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공예 LIBRARY/미술·디자인·공예 자료집

MMCA PICK한국 판화의 개척자, 정규의 <노란새>/ 김예진

sosoart 2019. 9. 15. 13:02


http://www.mmca.go.kr/pr/blogDetail.do?bId=201909110000273

MMCA PICK한국 판화의 개척자, 정규의 <노란새>



정규, <노란새>(1963)(일부)

정규, <노란새>(1963)(일부)

김예진 학예연구사의 명화 이야기
한국 판화의 개척자, 정규의 <노란새>

정규, <노란새>(1963)씨
정규, <노란새>(1963)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은 ‘근대미술가의 재발견’ 시리즈의 첫 번째 전시로 《절필시대: 정찬영, 백윤문, 정종여, 임군홍, 이규상, 정규》를 개최하고 있다. 오는 9월 15일로 전시는 종료되지만 작가들에 대한 연구는 전시장 밖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 여섯 작가 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많은 숙제를 안겨준 작가는 정규가 아닐까 싶다. 화가, 판화가, 도예가, 장정가, 비평가로 미술계를 종횡무진으로 누볐던 정규의 행적을 좇으며 정리해야 할 것이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소개할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노란새>는 ‘판화가 정규’의 대표작으로 꼽을 만한 작품이다. 미술평론가 고(故) 이경성이 한국현대판화의 선구자 가운데 한 명으로 정규를 언급했던 사실을 고려하며 이 작품을 살펴보려 한다.

먼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미술 시간을 잠시 떠올려 보자. 미술 시간,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는 것 다음으로 많이 한 활동은 판화일 것이다. 보통 마분지를 오려서 그림을 만든 뒤 물감을 발라 얇은 종이에 찍어내는 종이 판화에서 시작하여, 조각칼로 고무판에 그림을 새긴 뒤 찍어내는 고무 판화를 거쳐 목판화를 배웠고, 스텐실과 드라이포인트라는 것도 해보았을 것이다. 이렇듯 판화는 우리 모두에게 익숙하지만, 이 판화가 작가들의 순수한 창작 영역으로서 현대미술의 한 부분을 차지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물로 전하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 無垢淨光大陀羅尼經)』의 예에서 확인할 수 있듯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우수한 목판 인쇄술을 보유한 나라이다. 목판인쇄술의 발전과 함께 판화도 활발히 제작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대규모로 불교 경전이 간행되면서 경전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판화가 제작되었고, 조선 시대에는 백성들의 교화를 위해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와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 같은 이야기책들이 간행되면서 판화도 함께 발전하였다. 특히 정조 때 간행된 『오륜행실도』의 그림을 조선 시대 최고의 화가인 도화서 화원들이 담당하면서 판화의 수준은 더욱 높아졌다.

김홍도를 비롯한 도화서 화원들이 판화를 담당했다고 하니, 그만큼 조선시대에는 판화가 미술 분야에서 당당한 위상을 차지하였던 것일까? 조선시대 판화는 밑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그림을 목판에 새기는 ‘각수(刻手)’가 제작을 분담하였다. 이 같은 분업을 통해 판화의 수준이 크게 발달할 수는 있었지만, 판화가 화가의 순수한 창작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게다가 식민 지배와 해방 후의 서구문화 물결에 밀려 우수한 판화전통마저 잊혀 버렸다. 이러한 한국화단에서 현대판화의 가능성을 개척한 이가 바로 정규이다.

정규가 판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국립박물관을 통해서였다. 1954년 국립박물관이 서울로 환도한 뒤 미국 록펠러재단의 원조를 받아 한국조형문화연구소가 설립되자 정규는 여기서 연구원으로 근무하였다. 정규는 유강렬(1920~1976)과 함께 기예부 연구원에 속해 있으면서, 학예부 연구원이던 이경성(1919~2009)과 당시 박물관 미술과장이던 최순우(1916~1984)와 깊은 교분은 맺었다. 정규는 ‘천진무구하고 소탈한 성품’과 예술가 특유의 ‘낭만적인 기질’을 지니고 있어서 많은 문예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웠다. 정규는 그중에서도 최순우와의 만남을 통해 전통적인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되었던 것 같다.

1959년 당시 국립박물관이 있던 덕수궁에서 기념사진을 남긴 이경성, 장욱진, 정규, 최순우(왼쪽부터)1959년 당시 국립박물관이 있던 덕수궁에서 기념사진을 남긴 이경성, 장욱진, 정규, 최순우(왼쪽부터)

한국 공예의 중흥과 판화 미술의 발전을 목표로 설립된 한국조형문화연구소는 1957년에 《국제판화전》을 개최하였다. 정규는 “신선한 생기 국제판화전”이라는 칼럼을 기고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열린 판화 전시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판화는 결코 새로운 미술 분야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미국인에게는 새로운 미술의 표현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와 같이 판화를 등한시하는 지역의 미술인들에게는
또 하나의 관심사가 되어도 무방할 것이다”
(정규, 「신선한 생기 국제판화전」, 『동아일보』 1957년 3월 6일)

정규의 관심은 이듬해의 목판화 개인전으로 이어졌다. 첫 목판화 전시에 출품된 작품은 작은 소품 위주로 전통적인 소재를 간략하게 표현한 단색판화가 중심이었던 듯하다. 그러나 점차 다색판화 기법을 연마하고, 화선지와 먹 등의 전통 재료, 탁본과 같은 전통 기법을 판화에 응용하면서 다양한 기법을 실험하기도 했다. 그리고 5년 뒤인 1963년에 발표한 작품이 <노란새>이다.

< 노란새>가 판화가 정규의 대표 작품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이유는, 화가로서, 도예가로서, 비평가로서 정규가 가진 생각과 정규가 보여준 실천들이 종합적으로 잘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노란색과 검정색의 두 가지 색을 이용한 다색판화이지만 이미지가 간명하고 단순하다. 서양화에서 체득한 간결한 조형미, 명쾌한 색채들의 강렬한 대비, 목판의 칼자국이 만들어내는 회화적 질감, 익숙하고 친근한 소재에서 오는 해학성 등이 이 작품을 채우고 있다. 익숙하고 쉬운 소재, 단순한 조형성, 명랑한 해학성, 이러한 것들이 빚어내는 편안함은 정규의 작업을 관통하는 특징이다.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정도로 매사에 의욕이 넘치는 예술가였지만, 회화, 판화, 도자기 모든 분야에서 군더더기 없이 절제 있는 예술을 선보였다. 완벽을 기하지 않고 이것과 저것을 가르지 않는 여유롭고 융통성 있는 태도는 한국의 전통적인 미의식과 맞닿아 있다. <노란새>는 이러한 정규의 기질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1953년 첫 서양화 개인전으로 데뷔하여 1971년 갑자기 타계하기까지, 회화, 판화, 도예, 장정, 세라믹 벽화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면서도 가장 오랜 기간 정규가 관심을 기울인 것은 판화였다. 정규의 판화에는 회하에서 이룬 간결하고 현대적인 조형미, 전통 도자기를 제작하면서 발견한 구수한 질감, 문학적 소양에서 유래한 설화적인 내용 등 다양한 매체 경험에서 스민 정규 특유의 예술세계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6, 7년 이래 사실상 풍경을 그려보지 못했다.
더구나 근래의 3년간은 판화 이외의 일로 화필을 들어본 일이 없다.
때문에 그리고 싶은 풍경이라는 질문에 솔직한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이번 기회를 통하여 풍경을 그리는 생활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금년 여름에는 별로 풍경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정규, 「여름에 그리고 싶은 풍경」, 『동아일보』 1962년 7월 4일)

판화를 제작하느라 그림을 그릴 여가가 없었던 정규였다. 그러했거늘, 우리가 판화가 정규를 몰라주는 건 너무 야박한 일이다. 앞으로 정규를 비롯한 한국 판화의 개척자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를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국립현대미술관 김예진 학예연구사

김예진 학예연구사
미술사학 박사, <근대 서화의 요람, 경묵당>(2009, 고려대),
<거장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2015),
<근대미술가의 재발견1: 절필시대>(2019) 등 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