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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 세마리_Gum bichromate pro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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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적이고 표면적인 시대, 사물이 숨기고 있는 은유와 암시를 박종인은 사진으로 담아냈다. 그가 포착한 풍경은 환(幻)이다. 구도(求道)의 대상이다. 바다 위를 나는 새, 도심 음식점 앞에 앉아 있는 돌두꺼비, 진흙 속에 피어난 연꽃 한 송이, 노송 한 그루…. 그저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그저 무뚝뚝한 것이 아니고 그저 늙은 것이 아니다. 모두가 태초부터 숨겨 놓은 말들을 소곤거린다.
동일한 현상, 동일한 언어, 동일한 풍경도 그에게서는 묵상과 명상이다. 작가는 “사물의 이면에 숨어 있는 ‘생각하는 풍경’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늘 바쁘게 돌아가는 21세기 현대사회에 잠시라도 치유의 여유를 줄 수 있는 그런 이미지를 원했다는 것이다. 언제나 쨍하고 정교하고 현실과 동일한 그런 사진이 아니라, 세상과 조금은 절연해 피안(彼岸) 혹은 이상(理想) 혹은 침잠(沈潛)된 무언의 세계에 휴식하려는 현대인에게 던지는 작가의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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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꽃_Gum bichromate process
- 작가가 채택한 ‘검바이크로메이트 기법(Gum bichromate process, 이하 검프린팅)’은 감광제와 물감을 혼합해 필름과 함께 노출시키면 빛에 노출된 부분은 물감이 굳고 노출 정도에 반비례해 물에 씻겨나가면서 상이 맺히는 인화기법이다. 은염 인화기법이 탄생하기 전인 19세기 말 유행한 기법으로, 파리 포토클럽의 창시자 드마슈, 프와테방 등 프랑스 작가들과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에드워드 슈타이켄을 비롯한 미국 사진가들이 채택했던 회화적(繪畵的)인 인화방식이다.
사진의 가장 큰 특성인 복제성(複製性)이 검프린팅에서는 불가능하다. 물감과 화학약품의 배합, 그리고 수작업에서 오는 예측 불가능성으로 인해 디지털 프린트는 물론 암실에서 제작되는 사진처럼 똑같은 이미지를 생산하는 게 불가능하다. 그래서 작품으로서의 독창성과 희소성이 보장되는 반면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에 장기간이 소요돼 상업성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작가는 검프린트를 택했다. 지구상에 65억 개의 우주가 있듯, 그 소우주(小宇宙) 저마다 위안과 안식을 얻는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다. 작가는 이번 작품전에서 A/AB와 AB/AB라는 독특한 에디션 방식을 택했다. 에디션 아트의 대표적인 장르인 사진이지만, 동일한 작품이 2개 이상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의 네거티브 필름으로 서로 유사하되 똑같지 않은 작품 2개만 프린트한다. 특히 금분(金粉)과 물감, 그리고 둔탁한 화학약품이 빛과 합심해 풍경을 종이 위에 형상화했다. 금분으로 표현한 일부 작품은 보는 각도, 조명의 각도에 따라 형체를 은폐하기도 한다. 조선시대 회화의 한 흐름이었던 금니산수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실험작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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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_Gum bichromate process
- 박종인
1966년생. 서울대 사회학과
뉴질랜드 UNITEC school of design 현대사진학 전공
현재 조선일보 여행전문기자
전시
단체전 Labyrinth - 오클랜드(뉴질랜드), 2004
개인전 不二 Be In one - 가나포럼스페이스,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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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소나무 흑_Gum bichromate process 2 파천황_Gum bichromate pro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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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_Gum bichromate proc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