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 김준태
초등학교 1,2학년 애들이려나
광주시 연제동 연꽃마을 목욕탕
키가 큰 여덟 살쯤의 형이란 녀석이
이마에 피도 안 마른 여섯 살쯤 아우를
때밀이용 베드 위에 벌러덩 눕혀놓고서
엉덩이, 어깨, 발바닥, 배, 사타구니 구석까지
손을 넣어 마치 그의 어미처럼 닦아주고 있었다
불알 두 쪽도 예쁘게 반짝반짝 닦아주는 것이었다
그게 보기에도 영 좋아 오래도록 바라보던 나는
"형제여! 늙어 죽는 날까지 서로 그렇게 살아라!"
중얼거려주다가 갑자기 눈물방울을 떨구고 말았다
- 육필시집『형제』(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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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장례식장에서 민망한 광경을 보았다. 장례도 마치기 전에 형제들끼리 상속유산과 잔여 조의금 문제로 이견이 생겨 서로 고성이 오가는 모습이었다. 현직에서 은퇴한 맏아들보다 상장회사 임원으로 재직 중인 작은아들을 보고 찾아온 문상객이 월등히 많아 일 치루고 남는 돈은 그 비율에 따라 나누자는 작은 며느리와 그간 아버님은 누가 모셨고 또 제사는 누가 지낼 것이냐는 큰 며느리 사이에 벌어진 '설왕설래'가 발단이었다.
부모 돌아가신 뒤 자녀들 사이에 상속재산을 놓고 다투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런 다툼은 경영권 분쟁과 함께 재벌가에선 '형제의 난'이라 해서 흔히 있는 일이고, 보통 집안이라고 다르진 않다. 잔여 조의금은 유산과 같은 개념으로 법은 형제들끼리 공평하게 나눠 갖도록 한다. 하지만 받은 조의금은 언젠가는 갚아야할 빚의 성격이므로 작은 며느리의 주장도 일리가 없진 않다. 그렇다 해도 수고와 살림의 형편을 고려치 않은 처사는 너무나 야박하고 온당치 못하다.
평생 고생하며 모은 부모의 재산을 자식들이 서로 많이 차지하겠다고 그러는 꼴을 돌아가신 부모들이 보시면 얼마나 속상하고 기가 찰 노릇인가. 게다가 그러고 나면 남는 것은 남만도 못한 사이가 되어 형제간에 원수가 되는 일 뿐인데, 그럴 땐 무자식이 상팔자고 재산 없음이 화근을 없애는 상책이란 말이 나올 만도 하다. 어쩌면 우리 모두 카인의 후예이기에 그런 근원적 갈등이 지속되는 것은 아닐까. 인류 최초의 갈등과 살인이 카인과 아벨에서 비롯되었음을 환기한다면 형제간의 시기와 투쟁은 곧 인간의 역사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공자는 일찍이 ‘형제는 비록 조금 분한 마음이 있더라도, 화목한 혈육의 관계를 폐하지는 못한다.’고 하였다. 따지고 보면 거의 모든 형제간의 갈등은 본능적 경쟁심리라기 보다는 그게 다 돈과 권력에 대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임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만 배제되고 개입시키지 않으면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와 같은 형제애는 얼마든지 발휘될 수 있으며, 실제로 비슷한 사례도 많이 있다.
이 시에 등장하는 어린 형과 아우도 소유욕에 대한 철이 들기 전의 우애이다. 같은 피를 받고 한 뱃속에서 나온 형제애의 DNA는 충분히 이런 살가운 광경을 보여줄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다만 서로 듬성듬성 터럭이 돋아나고, 토란만큼 불알이 영글어가고, 각자 아내 얻어 살림나면서 네 것 내 것이 갈릴 때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가 문제다. 이 광경을 물끄러미 보는 시인에게도 아마 비슷한 추억이 있었나 보다. 그 추억이 지금의 처지와 견주어 아련해지자 눈물방울을 떨구며 세월이 더 가더라도 아니 ‘늙어 죽는 날까지 서로 그렇게 살아라!’며 그냥 덕담이 아닌 간곡한 주문을 하는 것이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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