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난
문병란
논 닷 마지기 짓는 농부가
자식 넷을 키우고 학교 보내는 일이
얼마나 고달픈가 우리는 다 안다
집 한 칸 없는 소시민이
자기 집을 마련하는 데
평생을 건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네 명의 새끼를 키우고
남 보내는 학교도 보내고
또 짝을 찾아 맞추어 준다는 것이
얼마나 뼈를 깎는 아픔인가를
새끼를 키워 본 사람이면 다 안다
딸 하나 여우는 데 기둥뿌리가 날라가고
새끼 하나 대학 보내는 데 개똥논이 날라간다
하루 여덟 시간 하고도 모자라
안팍으로 뛰고 저축하고
온갖 궁리 다하여도 모자란 생활비
새끼들의 주둥이가 얼마나 무서운가 다 안다
그래도 가난은 한갓 남루에 지나지 않는가?
쑥구렁에 옥돌처럼 호젓이 묻혀 있을 일인가?
그대 짐짓 팔짱 끼고 한 눈 파는 능청으로
맹물을 마시며 괞찮다 괞찮다
오늘의 굶주림을 달랠 수 있는가?
청산이 그 발아래 지란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키울 수 없다
저절로 피고 저절로 지고 저절로 오가는 4계절
새끼는 저절로 크지 않고 저절로 먹지 못한다
지아비는 지어미를 먹여 살려야 하고
지어미는 지아비를 부추겨 줘야 하고
사람을 일 속에서 나고 일 속에서 살다 일 속에서 죽는다
타고난 마음씨가 아무리 청산 같다고 해도
썩은 젓갈이 들어가야 입맛이 나는 창자
창자는 주리면 배가 고프고
또 먹으면 똥을 싼다
이슬이나 바람이나 마시며
절로절로 사는 무슨 신선이 있는가?
보리밥에 된장찌개라도 먹어야 하는
사람은 밥을 하늘로 삼는다
사람은 밥 앞에 절을 한다
그대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전 우주가 동원된다고 노래하는 동안
이 땅의 어느 그늘진 구석에
한 술 밥을 구하는 주린 입술이 있다는 것을 아는가?
결코 가난은 한낱 남루가 아니다
입었다 벗어버리는 그런 헌옷이 아니다
목숨이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
물끄러미 청산이나 바라보는 풍류가 아니다
가난은 적, 우리를 삼켜버리고
우리의 천성까지 먹어 버리는 독충
옷이 아니라 살갗까지 썩어 버리는 독초
우리 인간의 적이다 물리쳐야 할 악마다
쪼르륵 소리가 나는 뱃속에다
더없이 회충을 기르는 청빈낙도
도연명의 술잔을 흉내내며
괞찮다 괞찮다 그대 능청 떨지 말라
가난을 한 편의 시와 바꾸어
한 그릇 밥과 된장국물을 마시려는
저 주린 입을 모독하지 말라
오 위선의 시인이여, 민중을 잠재우는
자장가의 시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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