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군과 밀양시 사이를 흘러 밀양 평야를 이루는 밀양강
밀양강은 경주시 산내면 계곡에서 발원하여 청도군과 밀양시를 지나 낙동강에 흘러드는 99km의 강이다. 유로에 비해 유역면적이 넓어 하류에는 넓은 충적평야가 발달했다. 덕분에 쌀 생산량이 많고 사과, 배 등 과수재배도 잘 된다. 경치도 좋고 살기도 좋은 이런 자연환경은 주변에 사람들을 몰리게 했고 예로부터 다양한 문화예술을 꽃피우게 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와 밀양아리랑 등의 문화예술과 더불어 밀양강 주변에 위치한 밀양 표충사, 사명대사 유적 등을 둘러보기로 했다.
자연의 신비, 밀양 남명리 얼음골부터 들러
얼음골은 지금이 아니라 한여름에나 왔어야 되는 거 아닌가? 재약산 북쪽 중턱을 오르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는 뭘 좀 모르는 사람의 생각이다. 얼음골에 얼음이 어는 시기는 봄부터 여름, 가을부터 겨울은 오히려 계곡물이 얼지 않고 더운 김이 오른다고 한다. 그야말로 자연의 신비 아닌가? 이러한 기상, 지질 등 학술적 연구가치가 인정되어 밀양 남명리 얼음골은 천연기념물 제224호로 지정되었다. 주차장에서 천황사를 지나 20여 분 올라갔을까? 돌들로 가득한 너덜지대가 보인다. 옆으로 간단한 설명이 보여 읽어본다.
수천만 년 전 화산재가 터져 나오는 지역이었다는 얼음골. 그때 만들어진 화산암과 응회암이 빙하기를 거치면서 무너져 내려 지금의 너덜지대를 만들어냈단다. 지질학상 이런 지형은 애추라고 불리는데 공기가 돌 틈으로 들어가면서 냉혈과 온혈이 만들어지고 계절을 거꾸로 사는 이런 독특한 기온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한여름이나 한겨울에 왔으면 얼음골의 신비를 제대로 느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든다.
유교와 불교가 만난 공간, 밀양 표충사
산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 원효대사가 창건한 밀양 표충사에 들렀다. 본래 이 사찰의 이름은 죽림사였다고 한다. 그 후 신라 흥덕왕 때 영정사로 이름을 바꾸고 조선 후기 사명대사를 추모하는 사당이 들어서면서 이름을 표충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밀양 표충사 들어가는 길은 완만한 솔숲이다. 청량한 느낌이 든다. 한참 걷다보니 2층 누각이 나선다. 밀양 표충사라는 현판이 붙어있고 작은 글씨로 ‘수충루’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이곳은 유교와 불교의 공간이 함께 있는 다소 특이한 공간이다. 수충루에 들어서면 왼쪽에 사당이 먼저 나온다. 여기가 유교의 공간이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국란 극복에 앞장선 사명대사를 비롯해 서산대사, 기허대사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는 사당이다. 매년 음력 3월과 9월에는 유교식 제향을 올린다. 옆의 유물관에서는 사명대사의 금란가사와 장삼, 양국대장의 사령깃발, 사명대사 일본 상륙 행렬도 팔곡병 등을 볼 수 있다.
사천왕문으로 들어서면 가지산을 배경으로 한 사찰들이 나온다. 동서로 기다랗게 펼쳐진 가람, 그 가운데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이 있다.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은 통일시대의 석탑으로 보물 제467호다. 1995년 석탑의 해체 보수 공사 중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는 20구의 금동불상과 석탑의 보수를 알려주는 조선 초기의 개수탑기비(1491년) 등이 발견되었는데, 출토 유물들은 일괄해서 보물 제1944호로 지정되었다. 밀양 표충사는 영정약수로도 유명한데 신라 흥덕왕 때 셋째 왕자가 풍으로 고생하다가 이 우물물을 마시고 병이 나았다고 한다. 우화루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한다. 전국 사찰에 봉안되어 있는 사명대사의 영정을 복사해 걸어두었다는 우화루. 대사의 영정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든든해진다.
허씨고가에서 아름다운 정원 월연대까지
산길을 헤매었으니 이젠 물길로 나서보려 한다. 사진으로 먼저 본 월연대와 영남루를 보러 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뛴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가는 길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10호 밀양단장면허씨고가부터 들러야겠다. 밀양에는 예로부터 사림유학자, 낙향고관대작들이 많아 고택들이 많다. 그러나 밀양단장면허씨고가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고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고가는 허채(許埰, 1859∼1935)가 1890년 건립한 목조 기와집이다. 마당의 규모나 대문채, 행랑채, 사랑채만 봐도 당시 집주인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지금 남아있는 것 외에도 정침, 별당, 내고, 별당, 큰사랑채 등이 있었다고 하니 본래의 건물은 얼마나 컸을지 상상이 된다. 이 집에서 대대로 근대 유학자들을 배출했다고 하니 왠지 그들의 글 읽는 소리가 문밖까지 들리는 듯하다. 빡빡한 일정으로 밀양천을 따라 솔밭이 펼쳐진다는 기회송림은 다음 기회에 가기로 하고, 명승 제40호 담양소쇄원과 함께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손꼽히는 명승 제87호 밀양 월연대로 길을 잡는다. 월연대는 조선 중종 15년 문신이었던 이태가 기묘사화를 예견하고 낙향하여 지은 별서 건물이다, 낙향한 그는 쌍경당과 월연대 등의 건물을 세우고 주변 풍경을 아름답게 조경하였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눈앞에서 본 밀양 월연대는 기대 이상이다. 명승 제87호인 밀양 월연대는 밀양 8경 중 하나다. 우리나라의 조경문화답게 자연환경을 최대한 살려 지은 것이 그대로 눈에 보인다. 작은 돌들을 모아 가지런하게 쌓은 석축과 토담, 그 위에 자연스럽게 놓인 건물들이 무질서한 듯 멋스럽다. 또한 밀양 월연대 일원에서 보이는 강변 풍경은 저절로 감탄사가 나오게 한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보름달이 뜨면 더욱 아름답다고 하는데 볼 길이 없어 아쉬웠다. 강이 보이는 곳에서 최대한 많은 풍경을 카메라에 넣을 수 있도록 사진을 찍어본다.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하나인 영남루
내친김에 밀양강을 따라 올라가 본다. 이제 강은 더욱 넓어지고 반듯해진다. 밀양 아동산에 위치한 밀양 영남루는 보물 제147호로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하나다. 진주의 촉석루와 평양의 부벽루, 밀양의 영남루. 누각에 올라 바라보는 풍경은 조선의 16경 중 하나로도 손꼽혔다고 한다. 밀양 영남루로 오르는 길은 계단부터 특이하다. 지그재그 방식이라 장애인들도 오를 수 있도록 한 배려가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꽤 높은 계단을 오르고 나니 너른 터에 커다란 밀양 영남루의 전경이 드러난다. 밀양 영남루는 신라 경덕왕 때 사찰, 영남사가 폐사된 후 고려 공민왕 때 당시 군수였던 김주가 신축한 것이다. 1844년 이인재 부사가 중건한 후 오늘에 이르러 조선시대 후기 대표적 목조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누각 위로 올라가니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온다. 천장에는 많은 현판들이 걸려있다. 이 중에는 퇴계 이황 선생의 작품과 함께 이인재 부사의 첫째 아들 이중석이 썼다는 영남제일루라는 글씨도 있다. 11살에 썼다는데도 글씨의 기백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다. 누각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너른 밀양강과 푸른 녹지. 거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 가을이 왔으니 얼마나 좋은가? 운치를 즐기면서 긴 호흡을 해본다.
밀양을 대표하는 인물, 사명대사 유적지
사명대사 유적지를 찾아가는 길은 왠지 현충원에 가는 길과 닮았다. 너른 충의문과 참배로, 그리고 그보다 더 넓은 상징광장. 이곳에는 사명대사의 일화를 담은 타일벽화들이 붙어있다. 왜적을 무찌르는 사명대사, 포로를 구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는 사명대사. 광장을 지나자 사명대사 기념관이 나온다. 사명대사의 일대기를 볼 수 있다. 기념관을 보고 나와 건너편 경상남도 기념물 제116호 사명대사생가지로 간다. 대사를 닮은 듯 단정한 가옥이 두어 채 서있다. 예전 물품도 그대로 두어 대사의 검소하고 단정한 삶의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문득 나라에 큰 일이 있으면 땀을 흘린다는 표충비가 떠올랐다. 대사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오죽이나 컸으면 지금까지 그런 이야기까지 전해져 올까 생각하니 가슴이 뜨거워진다. 오늘 여기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 다 선조들 덕택인 것만 같다.
돌아오는 길, 수변광장에 들러 산책을 한다. 유적지임에도 불구하고 잘 조성된 공원이 저절로 발길을 붙들어 맨다. 그러고 보니 밀양은 가는 곳마다 기대 이상의 경치를 보여 주었다. 어디선가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로 시작하는 밀양 아리랑의 곡조가 들리는 것 같다. 경쾌하며 귓가에 따라 붙는 곡조. 마치 밀양이 나에게 무슨 말인가를 전하는 것만 같다. 이렇게 아름다운 밀양을 좀 봐달라고, 이렇게 볼 것 많은 밀양에 자주 좀 와달라고.
글. 신지선 사진. 이용국
'미술·공예 LIBRARY > 미술·디자인·공예 자료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사랑한 미술관: 근대의 걸작전 (0) | 2018.10.11 |
---|---|
전시-집착: 클림트, 쉴레 그리고 피카소의 누드 (0) | 2018.10.10 |
전시: 초월시공전 (0) | 2018.10.04 |
전시- 변시지의 작가노트 (0) | 2018.09.30 |
신 금상산도전 (0) | 2018.09.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