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樂茶軒-문화와 예술/詩가 있는 뜨락

[스크랩] 무서운 나이/ 이재무

sosoart 2013. 11. 18. 21:15

 

 

 

무서운 나이/ 이재무

 

 

천둥 번개가 무서웠던 시절이 있다

큰 죄 짓지 않고도 장마철에는

내 몸에 번개 꽂혀 올까봐

쇠붙이란 쇠붙이 멀찌감치 감추고

몸 웅크려 떨던 시절이 있다

철이 든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느새 한 아이의 아비가 된 나는

천둥 번개가 무섭지 않다

큰 죄 주렁주렁 달고 다녀도

쇠붙이 노상 몸에 달고 다녀도

그까짓 것 이제 두렵지 않다

천둥 번개가 괜시리 두려웠던

행복한 시절이 내게 있었다

 

- 시집『길 위의 식사』(문학사상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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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도 천둥번개가 무서웠던 시절이 있었다. 공연히 우르릉 쾅쾅 번쩍 쳐대는 천둥번개도 무서웠지만 프랭클린이라는 용의주도하고 위대한 인물이 발명한 피뢰침의 기본원리를 학교에서 배운 뒤 번개 치는 날의 우산 쓰기가 더욱 두려웠다. 그런 유년이 있었다. 몸에 지닌 동전 하나에도 벼락을 끌어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때를 철없고 순진한 시절이었다고 한다면 시근이 들고 세상살이에 밝은 성숙한 시기에는 어떤 모습일까.

 

 “비가 쏟아지는 날 천둥번개가 치면 지은 죄업 때문에 문밖출입을 삼간다”는 허홍구 시인 같은 분도 없진 않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나이 들어가며 간이 커지고 무서운 것도 점점 줄면서 뻔뻔해져 간다. ‘큰 죄 주렁주렁 달고 다녀도 쇠붙이 노상 몸에 달고 다녀도 그까짓 것 이제 두렵지 않다’ 그런데 자신에게 닥칠 좋지 않은 일에는 그 경우의 수를 팍 줄이는 대신 자신에게 생길지도 모르는 좋은 일에는 확률을 터무니없이 높이려는 경향도 있다. 벼락은 겁내지 않으면서 벼락 맞을 확률과 맞먹는 로또에는 은근 기대를 감추지 않는걸 보면.

 

 하지만 나이 먹을수록 생각이 많아지고, 사려가 깊어짐에 따라 몸을 사리고 분별력이 생기는 것 또한 자연스런 현상이다. 요즘은 ‘중딩’과 ‘고딩’이 ‘맞짱’을 뜨면 중학생이 이긴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가 있다. 겁 없이 아무거나 들고 덤벼들 나이라는 것이다. 사려가 깊지 못하니 ‘통박’이 안 나오고 대책 없이 무모해진다는 거다. 물론 불량기 다분한 일부 학생들의 이야기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기질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긴 하다.

 

 다른 의미로 무서움을 모르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보아왔다. 만용을 용기로 오인하고, 비뚤어진 영웅심을 영웅의 기개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잘못된 신념을 가진 자의 자기 확신은 때로 자신이 싫은 것을 나쁜 것이라 생각하고, 개인적 호불호를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규정짓기도 한다. 나이 듦에 비례하여 지혜도 자란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내남할 것 없이 그렇지 못할 때가 자주 있다. 실은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무의식적인 타성과 나이 먹으면서 판단력이 흐려지고 균형감이 무디어지는 게 더 두렵고 무서운 것이거늘.

 

 

권순진

 

The Thrill Is Gone - Snowy White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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