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수 미술칼럼
(91) 남천 송수남과 수묵화운동
오광수
지난 6월 8일 남천 송수남 화백이 하세하였다. 남천하면 무엇보다도 먼저 떠오르는 것은 80년대를 통해 전개되었던 수묵화운동이다. 수묵화운동은 많은 젊은 한국화가들의 참여가 있어 가능했던 일이지만 이를 이끈 선견과 투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수묵화운동이 갖는 방법에 있어 특이한 점은 거의 10년에 가까운 시간대를 통해 일종의 데몬스트레이션을 띠었다는 것이고 동시에 축제적인 퍼포먼스의 양상을 띠었다는 것이다. 전시를 이끄는 주체측이 나이를 바라보는 객체쪽에서나 다같이 숨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는데 그 특이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같은 전략은 남천의 뚝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며 확고한 신념과 비전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수묵화운동에 대한 반응은 결코 긍정적인 측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운동이 갖는 방법의 기발함에 의아함을 보이기도 하면서 ‘수묵화운동이란 말자체가 성립될 수 있는가’란 논증적인 측면에서부터 ‘과연 운동이 얼마만한 성과와 영향을 주었는냐’는 결과론에 이르기까지 비판적인 시각도 없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 운동의 핵심이 남천을 중심으로 한 홍대출신 작가들(이철량, 신산옥, 박인현, 이윤호, 홍석창, 홍용선, 김식, 박운서, 김호석, 문봉선, 김미순, 이양우)의 결속에 의한 것이어서 홍대출신 외의 작가들에겐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적인 요인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운동이든 애초에 소수의 이념적 호응에 의해 제기되고 추진되기 마련이다. 미술사를 통해 새로운 사조의 전개가 전체의 합의에 의해 이루어졌던 예가 있었던가.
수묵화운동은 우리고유 정서를 찾는 과정
수묵화운동이란 말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은 수묵화자체가 어떤 사조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화의 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수묵화와 채색화란 분류는 한국화의 중심적인 두 개의 영역을 일컫는다. 이 중심 영역이 어떻게 운동으로서의 전개에 적합하냐하는 의문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수묵화가 형식으로서의 영역이 아니라 그것의 내면의 어떤 요소를 이념의 형식으로 추구할려고 했을 때 이는 충분히 이즘으로서의 명분을 띨 수 있는 것이다.
이 운동의 핵심은 수묵이 지닌 정신세계를 통해 우리 고유한 정서와 조형의 체계를 추구한다는데 있었다. 수묵화가 지닌 독특한 정신세계를 하나의 이즘의 근간으로 삼는다면 운동으로서 전개될 명분은 충분하다고 본다. 어쩌면 수묵화운동이 갖는 의의는 형식을 하나의 정신영역으로 치환해서 이즘으로 옷을 입혔다는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수묵화는 애초에 존재했던 한국화의 한 영역이지만 그 속에 잠자는 정신세계를 일깨운다고 했을 때 그것이 왜 운동이 되지 못한다는 말인가. 이점은 거의 같은 시기에 서양화 영역에서 전개되었던 단색화운동과 미묘하게 반응하면서 한 시대의 정신세계, 우리 속에 있었던 정신의 공동체를 추구하려는데 미술사적 의미를 부여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미술에 있어 정체성이란 말이 이 무렵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것도 결코 우연의 일치는 아니다.
수묵화운동의 열기가 식어가면서 여기에 참여하였던 많은 작가들이 개별의 성숙이란 또 다른 국면으로 이동해갔다. 남천은 어쩌면 이 무렵부터 본격적인 자신의 수묵세계를 완성시켜가지 않았나 본다. 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그에게 운동의 후유증은 심각했을 테지만 오히려 더욱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이 그의 예술을 더욱 성숙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발묵을 통한 수묵의 다양한 변주와 깊이의 천착, 반복되는 선조구성을 통한 행위의 무위성과 자발성, 그리면서 동시에 그리지 않은 상태를 지향한 무념의 경지는 그가 도달한 완성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중심이 되었던 수묵화운동과 그를 통한 수묵에 대한 신앙에 가까운 집념을 보였던 그의 작가적 의지는 우리 미술사에 지울 수 없는 하나의 족적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삼가 영면을 빈다.
출처: 김달진 미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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