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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경 - 시공을 잇는 촉촉함/ 이선영

sosoart 2013. 11. 8. 13:01

정은경 / 시-공을 잇는 촉촉함

이선영

시-공을 잇는 촉촉함

 

이선영(미술평론가)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고 가다가 창밖으로 펼쳐지는 우리의 산야를 보면 정말 산수화 같은 풍경이 보일 때가 있다. 특히 겨울이 가까워져 알록달록한 색들이 탈색되고 선의 흐름이 보다 두드러지는 즈음에, 자연은 여러 농담의 먹으로 그려진 섬세한 풍경처럼 보인다. 이때는 온갖 공해 및 유해물질과 소음, 전자파들로 가득한 하늘도 여백이 된다. 체내 기관의 미세한 관이나 돌기들처럼 하늘을 향해 뻗은 잔가지들을 그리는 화가의 능숙한 손놀림은 자연의 형태를 낳은 바로 그 힘의 분배와 중첩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은 자연이 아니지만, 자연과 유사하다. 자연과 멀어져 자족적인 체계를 이루려는 인간의 노력은 좋은 의도를 가질 때조차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곤 한다. 특히 그 시스템이 폐쇄적일 때 그러하다. 자연에 관한한 관념이나 상상보다는 현실과 사실이 더 진기하고 아름답다. 자연이라는 책은 마르지 않는 영원한 참조대상이다. 동양화에 대한 유서 깊은 화론들이 많겠지만, 실제의 자연은 그림이 나오게 된 원인 중의 하나이다. 정은경의 그림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정은경 15연성정 설경 대85X54.2013

 

그것은 기암괴석들이 즐비한 관념적 풍경이 아니라, 작가가 살고 있는 서울 근교의 눈길이 잘 가지 않는 풍경들이다. 가령 작품 [샛말-도라지]는 화면 좌 하 측에 작은 인간만큼이나 눈에 띄지 않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쑥 꺼진 구릉지를 그린 것으로, 작품을 통해 작가가 관객으로 하여금 볼만한 장소로 발굴한 것이다. 작품들은 대부분 변화가 별로 없는 작은 도시의 일상적 풍경과 자연이다. 그러나 개발이 되면 언제라도 갈아 업어질 수 있는 과도기적인 광경이기에, 전통적 동양화를 볼 때와 같은 관조적 느낌은 들지 않는다. 정은경은 엄청난 성능을 가지고도 휴대성도 간편해진 카메라의 도움 대신에, 현장사생을 한다. 카메라는 필요할 때 극히 일부분, 실증적인 도움을 얻기 위해 도구적으로 사용할 뿐이다. 스케치 북에 연필도 아니고, 먹과 붓을 가지고 야외에서 그림의 상당부분을 완성하고 온다는 것은, 동양화가 제작될 때 요구될 법한 정돈되고 정적인 분위기와는 차이가 있다. 실제 그녀가 야외에서 작업하는 사진들을 보면, 추위와 더위를 피하기 위한 복장이 거의 밭 매고 나물 캐는 농사꾼과 다를 바 없다. 

 

작업이란 자연에 직접 가해져 생산하는 노동은 아니지만, 노동에 필적하는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가 투입되는 것이다. 물통의 물 대신에 계곡물을 직접 찍어서 그린 그림도 있다.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는 한겨울에는 붓과 먹물이 얼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현장에서 그려지는 그림에는 작가의 몸의 움직임과 연관된 독특한 시간성이 내재해 있다. 모든 광경을 싸안을 수 있는 전지전능한 하나의 시점은 없다. 가령 [연불사], [관곡지-관망], [관곡지-연밭] 같은 작품에는 작가가 여러 번 그리는 장소를 옮겼음을 알려주는 정황들이 남아있다. 전체 구도는 대략 고정되어 있지만, 세부는 서로 다른 시점이 공존한다. 정은경의 풍경들은 그곳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는 알아볼 수도 있는 실증적인 정확성이 있지만, 한 장의 사진으로는 나올 수 없는 각도가 대부분이다. 만약 사진으로 이러한 복합적 시점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포토샵의 귀재가 되어 컷과 컷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꼴라주 기술을 동원해야만 할 것이다. 

 

정은경은 대중문화, 그리고 예술에서도 주요한 기법이 되고 있는 그러한 번거로운 장치들 대신에, 몸으로 체득된 기술로 사방으로 흩어지려는 것들을 조율한다. 눈과 손, 직관 그 모든 것이 미디어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예술은 기계화 될 수 없는 부분이 종합되는 주요한 분야 중의 하나이다. 코드화되지 않고 검색되지 않는 실체 자체를 부정하는 정보양식의 시대에, 예술은 형식화된 시스템을 갱신할 수 있는 이질적 요소들이 배양되는 소중한 영역이다. 여기에서 예술은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생성되는 것이다. 예술은 매뉴얼화나 분업화가 되기 힘든 분야이다. 그것이 오늘날 예술이 가지는 단점이자 장점이다. 그림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가며 육안으로 관찰하는, 지각과 기억이 복합된 결과물이다. 정은경의 작품에는 기계 문명을 통해서 지배적 시점이 되어버린 사진과는 다른 지각적 체험이 녹아있고, 그것은 기계복제의 시대에도 그림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준다. 

 

물론 그것은 동양화의 전통에 이미 있는 것이다. 전통과 실제 경험을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정은경의 그림에는 시점 뿐 아니라, 시간의 변화도 내재해 있다. 한 장면을 동결시켜 놓은 것 같은 사진적 시점이 아니라, 한 장의 그림에 시간의 추이가 나타나는 것이다. 가령 작품 [포동-물대기]에서 앙상한 가지만 있던 시점에 그리기 시작했지만, 며칠 후에는 꽃이 피어 있고, 다시 며칠 후에는 모내기를 위해 논에 물이 대어 있는 장면이 한 화면에 녹아 있다. 2주간의 변화가 한 화폭에 담겨지는 것이다. 그리는 도중에 이전에 없었던 변수들은 적극 도입된다. 물론 순간적인 변수의 도입은 지우기 힘든 동양화의 속성상, 정확한 판단을 요구하는 일이다. 그러나 화가는 멋진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지는 않는다. 그리는 도중에 져 버린 꽃나무는 그것이 다시 피어날 일 년 후를 기약하고 접어두거나, 추후에 관찰을 통해서 보충하곤 한다. 


정은경, 샛말-도라지155x90 2013

 

육안이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짧은 순간을 고정시키는 사진의 경우 이러한 번거로움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계의 편리성은 동시에 많은 것을 배제한다. 작가는 사진을 베끼는 작업이 ‘영정 사진 같은 느낌’이라고 말한다. 부재하는 현재의 박편인 사진은 언제나 죽음을 각인하고 있다. 반면 지각과 기억의 종합적 과정이 살아 있는 그림은 보다 생생하다. 만약 어떤 사진이 그림의 느낌을 준다면, 그것은 이러한 종합적 과정을 잘 활용한 것이리라. 시점과 시간 뿐 아니라 작품의 규모를 변화시킬 때도 있다. 현장에서 완성된 작은 그림을 100호 이상으로 키울 때 작품의 활기는 다소 줄어들지만 좀 더 정리된 느낌으로 재구성된다. 작품의 제목에는 장소와 시간이 반영되어 있다. 이전에는 문학적인 제목도 종종 짓곤 했지만, 작품 수가 많아지면서 기억하기 좋은 방식으로 결정된 것이다. 가령 [포동-물대기]라는 작품제목에서 포동은 장소를, 물대기는 마른 논에 물을 대는 계절과 특정한 시간 주기에 행해지는 행위가 포함 된다. 

 

시간과 공간은 기억과 지각을 동시에 호출한다. 작품 [새벽-진달래 동산-하우징], [연성정 설경] 등에서 나타나는 석채로 그린 촉촉한 에메랄드 빛 하늘은 분리된 시공간들을 연결시키는 요소이다. 에메랄드 빛 석채는 여백을 하늘로 지칭한다. 수묵화에 석채를 얹은 정은경의 스타일은 대기에 가득한 빛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반수처리를 하여 수묵에 석채를 올릴 수 있게 한 기법은 떠도는 기억과 지각들을 안착시키는 촉각적이면서도 촉촉한 요소이다. 새벽에 물안개가 피어나는 듯한 습윤한 느낌은 저수지가 있는 지금의 거주지의 특징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지만, 낙동강 유역에 있었던 고향에서 피어올랐던 물안개 까지 소급된다. 에메랄드 빛 촉촉함은 요즘 같이 기나긴 장마철의 불쾌한 끈적거림이 아니라, 물안개 피어오르는 새벽의 신선함을 환기시킨다. 정은경의 작품은 그날의 좋을 날씨를 예보하는 물안개를 헤치며 새벽 일 을 나가는 농부들처럼, 늘 상 새로이 시작되는 일상을 촉각화하고 시각화한다.

 

출전 ; 미술과 비평 가을호

 

출처: 김달진 미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