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자 아이의 취향으로 간주된다. 그는 어른이 되어도 아이인 ‘키덜트’인 것이다. 인간의 문명에서 자연의 몫이 줄어듦과 동시에, 문화의 유아적 특징은 강화되었다. 어른-아이들은 끝없는 교육과 계몽의 대상이고, 재미있게 놀고 싶어 하며, 유희적이고 변덕스럽게 소비한다.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은 어른이지만, 소비자로서의 정체성은 아이에 가깝다. 현대의 소비문화는 인간의 아이 같은 특성을 최대한 고무한다. 한편 같이 등장하곤 하는 여성은 성인이다. 정장—원피스나 이브닝드레스에서 보여지듯, 여성의 정장은 얇은 속옷에 가깝다—을 입은 그녀는 남성에 비해 섹시하고 예쁘다. 남녀가 같이 재현될 때 남성은 어른처럼 여성은 아이처럼 묘사되는 것이 낭만주의적 사랑 이후 대세가 되었지만, 김원근의 작품은 그렇지 않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성을 안고 있는 남자는 다소 버거워 보이기 조차하다. 피에타 풍의 작품에서 상대를 보듬고 있는 여성이나 남성은 모두 버거워 보인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각자 서야하는 시대가 왔다. 이미지의 역사를 보면 초기에는 여성과 남성의 키 크기에 별로 차이가 없지만, 근대의 낭만주의 이후 여성의 여성성, 남성의 남성성이 더욱 강조되면서, 거의 어른남자와 여자아이의 조합이 이상적이 된다, 그런 모습은 ‘로맨틱한 사랑’에 대한 소녀적 환상을 부추키는 순정 만화 이미지에서 극대화된다. 


순정만화에서 여성은 너무 키가 작고, 게임에서 가슴은 너무 큰 기이한 모습이다. 게임 등에서 보편적인 남성용 여성 이미지는 아이 같은 얼굴에 가시적인 성적 기관이라 할 수 있는 젖가슴만 빌렌도르프의 비너스같이 거대하다. 근대이후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이 분리되고 사적역할에 한정된 성별분업이 강화되면서 여성은 ‘집안의 천사’이며 섹시한 아이로 재현되곤 하였다. 지배적인 시각의 전통에서 대부분의 여성상은 어머니를 제외한다면 아이 같은 모습이다. 김원근의 작품에서는 남성 역시 아이 같다. 거기에서 남성은 몸만 큰 아이로 재현된다. 인체 상들과 함께 서있는 작가는 마치 또래 친구들과 함께 있는 듯 든든한 모습이다. 아직 자신이 아이와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체성의 혼란이기 보다는 실제에 더 가깝다. 클라이브 브롬홀은 [영원한 어린아이, 인간]에서 털이 거의 없고, 피부가 얇고 얼굴의 굴곡이 적고, 머리가 큰 성인 남자의 몸은 성숙한 침팬지 수컷보다 아기 침팬지와 훨씬 더 닮았음을 관찰한다. 






인간과 침팬지는 DNA를 95-99% 정도 공유한다. 즉 인간은 해부학적으로 볼 때 몸만 엄청나게 커진 아기 원숭이에 불과하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해부학적 특징이 유인원 태아에 더 가까운 것은 괴상한 사실이다. 클라이브 브름홀은 인간의 생물학적 특징이 어린애다움이라는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다고 결론 내린다. 그 연결고리는 우리가 모두(특히 남자들) 몸집만 커다란 아기에 불과하다는 사실과 밀접하다. 인간은 성숙한 후에도 어렸을 때의 특징들이 계속 유지되는 유형(幼形) 성숙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현재 인체의 성장은 먼 옛날 우리 조상들이 유아일 때에만 활동하던 유전자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지고, 따라서 오늘날 어른이 된 인간들의 모습은 먼 조상들의 아기를 크게 확대해 놓은 모습과 비슷하다. 저자는 인간이 성숙한 침팬지의 특징을 모두 나타내지 못하도록 발달과정이 중간에서 멈춰버렸다고 보면서, 인간은 유아화 된 동물이라고 결론 내린다. 


클라이브 브름홀은 인류에게 나타나는 거의 모든 유아적인 특징을 가장 극단적으로 갖고 있는 집단이 바로 몽골인종이라고 본다. 김원근의 작품 속 인물에서 전형적인 쫙 째진 눈, 즉 눈의 안쪽 가장자리에 몽고 주름이 있는 몽골인종 특유의 눈모양은 유아기의 특징이다. 인간의 유아적인 해부학적 특징들은 치열한 종(種) 간 전쟁 속에서 큰 이득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생물학적 가설은 유아화 된 인간의 퇴행적 특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면에서 취약한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원동력을 강조하는 것이다. 인간은 약함으로서 집단화, 사회화 되었고 협동을 통해 더 경쟁력 있는 생존기술을 획득했다. 그것이 인류의 독특한 문화를 이루었다는 역설이다. 개별적으로 나약한 인간을 탁월하게 한 것은 사회적 협동이었다. 김원근의 작품에서 강한듯하면서도 약한, 어른인 듯하면서도 아이인 독특한 상들은 가벼운 웃음을 자아내는 것을 넘어서, 인간의 전사(前史)에 대한 중요한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출전; 미술과 비평 여름호




출처: 김달진 미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