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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와 예술-이선영

sosoart 2013. 7. 1. 22:56

현대와 예술

이선영

현대와 예술


1. 모더니티


모더니티는 정치경제학적인 의미의 현대를 특징지으며, 문화예술적인 의미의 모더니즘과는 구별된다. 도식적으로 말하면, 모더니즘은 모더니티의 상부구조이다. 진보와 새로움은 양자에서 꼭 같은 것을 의미 한 것은 아니었다. 모더니티와의 관계 속에 모더니즘을 배치할 때 모더니즘의 현실과 이상이 확실해 질 수 있으며, 우리 사회 역시 자본주의의 과정을 거치고 있으니만큼, 모더니티와 모더니즘의 문제가 외재적일 수는 없다. 가령 1980년대에 모더니즘과 각을 세웠던 민중미술은 질곡에 가득 찬 한국의 모더니티와 깊이 연관된 문화예술 사조였다. 그래서 민중미술은 모더니티가 구가했던 진보의 의미와 한계를 공유한다. 모더니티에서의 진보나 새로움, 그리고 그것의 정점인 혁명과 달리, 모더니즘에서의 그것들은 예술의 내적 언어의 문제에 집중된다. 그리고 모더니티와 모더니즘 양자와 관계를 맺은 근대적 주체의 모습 역시 통일되어 있지 않다. 


모더니티의 주체는 앞, 또는 위를 향한 단선적 경로 위의 진보적 주체로 이성적이며, 모더니즘에서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내적 주체는 확장되다 못해 해체되어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주체의 해체를 전제하는데 그것은 모더니즘에 이미 내재해 있다. 주체의 해체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질 것이다. 역사학자 라인하르트 코젤렉은 [지나간 미래]에서 19세기 중반 마르크스는 ‘현대적’이라는 단어를 빈번히 명기했는데, 그것은 부르주아의 발흥, 경제적 성장, 자본주의의 확립을 뜻하는 것이었다. 현대성은 ‘모든 사회적 상태의 부단한 동요, 영원한 불확실성과 운동, 생산방식과 교통방식의 전복’(마르크스)에서 기인했다. 현대화라는 개념은 ‘자본형성, 자원의 동원과 아울러 생산력의 발전과 노동 생산성의 증대, 정치적 중앙권력의 관철과 민족정체성의 형성’(하버마스)과 얽혀있다. 앙리 르페브르는 [모더니티 입문]에서 금세기에 초부터 일상의 극적인 변화를 지적한다. 전기, 자동차, 비행기 등 현대기술을 바탕으로 한 세계 최초의 발명들이 산업화된 사회의 실천 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동시에 제국주의와 대규모 계급투쟁, 국제적 긴장이 시작되었다. 모더니티란 가속화된 기술적 진보와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축적과정이었다. 근대성은 계몽과 밀접하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계몽은 진보적 사고가 보여주는 포괄적 의미에서 인간에게서 공포를 없애고 인간을 주인으로 지정하는 목표를 추구했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적대적인 자연의 혼돈을 제어하는 발전을 말한다. 근대성의 이념은 합리화의 이념과 밀접히 관련된다. 이 합리적 사회에서는 이성이 과학과 기술적 활동 뿐 아니라, 사물의 관리와 더불어 인간의 지배를 명령한다. 종교가 지배하는 전통으로부터 탈마법화 되어 세속화된 세계는 ‘합리적’(막스 베버)이라고 서술되었다. 알렝 투렌의 [현대성 비판]에 의하면, 합리화란 기능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세계의 분화라는 특징을 가지는데, 이 체계의 모습은 핵심조직인 자본주의적 경영과 관료제적 국가장치를 중심으로 형성된다. 


과학과 기술은 합리주의의 정점에 놓인다. 알렝 투렌에 의하면 감각이 우리에게 외부에서 제공한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것을 앞서 측정하고 예기하는 가정에 종속시키는 자연과학에서의 실험과 기획은 어떤 것을 어떤 것과 동일시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항상 어떤 것을 이해 가능성의 틀에 맞추는 형이상학의 유산이 남아있다. 결국 합리적이란, 앞서 규정된 목표에 이르기 위해 가장 적절한 도구와 가장 경제적인 노동방법을 총괄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도구적 합리성의 총아인 과학 기술 문명은 삶의 추상화를 낳는다. 이 맥락에서 마르크스는 ‘추상은 오로지 현대적 세계에서만 발견될 뿐’이라고 말했다. 자본주의 체제는 역사상 어떤 사회에 비교할 수 없이 추상적이다. 앙리 르페브르에 의하면 자본주의는 시간과 화폐를 통해 추상적으로 측량되는 노동, 즉 세계의 다양한 요소들 사이에 동일성의 관계를 만든 임금 노동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시간이 가속도가 붙은 근대는 역사에 대한 감수성을 드높인 시대이다. [지나간 미래]에 의하면 이러한 역사의식에 의해 근대는 현재를 일종의 과도기로서 특징짓는다. 이 과도기는 과정에 속도가 더 붙을 것이라는 가속화의 의식과 미래가 전혀 다른 종류일 것이라는 기대 속에 소모된다. 하버마스는 18세기에 ‘모던’ 또는 새로운 시대라는 표현과 함께 등장한 개념으로 혁명, 진보, 해방, 발전, 위기, 시대정신 등의 예를 든다. 코젤렉은 어떠한 시간이 새로운 시대로, 즉 ‘근대’로 경험될수록 미래의 도전은 점점 더 커졌다고 말한다. 미래의 세계는 현재나 과거의 세계와는 질적으로 다르리라는 확신 속에서, 미래의 몫이 불균형적으로 커졌다는 것이다. 근대에 등장하기 시작하는 ‘--주의’라는 개념들은 모두 인간의 경험보다는 미래에 대한 인간의 기대로 구성된다. 근대는 미래를 향해 살고 있으며, 새로운 것에 개방되어 있는 시대를 의미한다. 


유동성과 운동성이 지배적인 현대성은 좌파에게는 ‘새로운 시대로 이행해 가는 과정으로서 스스로를 이해하는 시대의 의식’(하버마스)이며, 우파에게는 ‘과거를 파괴하고 미래를 통제하는 인간의 자기 의식적 의지’(벨)이다. 역사는 유토피아라는 목적을 향하는 진보의 과정이 된다. 역사주의로 귀결된 근대의 역사의식은 민족과 전통을 재발견하였다. 재발견이라기보다는 창안에 가까웠다. 전통은 대중문화나 현대예술과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근대적 발명품이다. 스콧 래쉬와 조나단 프리드먼 편집한 [현대성과 정체성]에 의하면, 19세기에는 국민국가가 자리를 잡으면서 민족의 정체성과 민족주의의 창조가 활성화되었다. 세계의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유럽의 풍경은 진짜 오래된 것보다는 19세기에 각색된 것이 많다. 국민국가는 근대세계 체제의 주요한 정치적 단위이다. 사회, 국민경제, 민족 개념은 모두 동질적인 민족적 실체의 존재를 모델로 한다. 


역사 만들기는 정체성을 생산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조나단 프리드먼은 [지구화 시대의 문화정체성]에서 서구의 고유성은 동양, 원시성, 전통성에 대립해 왔다고 지적한다. 그에 의하면 고대 그리스는 부상하는 유럽정체성의 중대한 한 측면을 이루었다. 단선적 역사의식은 식민지배와 함께 공간화 되어 문화에 있어서도 진화론이 주장되었다. 선진적인 중심과 후진적인 주변이라는 공간적 배치가 이루어졌다. 문화적 진화론에는 유럽을 모델로 전 세계를 서열화하는 위계적 관점이 있다. 조나단 프리드먼에 의하면 유럽세계의 헤게모니는 15세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때는 상업주의와 유럽 중심의 세계 시장이 형성되던 탐험의 시대였다. 이국주의와 원시주의는 이 같은 우주론적 소산 가운데 하나였다. 인류학은 공간을 시간으로 오역하고, 문명과 비문명의 진화적 관계로서 현문명의 중심부/주변부/변두리 구조의 이데올로기적 표상 속에서 탄생했다. 


근대에는 이처럼 공간의 시간화가 있었다면 극도로 현대화(hypermodernization)된 시대는 ‘시간이 공간을 완전히 정복하는’(데이비드 하비) 것이다. 첨단, 또는 중심부의 발전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무한히 공급되어야한다. 조나단 프리드먼에 의하면 경쟁적 팽창이 일어났던 시대에, 처음에는 폭력적으로 중심부가 팽창되는데, 교역, 전쟁, 약탈 등은 부의 원시적 축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서구의 문명사회와 비서구의 미개사회를 뜨거운(hot) 사회와 차가운(cold) 사회로 비유한 바 있는데, 그것은 많은 에너지가 투입되어 진보를 만들어내는 뜨거운 서구와 괘종시계 처음 투입된 에너지기 무한히 사용되며 반복적으로 지속되는 차가운 비서구 사회의 대조이다. 많은 에너지가 투입되고 또 낭비되면서 생산력의 혁명을 이룬 자본주의는 처음부터 원료와 노동력의 공급지이자 시장인 식민지를 필요로 했다. 세계화를 추동한 것은 시장이다. 


마샬 버만은 [현대성의 경험]에서 부르주아의 과격하면서도 만족할 줄 모르는 행동주의, 즉 처음에는 자신들의 노동자들에게 강요하였고 그 다음에는 전 세계에 강요했던 행동주의는 ‘그 이전의 모든 세대를 종합하는 것보다도 더 많은  대량적이면서도 거대한 생산력을 만들어내었다’(마르크스)음을 강조한다. 버만에 의하면 또 다른 위대한 부르주아의 성취는 일상생활을 국제화하는 것이었다. ‘생산을 위해서 시장을 부단하게 확장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전 세계에 걸쳐서 부르주아에게 요구되었다. 이러한 필요성은 모든 곳에서 자리를 잡아야만 했고 모든 곳에 정착해야만 했고 모든 곳을 연결 지어야만 했다’(마르크스) 부르주아 문명은 보편적이다. 그 자체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었던 현대 부르주아는 우연히 세계문화를 창조하게 되었다. 이질적 문화는 동화되거나 억압된다. [지구화 시대의 문화정체성]은 문화전파가 종속적인 사회질서가 해체되고 연이어 지배적인 시장문화로 사회가 통합되는 곳에서 가장 쉽게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2. 근대적 이성과 주체, 그리고 대중 개인주의


모더니티를 추동하는 또는 그에 반응하는 주체의 모습은 하나가 아니다. 근대적 주체가 근대와 함께 반성되어야 한다면, 근대적 주체를 이루었던 이질적인 가닥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체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손쉽게 주장되는 바와 같이 쉽게 포기될 것이 아니다. 주체가 해체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새로운 주체를 창안하기 위한 과정으로서이다. 탈근대주의에서 강조되는 탈주체화는 근대적 주체가 가지는 어떤 난점을 극복하고 새로운 주체를 창안하려는 노력이 병행되지 않을 때, 주체의 해체가 요구되었던 필연성을 잃어버리고, 기성의 질서에 흡수되고 만다. 탈근대에는 해체하는 주체와 해체된 주체가 함께 있는 것이다. 해체는 금기를 비롯한 모든 경계를 넘나든다는 스스로의 착각과 달리, 기성의 질서는 좀 더 유연한 제도화를 통해 그들만의 해방구를 구획해 주곤 한다. 시공간적 팽창주의를 추동하는 이성적 주체가 있는가하면, 그것과 길항작용을 하는 보다 내면화된 주체가 있다. 


전자가 사회 혁명과 발을 맞추는 지향하는 전위에 해당된다면, 후자는 좀 더 소박하게,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더욱 근본적으로 언어의 혁명에 복무하는 모더니스트가 해당된다. 정보혁명에 의해 세계가 상부구조 하부구조 할 것 없이 하나의 거대한 그물망으로 촘촘하게 엮여지는 시대에, 언어의 혁명은 이전시대 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만프레드 프랭크는 [현대의 조건]에서 아우구스티누스가 ‘인간 이성은 통일성을 지향하는 힘이다’라고 말한 이래, 이성적 판단의 근본 성질은 사고의 필연성, 보편성, 합법칙성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근대는 혁명과 더불어 경험되고 생각되어졌다. 이성은 이러한 혁명적 전통 속에서 개인적인 열정에 대해 일반의지의 합리성을 대립시키면서, 과학적 논증에 근거하지 않은 정치 사회적 형식들을 백지화했다. 알렝 투렌은 [현대성비판]에서 과학과 그 응용을 활성화시킨 것도 이성이고, 개인과 집단적 필요에 사회적 삶을 적응시킨 것도 이성이며, 폭력과 전횡을 법치국가의 시장으로 대체시킨 것도 이성이었다고 평가한다. 


헤겔은 계몽주의 시대가 오성, 또는 반성을 이성의 자리에 세워놓았다고 말한다. 오성과 같은 사이비 이성은 체계의 자기 보존에만 관심이 있다. 그리하여 다양성의 차이라는 비동일성을 포괄하려는 동일성의 사유가 확립된다. 프랭크는 분석적 이성이 생활세계의 구조들을 더욱 추상화시켰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물리적이고 정신적인 세계를 추상으로의 환원은 감각자료, 인정된 언어사용, 증명가능성을 통해서이다. 경험론의 근본전제는 정신적 표상이 선험적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분해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는 감각 경험으로 합성된다. 물론 이러한 ‘단순한 요소들의 배열로 합성된 것’은 ‘구체제를 부수는 부르주아의 무기’(사르트르)이기도 했다. 프랑크는 ‘합리적 근거 짓기’라는 몰가치적 작업이야말로 외부세계를 도구적으로 사용하려는 권력에의 의지라고 강조한다. 이성은 ‘전적으로 계산하는 사고와 그것이 만들어낸 엄청난 성과의 광기’(하이데거)로 밝혀진다. 그것은 도구화된 과학기술부터 관료주의까지 공식적 세계를 지배한다.


앙리 르페브르는 [모더니티 입문]에서 역사는 인간과 자연의 두 가지로, 인간은 자연과 역사로 나뉘어진다고 말했다. 근대민주주의는 역사의 주인으로서 자율적인 주체를 상정한다. 리차드 세넷도 혁명가들은 ‘중립적인 주체, 즉 개인적인 열정과 이해관계를 이성의 법칙에 종속시킬 수 있는 자’를 찾고자 했다고 말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데카르트)라는 추상적 주체성은 모든 의심스러운 객체로부터 시작해 유일하게 확실한 존재로 환원하는데서 드러난다. 하이데거가 말하듯이 근대는 인간이 존재자의 척도와 중심이 된다는 사실로 규정된다. 인간은 모든 존재자의 바탕에 놓여 있는 주체이다. 그것은 근대적으로 표현하면 모든 대상화와 표상가능성의 토대가 된다. 하버마스는 스스로를 외화하고, 이 객관화를 다시 체험 속으로 융해시키는 주체성에 관한 표상이 근대에서 중요시되었다고 지적한다. 의식철학의 의미에서 주체는 자신의 인식과 행위를 통해 객관세계와 관계하는 것이다. 


언어와 세계가 일치한다는 형이상학적 봉인이 파괴되면, 언어의 재현 기능자체가 문제된다. 하버마스는 문제점 있는 재현의 과정에 대한 명료성을 획득하기 위하여 표상하는 주체는 자신을 스스로 객체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되면 자기반성이라는 개념이 주도하게 되며, 표상하는 주체는 최종적 확실성의 토대가 된다. 자기의식을 통해 현재화된 인간은 자신이 자율적이고, 동시에 유일한 실존이라는 사실을 의식하는 순간, 사물의 질서를 생산해야 하는 초인간적 과제를 떠맡아야 한다. 하버마스에 의하면 이성의 억압적인 성격은 자신을 객체로 만드는 주체의 관계 속에 토대를 두고 있다. 가장 야심적이 형식의 현대성은, 인간이란 인간 스스로가 이루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확신이다. 하버마스는 생활세계를 규정하는 것은 추상적 자아인 동일성들의 형성을 목표로 하고, 또 성장하는 사람들의 개인화를 강요하는 표본이라고 지적한다. 현대성의 이론이 인식, 의식과 그리고 자기의식의 개념들에 방향을 맞추는 한, 이성개념 또는 합리성과의 연관관계는 분명해 진다. 


그러나 근대에는 이성의 주체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이성과 주체의 대화를 중시하는 알렝 투렌은 근대란 단지 세속화, 합리화, 자본주의 정신의 시대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종교개혁의 시기와 17세기에 이미 합리화만큼 강력했던 주체화(subjectivation)라는 힘에 의해 이 현대주의는 보완되었다고 강조한다. 그는 자본주의 정신과 부르주아 개인주의 정신을 대조시킨다. 전자는 생산, 노동, 절약, 희생으로 사회를 구성하지만, 후자는 행복을 추구하고 사생활에 특권을 부여한다. 현대사회는 합리주의적이며 세속화되고 생산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개인주의적이지 않다. 그러나 중앙화 된 생산과 경영이 개인에게 부과하는 구속과 정상화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는 개인주의적이다. 현대성은 이성과 주체 사이의 대화로 이루어져 왔던 것이다. 이성 없는 주체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집착에 매몰되며, 주체가 없는 이성은 권력의 도구가 된다. 


주체와 이성이 인간 속에 공존함을 강조하는 투렌은 그 선구자로 데카르트를 지목한다. 자유의지에 중요성이 부여하는 데카르트는 과학적 사고의 위력으로 환원되지 않는 인간을 신뢰하도록 한다. 계몽의 합리주의는 이성의 승리와 신앙의 파괴 속에서 인간의 자유를 발견함에 반해, 데카르트는 이성을 신뢰함으로서 피조물일 뿐 아니라, 창조주의 모든 이미지를 갖춘 인간 주체에 대해 성찰한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단지 현대 합리주의의 창시자가 아니라, 기독교 이원론을 현대적 주체의 사상으로 변형시킨 중심인물로 평가된다. 알렝 투렌은 주체화란 한 개인의 삶이 외부로부터 결정된 사건들의 연속이 아니라, 하나의 통일성의 원칙을 갖는 것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근대적 의식철학이 동일성이라는 중심개념을 가졌다면, 니체로부터 시작된 탈현대적 이성비판의 중심개념은 차이와 타자이다. 근대적 합리성에 대한 비판을 ‘고문대, 그것은 이성이다’(푸코)라는 말에 집약되어 있다. 


이성적 주체와 대화를 통해 이성과 길항작용을 하는 내면적 주체의 모습은 소비사회가 전면적으로 전개되어 만들어진 대중에게서 발견되기 힘들다. 대중은 이기적 행복의 추구가 근대의 강박관념임을 보여준다. 대중의 대다수는 소비가 행해지는 도시에서 산다. 대중의 수동성은 근대도시의 공간적 구조와도 밀접하다. 근대는 도시혁명의 시대이기도 하다. 리차드 세넷은 [살과 돌; 서구 문명에서 육체와 도시]에서 19세기 중반 유럽은 농업중심의 사회였지만, 한 세기가 지난 후에는 중심핵이 고도로 집중된 도시 중심의 사회가 되었음을 밝힌다. 세넷에 의하면 근대도시는 수동적인 군중을 낳았다. 스펙터클을 만드는 것은 권력의 진정한 형태인 소외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시민은 시각의 노예가 되어, 집단적으로 훔쳐보는 자가 되었다. 혁명의 도시에서 모든 장애물을 치우고 투명한 자유의 공간을 도시중심에서 만들려는 계몽적 충동은 공허함과 무관심을 유도했다. 


거대한 열린 부피, 요컨대 자유의 공간은 시민과 군중을 잠잠하게 하고, 그들의 육체를 누그러뜨렸다. 도시에서 사람들은 모두 개별자였다. 흩어진 개인이 가득한 공공영역은 더 이상 정치영역이 아니었다.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고안해낸 말인, ‘개인주의의 시대’가 바로 근대이다. 도시적 고독에 둘러싸인 개인주의는 ‘그들과 접촉하지만 그들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는 단지 그 자신으로만, 그 자신만을 위해서만 존재한다’(토크빌) 토크빌은 이런 종류의 개인주의는 서로를 상호무관심으로 견뎌내는 사람들의 공존이라는 어떤 특정한 질서를 가져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개인주의와 물질주의의 깊은 관계를 지적한다. 그는 도시에서 ‘부패하지는 않지만 영혼을 약화시키고, 소리 없이 그 행동의 스프링을 풀어놓는 물질주의’를 보았다. 대도시는 개인으로 분리시키는 움직임을 통해 지금 형태에 이르렀다. 현대인은 각자 물질을 필요로 할 뿐, 서로를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작가 또한 익명화되었다. 익명화란 작가 역시 대중의 한명이라는 넘어서, 이전시대의 예술보다 작가에게 주어진 더 큰 몫을 전제하기에 역설적이다. 주체는 양식(언어)을 통해 작품 전체로 흩뿌려진다. 빅토르 스토이치타의 [그림자의 짧은 역사]에 의하면, 인상파 화가인 르누아르는 보들레르의 평문 [현대생활을 그리는 화가]에 심취되어서 다음과 같은 열성적인 관찰자인 견자(見者)를 꿈꾼다. 세계의 수도 파리를 배회하는 도시의 산책자로서의 관찰자는 ‘세상을 보고, 세상의 가장 중심에 있되 그곳으로부터 숨겨진 채 남아있으라...관찰자는 그가 어디를 가든 익명으로 즐기는 왕자이다....그것은 비(非) 자아의 만족할 줄 모르는 자아이며, 매순간 마다 끊임없이 변덕스럽고 사라지기 쉬운 삶 그 자체보다 더 생생하게, 이미지로 그것을 그려내고 표현하는 것이다’ 예술에서의 근대적 주체는 세계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숨겨진 채로 남아있고자 한다. 


근대 미술에서의 주체는 이전 세대의 사실주의적 주체와 달리, 고정된 정점이 아니라 묘사되는 사물과 함께 움직인다. 가령 사진 및 영상의 시대와 더 밀착되어 호흡하는 누보 레알리즘은 주체/대상의 이분법에 기초한 이전시대의 리얼리즘과 큰 차이를 가진다. 순수예술로서의 모더니즘은 ‘대상과 주체, 미술가의 외부에 있는 세계와 미술가 자신을 다 포함하는 암시적인 마술을 창조하는 것’(보들레르)이다. 신과 유비되는 인간이라는 선험적 질서에 기반 하는 휴머니즘은 재현 및 표현의 이론과 더불어 약화되었고, 현대미술이 전개되는 내내 ‘인간주의’는 그자체로 문제시되는 개념이 되어, 결국에는 ‘포스트 휴머니즘’ 이론까지 등장하게 된다. 익명적 대중과의 관계도 이중적이다. 특화된 언어의 전문가로서의 모더니스트는 대중에 대해 엘리트주의적 의식을 가지면서, 동시에 상업적 물신화의 정점에 선다면 어느 시대보다도 영광을 누릴 수 있는 현대의 잠재성을 무시할 수 없게 된다.      

 

3. 모더니즘


'모던‘은 ‘가운데서 들려오는 소리’(vox media)라는 뜻이라고 한다. 또한 그것은 방금(modo) 생겨난 무엇을 의미하며, 그로서 현재성을 획득한다. 모더니즘은 동시대성을 강조했다. 모더니즘을 주장한 보들레르에게 그러했듯이, 당시 세계의 수도 파리는 동시대성이라는 주제의 발상지였다. 예술가들이 모여들곤 하던 대로로 트인 파리의 카페들은 보들레르가 권한 ‘근대적인 삶’의 장소를 제공했다. 동시대성이라는 점에서 낭만주의는 모더니즘의 뿌리가 된다. 린다 노클린은 리얼리즘과 동시대성에 대한 요구는 리얼리스트가 아니라 낭만주의자들이 만들어냈다고 지적한다. 정치적, 사회적, 민주주의의 요구와 함께 나타난 예술의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요구는 지금까지 그림으로 표현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던 모든 주제에 새롭게 눈을 뜨게 했다. 화가들은 동시대성의 맥락에서 평범한 일상을 기념비적 스케일로 재현한다. 뿐만 아니라 기법과 매체를 단순한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도 인식했다. 


가령 꾸르베의 자화상을 보면 그가 속한 유파인 사실주의와 다르게 매우 낭만적인 보헤미안의 모습으로 표현되며, 하찮은 일상을 기념비(역사적)적인 차원으로 고양시켰고, 후기에는 화면의 평면성과 조응하는 표면의 질감과 재현 간의 미묘한 균형을 쟁취하기도 한다. 장남준은 [독일낭만주의 연구]에서 상상력의 절대자유에 대한 요청은 계몽주의에 의해 성취된 개인의 자립적인 노력을 토대로 하였을 때 비로소 가능했다고 강조한다. 낭만주의는 자아의 절대성을 강조하면서 예술도 예술가의 순수 본질적인 자아의 표출이며, 예술 활동은 절대자아가 세계 창조 작업을 하는 상징이 되었다. 낭만주의 예술의 형식과 내용은 절대적 내면성으로 규정된다. 보들레르에 의하면 진정한 작품은 철저하게 생성의 순간에 사로잡혀 있다. 모더니즘은 현대적인 도시의 초라한 모습 속에 담겨있는 시적인 가능성을 살린 보들레르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또한 ‘남루한 현실주의적인 것을 환상적인 것과 결합시킬 수 있는 가능성’(엘리어트)이다. 보들레르는 현대적 삶과 유행과 예술을 통해 순간적인 것 속에 영원한 것이 존재함을 알았다. 보들레르에 의하면 현대는 ‘덧없는 것, 사라지는 것, 우연적인 것이다. 이것이 예술의 반을 차지하며, 다른 반쪽은 영원한 것, 변화하지 않는 것’이다. 현실과 영원의 이와 같은 직접적 교류를 통해서 현대는 비록 과도기적 성격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지만, 비루한  평범함은 떨쳐버린다. 보들레르가 말한 ‘하찮은 삶’이 현대성 전체를 만든다. 모더니스트들은 현재적 삶의 잠정적이고 덧없는 아름다움을 추구하였다. 보들레르는 ‘모든 독창성은 시간이 우리의 감수성에 찍어 놓은 인장에서 기원한다’고 말하였다. 보들레르는 현대적 삶과 유행과 예술을 통해 순간적인 것 속에 영원한 것이 존재함을 알았다. 마샬 버만에 의하면 모더니즘에 내재된 이러한 이중성에서 덧없는 면모가 더 강조 되면서 포스트모더니즘 국면이 전개되었다. 


본격 모더니즘에서 영원성, 즉 고전적 측면이 완전히 사라진 적은 없다. 후기 인상주의나 19세기 말 상징주의에서 볼 수 있듯이, 근대의 ‘덧없음’을 견제하려는 근대예술가들의 언급--‘인상주의를 견고하고 지속적인 것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한 세잔의 예가 있듯이—은 많이 발견된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고전성은 이전시대처럼 신화 및 종교적 서사 에 미술을 귀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한정 지어진 전체로서의 자율적 언어를 강조하는 면모를 말한다. 그러나 모더니즘에서 언어를 순화시켜 자율적 존재로 만들려는 노력은 ‘언어의 감옥’(프레드릭 제임슨)으로 귀결되기도 했다. 언어의 자율성이 형식화되는 국면은 계몽의 역설과 비교될 수 있다. 계몽은 중세적 무지와 맹목에서의 해방이자 또 다른 족쇄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형식화와 코드화로의 점진적 변모는 모더니즘과 모더니티에 공통적이다. 자율과 종속이란 실로 동전의 앞뒷면의 관계이다. 


20세기의 모더니티는 ‘제국주의, 혁명과 전쟁의 시대’(르페브르)로 요약된다. 19세기 말에 시작된 모더니즘 역시 1차 대전이 발발하기 이전까지, 20세기 초부터 절정기를 누리고 있었다. 모더니티가 역사주의적이고 직선적인 시간관을 바탕으로 한다면, 모더니즘은 더 이상 진보에 대한 낙관주의적 확신 없이 순간적이고 심미적인 삶과 예술에 몰두한다. 모더니즘은 모더니티가 강조하는 진보와 혁명을 미술 언어 내부로 한정지었다. 모더니즘은 예술적 완벽함의 모델을 과거와 같이 신, 신-인간, 자연 및 그것을 재현하는 신화와 전설, 종교가 아니라, 예술 자체에 둔다. 그것은 실로 동어반복적인 것인데, 실제와 언어와의 연관성이 아직 있었던 발생기의 모더니즘에서 이 동어반복은 어느 정도 창조적일 수 있었다. 마네의 작품이 모더니즘인 것은 회화 자체의 본성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마네는 회화의 주제 보다는 기법에, 소묘보다는 채색을 강조했다. 그는 빛과 그림자의 대비시키면서 중간 톤을 없앴다. 


강조된 평면성은 조형적 대상을 관객의 시선 바로 앞까지 끌어당기면서 전통적인 회화의 방식보다 생생한 효과를 준다. 검정색이나 갈색같은 칙칙한 색을 없애고 팔렛트나 화폭이 아니라 눈에서 색이 섞이도록 한다. 색채들은 분할된 상태로 병렬된다. 빛을 일곱 가지 기본요소로 해체하여 화폭에 재구성함으로서 빛과 색채의 진동을 느끼게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네의 화폭은 대상이 자리하는 대기의 아름다움을 직접 그릴 수 있도록 한다. 버나드 덴버는 [가까이에서 본 인상주의 미술가]에서 ‘그림의 세부에 대해 말하자면 어느 하나 고정된 것이 없다...마치 끊임없이 변하는 반사광 때문에 늘 다르게 보이면서도 운동감, 빛, 생명으로 늘 고동치는 재현된 대상이 그러하듯이...’라는 말라르메의 말을 인용한다. 화가들은 아카데미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와 대면하려 한다. 그러나 주제에서 형식으로의 이동은 곧 예술 언어의 인공성에 보다 주목하게 했다. 


르페브르에 의하면, 보들레르가 현대적인 것에 대한 취미와 또 그것의 비밀을 푸는 열쇄는 바로 추상과 예술, 그리고 인공적인 것 속에서였다. 보들레르는 자연과 자연주의 그리고 18세기의 낙관적인 철학과 인연을 끊고자 한다. 보들레르는 반(反)자연을 말하자면 주어지거나 외적인 어떠한 것도 모사하지 않으면서 결과적으로 순수한 인공성과 동일해지는 순수한 창조성의 예술을 선택하였다. 보들레르의 전망은 표상과 환상을 사용하여 참을 수 없는 현실 세계 속에서 총체적인(이상화된) 허구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에 있다. 보들레르로 대변되는 모더니즘과 다르게 마르크스로 대변되는 모더니티는 현대세계를 정치적으로 생각하여, 총체적 실천이라는 관념에 의존한다. 모더니즘이 총체성을 언어에 한정지을 때, 언어는 곧 해체된다. 현대예술은 개성적인 것과 흥미로운 것, 새롭고 진기한 것, 그리고 기발한 것을 부단히 추구하면서도 여전히 충족되지 않은 동경을 지닌다. 예술 언어에 대한 관심은 형식주의를 촉발시켰다.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다소간 이전 시대의 신학을 미학적으로 계승한 유미주의는 20세기에 와서 유사 과학적인 개념인 형식주의로 탈바꿈한다. 20세기 초의 미학자 클라이브 벨은 ‘의미 있는 형식(significant form)’ 이론을 통해 형식주의를 정립했다. 주관적 연상이나 객관적인 기능이 아니라, 오로지 대상이 갖는 순수 형태야말로 아름다움의 요소이다. ‘인간적인 관심사를 차단시키고 동시에 우리의 열망과 기억을 억제’시킴으로서 이룩된 형식주의의 지평은 그린버그까지 이어진다. 그린버그는 스스로의 목적이 될 수 있는 사물에 대에 관심을 쏟으면서, 예술작품을 올바르게 수용하기 위해서 삶으로부터 어떠한 것이라도 차용하지 말자고 말한다. 그린버그는 자기 반영적 형식주의(self-referring formalism)를 옹호한다. 그린버그에 의하면 미학적으로 좋다고 여겨지는 것은 오직 매체의 명령--그림 면의 평면화와 순수한 채색—이다. 


그는 자신의 논문 [Modernist Painting]에서 칸트와 더불어 비롯된 자기 비판적인 태도의 심화와 과장이 바로 모더니즘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린버그에 의하면 개별 장르는 ‘순수한’ 존재로서 정립될 수 있었고 그 순수성을 통하여 자율성과 함께 질적 수준까지도 보장받게 되었다. 회화매체를 형성하는 여러 조건들, 즉 평평한 화면이나 캔버스의 형태, 그리고 물감의 성질이 만들어내는 평면성이라는 요소는 회화예술에 있어서 유일한 특징이다. 무엇이 그 그림 속에 있는가를 염두에 두는 것이 아니라, 우선 그것이 한 장의 그림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단지 한 장의 그림은 평면화를 통해 이루어졌다. 알렌 보네스는 [모던 유럽아트]에서 마네, 모네, 그리고 세잔은 모두 그림에서 공간적인 깊이 감을 피하고 평평하게 보이려고 애썼다고 말한다. 그들은 그림이란 본질적으로 평평한 표면이라고 생각했으며, 후에는 일정한 질서에 의해 배열된 색들로 덮인 표면이라고 정의한다. 빛을 머금은 색을 평면적으로 명암 없이 칠해 동시대 화가들이 모색하던 표면과 공간의 조화를 이룩한 마티스는 ‘내 그림의 전체적인 배열이 표현적이다. 구성은 화가가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서 마음껏 장식적으로 여러 요소들을 배열하는 기술이다’고 말할 수 있었다. 


앨런 보네스는 세잔에게 선 원근법은 뒤로 향하는 모든 선들을 소실점에서 모이게 하고 그림의 공간을 깔대기 형태로 취급하는 기법에 불과했다. 세잔에게는 이것이 그림에 구멍을 내는 일과 같았다. 그는 대안으로 베네치아 식 색조 체계를 선호했는데, 그것은 그림을 얕은 상자처럼 다루어서 화면 뒤로 공간을 몇 겹으로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세잔은 입체감을 주기 위한 모델링의 관행도 좋아하지 않았다. 대신 세잔은 색채 가감 방식, 즉 옅은 농도의 물감들을 캔버스에 직접 나란히 칠해 색채와 색조의 차이를 통해서 3차원적 감각을 내는 방법을 사용했다. ‘나는 오로지 색을 가지고 원근법을 표현하려 했다’(세잔) 여기에서 회화는 대상과의 닮음이 아니라, 화면 내에서의 형태와 패턴간의 관계가 중요해지며, 이를 위해 실제의 대상은 화면의 질서를 위해 조금씩 왜곡되었다. 앨런 보네스에 의하면 세잔에게는 3차원 세계를 평면의 사각형이라는 그림의 용어로 번역하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였다. 


세잔의 작품 [생트 빅투아르 산]에서는 모델링, 드로잉, 색조, 색채, 그리고 구도를 구분해내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에게 그림은 색깔 있는 붓자국이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는데, 이것은 캔버스 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가장 중요한 공통 기준이 되었다. 자연적 현상이 회화적 실체로 이행하기 위해 공간은 시간을 통해서 파악되어야 했고 관찰자의 변화하는 의식을 고려해야 했다. 이렇게 해서 세잔은 ‘모든 감각의 강렬한 표현들을 압축해 하나의 유일한 과정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발견’(고갱)했다는 기대와 평가를 받았다. 큐비즘은 세잔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존 골딩은 [큐비즘]에서 입체파가 세잔에 대해 매력을 느꼈던 첫 번째의 것은, 세잔의 그림의 대상들이 환각적 방법의 모든 전통적 체제를 무시하면서도 고체성에 대한 놀라운 감각을 전달한다는 사실, 즉 세잔의 물 항아리, 대접 그리고 사과들은 거의 손으로 만져보는 듯 입체감이 나면서도 현저하게 그려져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그것들은 거의 한 결 같이 대단히 왜곡되고 추상화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세잔은 자기 그림에서 고체성과 구조의 감각을 성취하려 했으며, 브라크는 세잔의 구성방법과 불일치를 자신의 원근 사용법에 투입시켰다. 건물, 암석, 나무들은 서로 뒤에 연이어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위에 포개지고 그래서 그것들은 대개 캔버스의 윗부분에까지 닿아서 시선이 그 너머의 무한대 공간으로 달아날 수 없게 되었다. 인물을 포함한 모든 것이 잘게 분할된 각진 면(facet)들로 처리되었다. 브라크에게 파편화란 ‘나는 파편화를 통해서 공간 안에서 공간과 움직임을 설정할 수 있는데, 공간을 창조하고 나서야 거기에 사물들을 하나씩 집어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 브라크는 ‘자연에는 촉감적인 공간이 있다. 이 공간을 나는 수공적(manual) 공간이라고 묘사하고 싶다. 입체파를 이끌어나간 원리는 내가 느꼈던 새로운 공간을 실체화(표현)하는 것 이었다’고 말했다. 앨런 보네스는 브라크의 그림에서 중요한 특질은 공간을 다루는 것이었다고 지적한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새로운 종류의 화면 공간을 원한 브라크에게 색의 기능은 이제 묘사적인 것이 아니라, 구축적인 것이었다. 짧은 기간 동안 지속되었던 큐비즘의 조형 혁명은 공간에 대한 브라크의 관심과 형태에 대한 피카소의 관심이 합쳐진 결과였다. 브라크는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그림을 시각적으로 만져보게끔 하기 위하여 관찰자를 향하여 앞쪽으로 이 공간을 전진시켰다. 존 골딩은 입체파가 환각적인 공간을 버림으로서 그림에서의 대상과 그 주변의 공간은 그림의 표면을 향해 앞으로 전개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큐비즘의 실험성은 그것이 새로운 종류의 실재(reality)를 생산한 것에 있다. 큐비즘은 독창적이고 반자연주의적인 종류의 구상성(figuration)을 전개하여, 추상과 재현 사이의 인공적인 장벽을 무너뜨렸다. 이렇게 주제로부터 탈피하고 촉각적인 회화공간을 구축 한 근대회화는 관객과 화폭을 더욱 가깝게 했다. 


4. 근대적 자율성의 명과 암


화면의 평면성을 향한 진화의 여정으로 미술사를 다시 보는 그린버그에 의하면, 화면은 그자체가 깊이의 효과를 내는 가상의(fictive) 면들이 실제 캔버스의 표면인 실재적이고 물질적인 평면 위에서 하나로 만날 때까지 그것들을 평평하게 만들고 압박하는 가운데 점점 얇아진다고 한다. 그린버그에 의하면 대상물들이 양감을 유지하려고 애쓸 때 불안한 긴장이 발생한다. 보다 진전된 단계에서 사실적인 공간은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표면과 평행하게 전면으로 나오는 평평한 면들이 된다. 이 면들은 대상을 투명하게 반영하지 않는다. 그것은 불투명하다. 그린버그가 강조하는 것은 매체의 불투명성(opacity)이다. 


한 예술의 정체성을 회복하려면 그 매체의 불투명성이 강조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꼴라주를 비롯한 입체파의 공간 혁명은 사실주의적(realistic) 환영이 아니라 시각적인(optical) 환영이며, 이것은 화면의 불투명성을 강조한다. 여전히 미술은 보여주는 기술이지만, 투명한 창이나 거울로서는 아니다. 그린버그는 미술이 독립적인 직업, 원리, 기술로서의 예술, 단순히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이 아닌 절대적으로 자율적인 그리고 그 자신을 위해 존중받을 자격이 있는 예술이라는 생각을 확고히 했다. 그에 의하면 모든 예술은 보편적으로 이념이나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없는 경험의 요소들을 훨씬 더 직접적인 감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매체의 표현능력을 확대시키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예술의 자율성은 동시에 예술의 위기를 초래한다. 기호는 자율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기호의 의미는 자기 안에 있는 것이 아니며, 삶과의 대화에 의해 의미가 획득될 뿐이다. 


모더니즘 예술의 자율성은 모든 분야의 분업화라는 모더니티의 결과물이었다. 예술(Art) 자체가 근대에 와서 확립된 것이다. 자율성은 해방이자 소외의 과정이었다. 예술 특유의 고립과 소외는 새로움과 저항의 에너지가 되었다. 아도르노를 비롯한 모더니즘 옹호자는 예술은 자율성을 통해 오히려 사회적일 수 있다고 본다. 여기에는 예술과 삶의 거리를 통해서만이 실천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역설이 존재한다. 아도르노는 창조적이고 소외되지 않은 노동으로서의 예술은 그 고유의 자율성 속에 가장 정치적일 수 있다고 보지만, 분업화 사회가 분업의 결과물을 동등한 가치로 교환하지 않은 한 예술이 소외되지 않는 노동이라는 사실은 자명하지 않다. 예술 또한 상업주의의 추상적인 교환가치에 끼어들어 물신화를 재생산하면서 소수의 성공한 작가들을 낳지만, 이는 동시에 절대적 다수의 소외를 말한다. 테리 이글턴에 의하면 모더니스트들은 신비로운 자기 목적적인 대상이 되기 위해 자기만의 언어로 주위에 방어망을 구축했다. 


그러나 그것은 상품의 또 다른 이면인 물신화를 재생산함으로서만 가능한 것이다. 예술가들은 예술의 자율성을 통해 통속적인 공리주의나 상품화, 무미건조한 노동에 대한 저항하기도 했지만, 예술의 자율성은 예술가들이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을 만큼 자유로워야 함을 전제로 한다. 자신이 만든 것을 팔 수 없다면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운명은 예술가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근대 예술의 추상적인 자율성은 근대 관료제도에 의해 포위되어, 예술은 ‘관리하는 사람과 관리되어지는 사람으로 양분’(수지 개블릭)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수지 개블릭은 [모더니즘은 실패했는가]에서 문화는 점점 더 전문적인 마케팅, 법인경영, 홍보기술에 의해 통제되어 전해지고 관리된다고 지적한다. 여기에서 소비되는 충격이 생겨나며, 제도의 보호를 받는 미학, 가령 ‘모든 것이 미술이 된다’는 식의 개념이 생겨났다. 화면 외에 모든 주제를 제거하려던 모더니즘은 개념미술에서 보여지 듯 온통 잡다한 주제들로 가득 찬 예술이 되었다. 제도화된 현대 사회에서 작가가 자율적이기 위해서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역설이다.   


출전; 2013 아르코 신진작가 워크숍 강연록


 

출처ㅣ김달진 미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