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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장, 존재를 증명하는 새김

sosoart 2018. 9. 6.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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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장, 존재를 증명하는 새김

요즘 수제도장이 유행이다. 전통과 문화의 거리 인사동에 간판을 내건 수제도장집이 여럿 생겼고, 인터넷 사이트를 활용한 업체들이 서로 경쟁하듯 성업하고 있다. 재료나 기법 면에서 새로운 상품을 출시해 다양한 양상으로 확대하고 있으며, 내용 면에서도 아기도장, 띠도장, 커플도장, 신앙도장 등 고객의 구매력을 자극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그간 인장업계가 주도해온 딱딱한 기계식 인장에서 탈피하여 손으로 직접 자신의 이름을 새겨준다는 매력적인 마케팅으로 보인다. 자신을 나타내는 상징어인 ‘이름’과 새김을 통해 그 존재를 증명하는 ‘인장’을 갖고 싶은 욕망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01. 1798년 정조가 좌상에게 보낸 편지의 봉함인(封緘印)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 정조는 자신이 직접 지은 아호를 새겨 봉함인으로 사용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02. 인장은 개인과 집단의 표식으로 삼기 위해 단단한 물체에 문자를 새겨 증명하는 도구이다. ⓒe뮤지엄

이름에 담긴 가치

고서나 족보를 보다 보면 이름 위에 비단 천 조각이 붙어있는 경우를 가끔 볼 수 있다. 이는 조상의 이름을 보기조차 황송하여 가린 조처였으니, 그 이름을 입에 올리는 일은 더욱 삼갈 일이었을 터이다. 또한 고서점에서는 장서인(藏書印) 부분이 검게 칠해져 있거나 아예 도려내진 옛 책을 간혹 발견하는데, 후손들이 집안 어른의 이름이 남에게 함부로 읽히거나 불림을 꺼려한 조처였음을 감지할 수 있다.

이름은 개인을 나타내는 상징어이자 언어부호이다. 여기에는 직·간접적으로 개인이 속한 집단을 비롯한 민족의 가치관과 세계관 등이 녹아 있다. 예컨대 가족, 종족, 종교, 국가 등 다양한 문화가치를 담고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수명천고(垂名千古)’, ‘만고유명(萬古留名)’등의 어구를 만들어 이름에 의미를 부여해 왔다. 즉 이름이 한 사람이 살아가는 시대뿐 아니라 그 이름 속에 담긴 공과(功過)가 오랜 시간 역사로 남는다는 교훈이라 하겠다. 이와 반대로 ‘취명소저(臭名昭著)’, ‘신패명렬(身敗名裂)’과 같은 부정적 의미의 성어도 있는데, 자신의 이름에 오점을 남기지 말자는 훈계가 담겨있다. 또한 전근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중요한 가치로 여겼던 ‘입신양명 이현부모(立身揚名 以顯父母)’는 자신의 이름을 드날려 부모나 가문을 드러내는 일을 효의 궁극적 가치로 보는 인식을 잘 보여준다. 살아 있는 동안의 영예도 중요하지만, 빛나는 이름이 길이 후세에 전해지기를 더욱 바랐다. 훌륭한 이름을 후세에 전하는 일을 개인사 최고의 이상이자 효도의 최고 순위로 여겼던 인식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생애 최초의 이름을 특별한 이상이 없는 한 사망 때까지 사용한다. 그러나 전근대의 이름은 생애의 여러 주기마다 바꾸어 나가는 방식이 관례였다. 태어나면서 아명(兒名)을 지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관명(冠名)이 주어졌다. 이름을 존중한 동양문화의 관념으로 자(字)를 두어 이름을 대신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여러 별칭을 써서 사람의 인격을 대신했는데, 아호(雅號)·당호(堂號)·별호(別號)·택호(宅號) 등이 그 예이다. 또한 사후에는 시호(諡號)를 두어 죽은 이에게 인격과 공과의 의미를 부여했다.

03. 조선왕조 마지막 공주인 덕온공주(德溫公主, 1822~1844)의 인장은 역사적 중요성과 함께 예술성과 희소성을 함께 지니고 있다. ⓒ문화재청 04. 대한제국 황제의 인장. 고종은 1897년 10월 국호를 대한제국이라 선포한 이후 의식 및 예절을 바꾸는 조치를 취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국새를 황제국가의 품격에 맞게 다시 만드는 것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 05. 인장의 기원은 기원전 약 5,000년 전 메소포타미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둥근 인장의 몸통에 무늬를 새기고, 이를 진흙에 굴려 요철을 만든 방식이 시초이다. ⓒ문화재청
인장 印章 금, 은, 옥, 수정 및 돌, 나무, 뿔(角), 뼈(骨) 등의 인재(印材)에 글씨, 그림, 문양 등을 조각하여 인주, 잉크 등을 발라찍음으로써 개인, 단체를 증명할 수 있는 신물

인장, 존재를 증명하는 도구

인장(印章)은 ‘개인과 집단의 표식으로 삼기 위해 단단한 물체에 문자를 새겨 증명하는 도구’ 정도로 정의할 수 있다. 인장은 같은 의미를 갖는 ‘인(印)’과 ‘장(章)’이 결합된 합성어로 언제부터 사용하였는지 자세하지 않다. 그러나 두 글자 모두 오랜 시간을 통해 관인(官印)과 사인(私印)을 포괄하는 용어로 정착했다. 문자가 생겨난 이래 여러 기록 매체들이 등장하고 사라졌지만 인장의 가치와 의미는 현재까지 유효하다. 또한 서명(署名)과 함께 믿음을 증명하는 도구로서 법적인 효력을 가진다.

인장은 문자를 역상(逆像)으로 제작하여 찍어낸다는 측면에서 활자와 유사하지만 기원은 활자보다 앞선다. 인쇄술이 탁본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지만 표면에 안료를 바르고 압력을 이용해 찍어내는 방식이나, 문자를 거꾸로 제작한다는 점에서 인장이 좀 더 유력한 모태로 여겨진다. 따라서 인장의 제작과 사용은 인쇄술의 기원보다 앞선다 하겠다.

인장의 기원은 기원전 약 5,000년 전 메소포타미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둥근 인장의 몸통에 무늬를 새기고, 이를 진흙에 굴려 요철을 만든 방식이 시초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원통형 인장 이후로도 인장문화는 전 세계적으로 나타난다. 고대 이집트의 풍뎅이 모양 인장, 고대 인도의 모헨조다로에서 출토된 인장, 그리스·로마에 이은 유럽의 반지형 인장, 태국의 상아로 만든 불탑 인장, 이란에서 발견한 페르시아 제국의 원통형 인장 등 전 세계적으로 각양각색의 인장문화가 있어왔다.

다양한 세계의 인장들이 어떤 경로를 따라 전파되었는지는 규명하기 어렵지만 몇 가지 공통점이 존재한다. 첫째, 견고한 물질에 문양이나 글자를 새겨 요철을 만든다는 점, 둘째, 인장을 찍을 때 진흙을 사용하였다는 점, 셋째, 개인이나 집단을 증명하는 도구로 사용한 점, 넷째, 물건이나 문서의 봉인을 목적으로 하였다는 점 등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초기 인장의 모습은 대부분 원통형으로 진흙에 굴려 요철을 만드는 방식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동아시아 인장사의 출발점에 있는 중국의 경우 이러한 사례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인장의 밑면에 새겨 찍는 방식만이 나타난다. 또한 현재까지 인장을 사용하고 있는 나라는 동아시아 3국을 비롯하여 베트남·인도네시아·라오스·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 남아시아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중에서도 인장이 문서나 서화의 일부분이 아니라 전각(篆刻)이라는 독립적 예술 및 학문 분야로 이어지고 있는 나라는 한국·중국·일본 등에 불과하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한편 우리 시대와 직·간접적 영향이 큰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자신의 이름 외에도 여러 용도의 인장을 제작하여 사용했다. 성명은 물론 자(字), 호(號), 관향(貫鄕) 등을 새겼고, 자신이 좋아하는 경전구절이나 시구를 새겨 인장으로 쓰기도 했다. 또한 서책이나 서화에 자신의 소유임을 밝히기 위한 수장인(收藏印)이 있고, 편지봉투에 봉함의 목적으로 쓴 봉함인(封緘印)도 모두 우리 선조들이 곁에 두고 애용했던 인장들이다.

06. ‘선수도제공지인’이 새겨진 관용 도장. 예부(禮部)에서 만든 관부용 도장으로, 도장면에는 ‘선수도제공지인(宣壽都提控之印)’이라고 세로로 두 줄로 도드라지게 만들어졌다. ⓒ국립중앙박물관 07. 등록문화재 제440-3호 백범 김구 인장. 김구 선생이 주로 글씨를 쓸 때 사용했던 것으로 1945년 11월 중국에서 귀국한 이후에 쓴 유묵(遺墨)의 대부분에 이 인장이 찍혀 있다. ⓒ문화재청 08. 목제엽형인장. 인면(印面)은 문양 부분이 양각(陽刻)되어 붉게 찍히는 주문(朱文)이다. ⓒ서울역사박물관 09. 목제양면인장. 이 인장은 높이가 낮고 넓적한 원통형으로, 윗면과 아랫면이 모두 인면이다. ⓒ서울역사박물관 10. 석제방형인장. 정사각형의 인면에 총 아홉 자가 새겨져 있는데, 글자가 희게 찍히는 음각(陰刻)과, 붉게 찍히는 양각(陽刻)을 하나의 인장으로 제작했다. ⓒ서울역사박물관 11. 기원전 1,500년 경, 고대 이집트의 반지형 인장(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 ⓒ성인근


글. 성인근(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