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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아 - 행복한 나라의 볼트/ 이션영

sosoart 2017. 2. 23. 21:30

이상아 / 행복한 나라의 볼트

이선영

행복한 나라의 볼트

  

이선영(미술평론가)

  

예술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는 대안의 세계 역할을 해왔다. 신화, 종교, 마술과도 공유했던 그 역할을 지금은 대중문화--언제나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디즈니의 세계가 대표적이다—가 주로 맡게 되었지만, 예술에도 그 흔적은 남아있다. 대중문화와 견주면서 키치나 캠프의 미학을 표방하는 풍자적이고 냉소적 작품부터 자신의 행복에 대한 상을 그리는 소박하고 따스한 작품에 이르기까지. 이상아의 작품은 후자에 속한다. 사랑하는 개가 주인공인 그림을 그리고 있는 그녀에게 예술은 자기 맞춤형 유토피아를 창출하는 수단이다. 보통사람들은 단지 꿈을 꾸거나 이런저런 소비생활로나 메꿀 수 있는 것을 작가는 자신의 기술로 구체화할 수 있다. 반려동물이 나오는 작품은 공감의 폭이 매우 클 것이다. 극도로 개인주의적인 현대의 같은 동료 인간보다는 동물이나 사물과 더 잘 소통하는 부류들이 생겨날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작품 속 개는 집에 홀로 남아 심심해 죽을 지경일 때 조차도 안전한 장소에서 보호받으며 먹고 놀고 싼다.

 



나홀로집에 100x72.7 장지에채색_2015



누구의생일인가 90x72cm 장지에채색_2013



개는 창밖을 보며 반려인을 기다리거나 일상 체험에 바탕 한 꿈을 꾸느라 몸을 움찔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반려인의 예술을 온통 차지하고 있는 축복받은 개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불행하게도 현실에서는 버려지는 개, 잡혀 먹히는 개, 실험실의 개, 등의 소식도 종종 들려온다. 어떤 라디오 프로그램의 한 코너처럼 ‘행복이 묻어나는’ 이상아의 작품에는 어둡고 차가운 바깥에서 밝고 따스한 안쪽을 보는 듯한 느낌이 있다. 꿈과도 닮은 이상아의 작품은 고단한 하루를 끝내고 포근한 잠자리에 드는 누구라도 바라는 좋은 꿈에 속한다. 자신이 주도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현대사회에서 반려동물과의 삶은 사랑스런 대상에게 행복을 몰아줄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예 중의 하나다. 사실 반려동물을 제대로 관리하고 살려면 적지 않은 심신의 투자가 요구된다. 그러나 이러한 희생이 따라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을 만한 동기는 분명하다. 반려동물의 행복이 내 행복이고 그것들의 불행이 내 불행이기 때문이다. 이상아의 작품에는 이러한 동일시가 강하게 전달된다. 


흑/백 턱시도 의상을 갖춰 입은 듯한 큰 눈망울의 견종 보스턴테리어는 건강하고 강인하게 자라라는 의미에서 ‘볼트’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함께하는 개의 일거수일투족은 수많은 사진에 담겼을 것이다. 이상아의 작품에는 그러한 구체적인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심각한 표정으로 똥을 싸는 [부르르]부터 남부럽지 않은 생일상을 받은 [누구의 생일인가]까지, 실제 상황에 근거한 장면들이 그림에 반영된다. 대상에 대한 완전한 몰입은 다소간 행복한 동화 같은 작품에 독특함을 부여한다. 작품은 개와 단둘이 있는 체험이 가득하다. 이러한 작품의 바탕이 되었을 사진에서 개와 함께 있는 사진은 별로 없을 것이다. 작품에는 주로 개만 나온다. 개는 자신과 동일시 될 수 있기에, 굳이 자신을 덧붙이는 것은 동어반복이다. 개는 ‘개만 다닐 수 있는 횡단보도’를 비롯해서 자신만을 위해 세팅된 듯한 무대에서 활개치고 다닌다. 그곳에는 다른 동물이나 사람이 없다. 행복한 상상의 무대에는 친구도 없고, 심지어 반려인도 보이지 않는다. 세상 어디를 가나 개/작가는 혼자다. 




넘나 신나는 것!, 장지에혼합재료,  181x73.5cm, 2016



welcome to volt world, 장지에채색, 190.5x50cm, 2016



teleport, 장지에혼합재료, 110x80cm, 2016



별이 빛나는 밤에, 장지에혼합재료,  100x80.5cm, 2016



그 세계에서 자유의 조건은 아무도 없음이다. 행복은 매번 달라지며 어떠한 저항도 없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색다른 세계/무대들을 만나는 것에 있다. 이상아는 장지 위에 채색으로 이러한 이상적 세계/무대를 그리지만, 이미 다가온 가상현실은 좋은 꿈을 꾸는 방식을 상품화할 것이다. 작가는 젊은이답게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작품에는 실제의 그리고 상상 여행의 체험이 가득하다. 이상아가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 동안 개는 홀로 집을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개의 현실이었을 것이다. 인간 또한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이 드는 여행을 자주할 수는 없다. 작품 [나 홀로 집에]의 개는 자신과도 동일시될 수 있다. 매순간 다른 것들이 튀어나오는 색다른 경험의 무대에서의 자유로움과 행복함은 개에게는 거의 불가능하고 작가에게도 일상은 될 수 없다. 그래서 꿈을 현실화하는 작품에서 사랑하는 개는 여행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것은 자신의 여행 체험에 바탕 한 것이지만 더 환상적인 현실로 거듭난 것이다. 


작품에는 가보지 않은 곳도 가본 곳과 함께 짜깁기 되어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러 나라 풍경이 한데 섞인 장소나 국적 불명의 장소들은 어디에도 없는 유토피아, 또는 이질적인 헤테로피아의 풍경이다. 이전작품에서 작가는 직간접적인 방식으로 등장한다. 가령 작품 [우왕! 카레냄새 난다](2013)를 보면, 전시장 모서리를 가로지르는 넓은 화면으로 세계 여러 도시의 건물들이 짜깁기된 환상적인 무대를 개가 이리저리 활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개를 탈것에 태워주는 여행복 차림의 여자는 작가일 것이다. 뒷모습을 보이는 사람과 개의 시선이 마주치고, 무대 밖 관객은 누군가를 바라보는 개를 본다. 이 작품은 동양화에서 한 인물이 공간의 위치를 달리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듯이, 화면 속 여러 마리의 같은 모양의 개는 한 개의 움직임을 나타낸다. 이러한 방식은 무대 같은 건물들 사이에서 개가 차를 마시고 오줌을 싸는 등 여러 행위를 하는 작품 [넘나 신나는 것!]을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발견된다. 개의 여행은 작품 [teleport]처럼 순간이동의 방식을 따른다. 




우왕! 카레냄새난다! 682x182cm 장지에채색_2013



빼꼼이, 장지에혼합재료,  60.8x45.5cm, 2016



여행자의안식처 42x70cm 장지에채색_2013



한 화면에 유럽식, 일본식 가게와 동남아식 운송수단이 공존한다. 작품 속에서 개는 행동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자신을 바라본다. 여기에는 분열이나 분신의 테마가 있다. 작품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개는 두 이국적 건물 사이를 택시를 타고 순간 이동한다. 그 모습을 건너편에서 보는 또 다른 개 옆에는 파리, 베를린, 부다페스트 등 여러 도시의 이정표가 서있다. 여행에서 실제로 이동하는 시간은 피곤할 따름이다. 방황과 위험 없이 곧장 원하는 곳에 갈수 있다면 더욱 좋다. 더구나 모든 것이 인간중심주의적인 세계 속에서 타자인 개의 입장이라면. 작품 [비즈니스석은 편안해]에서 개는 비행기 밖을 여유롭게 쳐다보고 있지만, 낯선 장소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개는 다소간 긴장되어 있으며, 숙소에서 피곤에 쓰러진 개는 이동의 힘듦을 알려준다. 작품 [빼꼼이]와 [여행자의 안식처](2013)에서 이국적 가게 안쪽이나 바깥에 보이는 개는 여행이 아니라, 마치 그 장소에 원래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행하다 발견한 좋은 곳에 머물러 사는 것은 행복 이야기의 결말로 적절하다.

 

출전; 울산 북구 예술창작소


출처: 김달진 미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