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귄터 그라스/ 하계훈

sosoart 2017. 1. 19. 22:42

하계훈 

 

귄터 그라스

하계훈

작년에 세상을 떠난 독일의 노벨상 수상작가 귄터 그라스(Gunter Grass, 1927-2015)는 좀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문학 작가이면서 조각을 전공한 예술가였고, 무용에도 조예가 깊었고 요리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안산시와 독일문화원이 공동주최하여 단원미술관에서 개최한 이번 전시는 안산시 승격 30주년을 계기로 안산시가  ‘시민이 주인으로 참여하는 공정도시’를 실현하고자 하는 시의 비전을 상징적으로 담아낸 행사로서 준비되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독일 작가들이 민족주의적 관심이 강하고 행동보다는 사유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여 온 데 반하여 귄터 그라스는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의 대중 속으로 뛰어들어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행동하는 지성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소설가이면서 동시에 조각가요, 화가이면서 음악가이고 요리사이기도 한 현실 참여의 활동가였다. 실제로 그는 소설 쓰는 일 이외에도 선거 때마다 자원봉사자들로 유권자연합을 결성한다든가 직접 선거운동에 뛰어들어 100회가 넘는 연설을 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행동하는 지성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우리에게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귄터 그라스는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한 예술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글을 쓰는 일만큼이나 조각 작업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으며 자신의 문학작품이 출간될 때 표지나 삽화 등을 직접 그려 넣었다고 한다. 실제로 귄터 그라스는 자신을 스스로 조각가라고 소개하고 부업으로 글쓰기를 한다는 식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표방하기도 하였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귄터 그라스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기 위한 기회로서 판화작품 80여점과 10여점의 조각작품 외에도 자필 시 원고와 <양철북> 포스터 등 작가의 문학과 미술 세계를 접목시킨 폭넓고 다양한 아카이브 자료가 전시된 보기 드문 기회였다. 이러한 활동의 다양성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문학 분야에서 귄터 그라스에게는 ‘독일문학의 이단아’라는 꼬리표가 붙기도 한다. 독일문학 특유의 세련미나 절제가 부족하고 내면의 심리분석과 정신세계의 탐구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의미에서 이러한 별명이 붙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에게 노벨문학상이라는 영광이 부여되기 전까지는 독일문학 사회에서 다소 불만스러울 수 있는 평가를 받아온 것도 사실인 것같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 그는 듣기 좋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현실의 문제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독일의 현실을 문학뿐만 아니라 음악과 미술, 그리고 춤과 요리 등 다중적인 감각을 동원하여 다양하게 파악하고 그 결과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문학 작품으로, 또 때로는 음악이나 무용 혹은 미술 작품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른 작가들이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다중감각이 압도하는 작가정신이자 감수성의 발현이었던 것이다. 단원미술관에서 열린 이번 전시는 어디까지나 미술관 전시로서의 관점을 중심으로 그의 작품들을 감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작가 스스로도 자신을 조각가로 부르며 스스로를 “조형예술가로서 나는 전문가지만 (문학) 작가로서는 아마추어 예술가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이번에 출품된 조각 작품들은 글쓰는 이의 여가활동의 산물로 보기에는 너무 수준이 높은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운송과 진행의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작가의 작품 전체를 보여줄 수 없었고 주로 소품 위주로 10점 정도가 소개되었지만,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손안의 넙치>와 같은 작품이 소품으로 소개되었고 작가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춤을 모티브로 하는 브론즈 인물상들이 여러 점 소개되었는데 재료의 특성과 인물의 동작에서 드러나는 곡선적인 율동감, 그리고 생략된 듯 묘사된 인체의 중요한 특징들이 빛과의 상호작용으로 볼륨감을 드러내는 형태를 통해서 작가의 내공을 은근하게 과시하고 있다. 


<손안의 넙치>와 같은 작품의 경우 그 자신이 각별한 애정을 가졌던 책 <넙치>를 연상시킨다고 해석되기도 하는데, 이 작품은 양철북 이후 작가의 최대 야심작으로서 종종 율리시스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 조각 작품은 귄터 그라스의 집 정원에 성인키 높이 정도의 크기로 동일한 작품이 설치되어 있어서 귄터 그라스의 대표작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이번 전시의 주종을 차지하였다고 할 수 있는 판화와 드로잉 작품들은 보다 흥미롭고, 그 표현에 있어서 폭넓은 다양성을 보여준다. 나무와 인물을 그린 드로잉에서는 작가가 목탄, 연필, 펜 등 도구에 상관없이 선을 자유롭게 구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에칭으로 표현한 자화상에서는 작가로서의 재현 능력과 묘사력을 증명해보이고 있다. 작가의 초상화에서도 작가가 관심을 가진 넙치나 깃털로 만든 펜 등이 등장함으로써 작가의 정체성을 더욱 분명하게 해준다. 특히 무당개구리와 그 앞에 놓인 작가의 만년필을 에칭으로 표현한 작품에서는 작가의 묘사 능력이 형태의 재현을 넘어 화면 속 모티브들의 속성까지 재현해 낼 수 있는 고도의 조형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깃털 펜을 굳게 쥔 작가의 손을 그린 작품인데 넙치를 쥔 손 못지않게 귄터 그라스의 문학 창작에 대한 배경과 의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전시에서 작품들과 함께 소개된 귄터 그라스의 자필 원고와 포스터 등의 아카이브 자료들은 작가의 삶을 보다 가까이에서 느껴 볼 수 있었던 소중한 자료들이었다. 단원미술관에서는 이러한 작품과 자료들을 소개하는 방법으로서 전시 이외에 매주 토요일 문학, 영화, 드라마 등의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귄터 그라스를 복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강연회를 열고, 주한 독일문화원과 협력하여 독일영화를 상영하였다. 이러한 시도들은 관람객들이 작가 귄터 그라스와 그의 고국인 독일을 좀 더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올해로 시승격 30주년을 맞는 안산시가 수도권의 지방자치단체로서는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전시회를 전격적으로 개최한 것에 대하여 단원미술관과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들은 신선한 경험과 감동으로 답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의 배경에는 전시기간 동안의 관람객의 숫자가 평소의 숫자를 크게 상회하였다는 것이 이를 간접적으로 증명하였다고 생각된다. 이번 전시가 미술관의 여러 전시 가운데 하나로 그치지 않고 안산시 단원미술관의 전시시업에 있어서 커다란 이정표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것을 기대하며 향후 이번 전시에 버금가는 더 좋은 전시가 종종 단원미술관의 전시장을 채우게 되기를 바란다. 


출처: 김달진 미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