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막(酒幕)에서 / 김용호
어디든 멀찌감치 통한다는
길 옆
주막
그
수없이 입술이 닿은
이 빠진 낡은 사발에
나도 입술을 댄다.
흡사
정처럼 옮아 오는
막걸리 맛
여기
대대로 슬픈 노정(路程)이 집산(集散)하고
알맞은 자리, 저만치
위엄 있는 송덕비(頌德碑) 위로
맵고도 쓴 시간이 흘러가고…….
세월이여!
소금보다 짜다는
인생을 안주하여
주막을 나서면,
노을 비낀 길은
가없이 길고 가늘더라만,
내 입술이 닿은 그런 사발에
누가 또한 닿으랴
이런 무렵에.
* * * * *
[작가소개]
김용호(金容浩, 1912~1973).경남 마산 출생. 호는 학산(鶴山)
또는 야돈(野豚). 마산상고를 졸업했으며 일본 메이지대학 전문부
법과 졸업. 1936년경부터 창작 활동을 시작하여 노자영이 주재한
<신인문학>에 시<첫여름 밤 귀를 기울이다>를 발표한데 이어,
<쓸쓸하던 그날>,민족의 비분을 읊은 장시 <낙동강>,단시<하루>등을
발표했고, 김대봉과 알게 되어 <맥>동인이 됨.
이때부터 적극적인 문학 활동을 하게 되었고, 박노춘의 소개로 첫시집
<향연>을 동경에서 발행. 광복 후에 발표한 제2시집<해마다 피는 꽃>에는
유학 시절의 민족의식을 느끼게 하는 시 <간다 거리에서>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어 <시문학 입문>, 서사시 <남해찬가>,<한국 애정명시선>을
간행했고, 1952년에는 시 <또 한 송이 모란> 등 50편을 수록한 제3시집
<푸른별>을 상재한 바 있음.
그는 시를 재치로 쓸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써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현실 인식이 남달리 강해 제 2시집에서 민족의 암담한 시절의 비분을
노래했는데 이 경향은 특히 장시<낙동강>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시집에 <향연>, <낙동강>(1943),<부동항>(1943),<해마다 피는 꽃>(1948),
<푸른별>(1952), 서사시집<남해찬가>,<날개>(1956)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