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樂茶軒-문화와 예술/詩가 있는 뜨락

[스크랩] 길위에서 중얼거리다/기형도

sosoart 2013. 11. 21. 20:34

 

 

 

 

 

 

길위에서 중얼거리다/기형도

 

그는 어디로 갔을까  

너희 흘러가버린 기쁨이여  
한때 내 육체를 사용했던 이별들이여  
찾지 말라,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  


    

이제 해가 지고 길 위의 기억은 흐려졌으니  
공중엔 희고 둥그런 자국만 뚜렷하다.  
물들은 소리없이 흐르다 굳고  
어디선가 굶주린 구름들은 몰려왔다.  

나무들은 그리고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가득 피워냈다.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돌아갈 수조차 없이  
이제는 너무 멀리 떠내려온 이 길  
구름들은 길을 터주지 않으면 곧 사라진다.  
눈을 감아도 보인다.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나를 찾지 말라...... 무책임한 탄식들이여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홀린 사람/기형도


사회자가 외쳤다
여기 일생 동안 이웃을 위해 산 분이 계시다
이웃의 슬픔은 이분의 슬픔이었고
이분의 슬픔은 이글거리는 빛이었다
사회자는 하늘을 걸고 맹세했다
이분은 자신을 위해 푸성귀 하나 심지 않았다
눈물 한 방울도 자신을 위해 흘리지 않았다
사회자는 흐느꼈다
보라, 이 분은 당신들을 위해 청춘을 버렸다
당신들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
그분은 일어서서 흐느끼는 사회자를 제지했다
군중들은 일제히 그분에게 박수를 쳤다
사내들은 울먹였고 감동한 여인들은 실신했다
그때 누군가 그분에게 물었다, 당신은 신인가
그분은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신은 유령인가, 목소리가 물었다
저 미치광이를 끌어내, 사회자가 소리쳤다
사내들은 달려갔고 분노한 여인들은 날뛰었다
그분은 성난 사회자를 제지했다
군중들은 일제히 그분에게 박수를 쳤다
사내들은 울먹였고 감동한 여인은 실신했다
그분의 답변은 군중들의 아우성 때문에 들리지 않았다

 

 

질투는 나의 힘/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21.NOV.2013 by Jace

Crippled Mind / Blues Company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정효(j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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