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 국/김용택
산마다 단풍만 저리 고우면 뭐헌다요
뭐헌다요 산 아래
물빛만 저리 고우면 뭐헌다요
산 너머, 저 산 너머로
산그늘도 다 도망가불고
산 아래 집 뒤안
하얀 억새꽃 하얀 손짓도
당신 안 오는데 무슨 헛짓이다요
저런 것들이 다 뭔 소용이다요
뭔 소용이다요, 어둔 산머리
초생달만 그대 얼굴같이 걸리면 뭐헌다요
마른 지푸라기 같은 내 마음에
허연 서리만 끼어 가고
저 달 금방 져불면
세상 길 다 막혀 막막한 어둠 천지일 턴디
병신같이, 바보 천치같이
이 가을 다 가도록
서리밭에 하얀 들국으로 피어 있으면
뭐헌다요, 뭔 소용이다요.
누이야 날이 저문다 / 김용택
누이야 날이 저문다
저뭄을 따라가며
소리없이 저물어 가는 강물을 바라보아라
풀꽃 한 송이가 쓸쓸히 웃으며
배고픈 마음을 기대오리라
그러면 다정히 내려다보며, 오 너는 눈이 젖어 있구나
--배가 고파
--바람 때문이야
--바람이 없는데?
--아냐, 우린 바람을 생각했어
해는 지는데 건너지 못할 강물은 넓어져
오빠는 또 거기서 머리 흔들며 잦아지는구나
아마 선명한 무명꽃으로
피를 토하며, 토한 피 물에 어린다
누이야 저뭄의 끝은 언제나 물가였다
배고픈 허기로 저문 물을 바라보면 안다
밥으로 배 채워지지 않은 우리들의 멀고 먼 허기를
누이야
가문 가슴 같은 강물에 풀꽃 몇 송이를 띄우고
나는 어둑어둑 돌아간다
밤이 저렇게 넉넉하게 오는데
부릴 수 없는 잠을 지고
누이야, 잠 없는 밤이 그렇게 날마다 왔다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유당(幽堂)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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