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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있는 그림(112)근대판화의 멋/홍선용

sosoart 2013. 2. 1. 21:14

글이 있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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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근대판화의 멋

홍선웅

글이 있는 그림(112)

한 시대에 민족 고유의 특징이 있는 문화를 창조한다는 것은 위대한 것이다. 조선시대가 바로 그러한데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분청자와 백자이다. 서민들의 사랑을 받은 분청자에는 따뜻하고 꾸밈이 없는 평범한 아름다움이 배여 있고, 검박하고 청렴한 성리학적 토대 속에서 꽃피어난 조선백자는 깨끗함, 맑음이라는 조선 정신의 지향점이 자리 잡고 있다. 거친 듯 꾸밈이 없고 검소하며 질박한 멋, 이것은 분명 조선 고유의 특징이며 한국적 예술정신이기도 하다.




이러한 특징은 근대판화에서도 발견된다. 개화기 기독교 한글소설인 『샛별전』(1905)의 목판삽화와 당시의 교과서인 『유년필독(幼年必讀)』(1907), 『최신초등소학』(1908), 『최신초등대한지지』(1909)에 있는 많은 목판삽화가 그러하다. 또한 일제강점기 때 이도영의 『증상연예옥중가인』(1926) 목판삽화나 1930년대 이병규의 『양정』 교지 표지판화들, 그리고 김규택의 판화가 실린 이기영의 소설 『광산촌』(1944)의 표지에서도 거칠며 꾸밈이 없는 각법(刻法)을 발견할 수가 있다. 해방공간에서 제작된 잡지나 문학지 여러 곳의 표지판화에서도 이러한 판각기법의 실례를 찾을 수가 있다. 『신문학』 제1권 표지에 실린 오지호의 판화 <공장지대>(1946), 정현웅이 표지판화를 한 안회남의 소설 『불』(1947)과 정현웅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신천지』 3, 4, 5월호(1946)의 표지판화, 최은석이 표지판화를 한 최석두의 『새벽길』(1948), 김흥수가 다색목판으로 제작한 『백민』(1948)의 표지 등 그 실례를 여러 곳에서 찾을 수가 있다.

한국판화사에서 근대는 암흑기가 아니라 귀얄무늬나 덤벙 분청자처럼 수수하고 단백하며 꾸밈이 없는 멋과 기질을 판화에 담고 있었던 시기이다. 일제의 탄압과 고난한 삶 속에서도 털털한 멋과 여유, 그리고 꾸밈이 없는 손맛을 판각정신의 기조로 승화시켜나갔으니 가장 힘든 시절에 가장 빛나는 작품들이 탄생한 시기였음이 분명하리라.
- 홍선웅(1952- ), 중앙대 예술대 회화학과 졸업, 문수산판화공방(작업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인천문화재단, 베를린 자유대, 퀼른 안파리나화랑 등에 작품소장.

 

출처: 김달진 미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