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樂茶軒-문화와 예술/詩가 있는 뜨락

[스크랩] 책장을 펼친다/ 천양희

sosoart 2013. 10. 30. 21:03

최상대의 스케치- 청라언덕

 

책장을 펼친다/ 천양희

 

 

저 건물은

웃음을 잃은 창백한 시인 같다고

그가 말했을 때

웃음도 하나의 장식이라고 말한

건축가가 있다

 

어디, 통곡할 만한 큰 방 하나 없냐고

그가 물었을 때

통곡할 방을 설계할 건축가는 시인밖에 없다고 말한

건축가가 있다

 

나는 놀라서

문득 펼쳤다가 오래 읽은

「시와 건축」책장을 다시 펼친다

 

영혼으로 지으라...... 우리는 모두

삶이라는 집을 짓는 건축가이니

 

- 월간「문학사상」2012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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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체의 '권력의지'를 연상케 하는 '건축의지'란 말이 있다. 이 말을 지식인층에 처음 유통시킨 사람은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이다. 가라타니는 그의 저서「은유로서의 건축」에서 플라톤 이래 서양 사상사는 사유의 건축물을 지으려는 의지로 충만한 역사였다면서 이 말을 썼다. 따라서 '건축의지'는 서양 사유의 토대를 설명한 철학적 용어일 뿐 건축과는 별로 상관이 없으며, 그의 책 역시 형이상학 등 현대철학의 주요 논점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 것이지 건축에 관한 혹은 건축 미학에 관한 담론은 아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철학의 현주소가 좀 더 이상적인 삶의 질서를 구축하고 실현하려는 고민의 언저리에 있다면, 우리 삶과 매우 밀착된 어쩌면 삶 그 자체인 건축 역시 같은 자리에서 고민을 함께 하며 그 답을 풀어가야 할 위치에 있다. 그것에 더하여 건축은 종합예술이어야 한다. 사람들에게 기능과 편이뿐 아니라 구석구석 행복한 삶을 충족시켜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건축은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으로서 다양한 요소를 검토해야 하는데, 웃음은 물론 울음조차도 오롯이 받아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통곡할 방을 설계할 건축가는 시인밖에 없다고 말한 건축가'가 누구인지,「시와 건축」은 누구의 책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함성호의「당신을 위해 지은 집」이라는 산문집은 기억한다. 이 책은 시인이자 건축가인 저자가 가지고 있는 해박한 인문학 지식과 건축과 삶, 건축과 예술 간의 사유를 담고 있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저녁이면 일몰을 감상하기 딱 좋은 집, ‘맑은 웃음소리가 있는 집(素昭齋)’을 지은 함성호의 집 이야기와 여행, 문학, 철학 그리고 사랑에 대한 자신만의 넓고도 깊은 미학을 펼쳐 보인다.

 

 몸만이 아닌 마음이 사는 집, 여유 있는 생각과 꿈을 꾸게 해주는 집, 그리고 아름다운 시가 사는 집. 바로 그가 영혼으로 짓고 지어주고 싶은 집이다. 등기부와 건축물관리대장에 기재된 부동산 가치로서의 집이 아닌 사람을 살피는 철학이 있고 사람을 살리는 영혼이 있는 그런 집이다.

 

 최근 이러한 철학적 고려와 예술적 가치를 마음에 두고서 국내외의 건축 공간을 두루 산책하고서 스케치를 곁들여 사색을 풀어 쓴 책이 지역에서도 출간되었다. 대구건축가협회장을 지냈고 현 대구예총 수석부회장인 '한터건축'대표 최상대의「건축, 스케치로 읽고 문화로 느끼다」(학이사)가 그것이다. 책장을 펼치면 '우리는 모두 삶이라는 집을 짓는 건축가'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가 꿈꾸는 건축과 스케치 산책은 우리 문화에 대한 답사기이자 새로운 제안이기도 할 것이다.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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