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樂茶軒-문화와 예술/詩가 있는 뜨락

[스크랩] 가 난/ 문병란

sosoart 2013. 11. 20. 20:20

가 난

 

 

문병란

 

 

 

논 닷 마지기 짓는 농부가

자식 넷을 키우고 학교 보내는 일이

얼마나 고달픈가 우리는 다 안다

집 한 칸 없는 소시민이

자기 집을 마련하는 데

평생을 건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네 명의 새끼를 키우고

남 보내는 학교도 보내고

또 짝을 찾아 맞추어 준다는 것이

얼마나 뼈를 깎는 아픔인가를

새끼를 키워 본 사람이면 다 안다

딸 하나 여우는 데 기둥뿌리가 날라가고

새끼 하나 대학 보내는 데 개똥논이 날라간다

하루 여덟 시간 하고도 모자라

안팍으로 뛰고 저축하고

온갖 궁리 다하여도 모자란 생활비

새끼들의 주둥이가 얼마나 무서운가 다 안다

그래도 가난은 한갓 남루에 지나지 않는가?

쑥구렁에 옥돌처럼 호젓이 묻혀 있을 일인가?

그대 짐짓 팔짱 끼고 한 눈 파는 능청으로

맹물을 마시며 괞찮다 괞찮다

오늘의 굶주림을 달랠 수 있는가?

청산이 그 발아래 지란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키울 수 없다

저절로 피고 저절로 지고 저절로 오가는 4계절

새끼는 저절로 크지 않고 저절로 먹지 못한다

지아비는 지어미를 먹여 살려야 하고

지어미는 지아비를 부추겨 줘야 하고

사람을 일 속에서 나고 일 속에서 살다 일 속에서 죽는다

타고난 마음씨가 아무리 청산 같다고 해도

썩은 젓갈이 들어가야 입맛이 나는 창자

창자는 주리면 배가 고프고

또 먹으면 똥을 싼다

이슬이나 바람이나 마시며

절로절로 사는 무슨 신선이 있는가?

보리밥에 된장찌개라도 먹어야 하는

사람은 밥을 하늘로 삼는다

사람은 밥 앞에 절을 한다

그대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전 우주가 동원된다고 노래하는 동안

이 땅의 어느 그늘진 구석에

한 술 밥을 구하는 주린 입술이 있다는 것을 아는가?

결코 가난은 한낱 남루가 아니다

입었다 벗어버리는 그런 헌옷이 아니다

목숨이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

물끄러미 청산이나 바라보는 풍류가 아니다

가난은 적, 우리를 삼켜버리고

우리의 천성까지 먹어 버리는 독충

옷이 아니라 살갗까지 썩어 버리는 독초

우리 인간의 적이다 물리쳐야 할 악마다

쪼르륵 소리가 나는 뱃속에다

더없이 회충을 기르는 청빈낙도

도연명의 술잔을 흉내내며

괞찮다 괞찮다 그대 능청 떨지 말라

가난을 한 편의 시와 바꾸어

한 그릇 밥과 된장국물을 마시려는

저 주린 입을 모독하지 말라

오 위선의 시인이여, 민중을 잠재우는

자장가의 시인이여.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淸曉 趙書賢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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