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과 나무에 새겨진 신비한 그림과 글자 속으로 1] | |||
작성자 | 문화재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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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3-11-25 | 조회수 | 373 |
- 울주 대곡리 반구대
오랜 세월 동안 돌과 나무는 인간에게 신앙의 대상이었다. 큰 바위나 당산나무 앞에서 제사를 올리며 안녕을 빌었다. 삶이 거칠고 험했기에 그 마음은 더욱 절실했다. 돌과 나무를 찾아가는 여행길은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에서 시작한다. 눈맛이 좋은 길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반구대 암각화에 이른다. 태화강 상류 서쪽 기슭의 '건너각단'이라는 암벽에 있는 선사시대 사람들의 그림이다. 대부분이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한살이와 연관이 있다. 사람 얼굴을 비롯해 사냥하는 사람들, 활·작살·그물, 다양한 고래, 호랑이·멧돼지·사슴 같은 짐승들의 모습이 사실적이다. 함정에 빠진 호랑이와 새끼를 밴 호랑이, 교미하는 멧돼지, 새끼를 거느리거나 밴 사슴 등이 그렇다. 작살 맞은 고래, 새끼를 배거나 데리고 다니는 고래의 모습도 있다. 탈을 쓴 무당, 짐승을 사냥하는 사냥꾼, 배를 타고 고래를 잡는 어부의 모습도 그렸으며, 그물이나 배도 표현했다. 대부분 다산과 풍요로운 생업, 안전한 사냥을 기원하는 종교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 당시 생활상을 풍성하게 보여주고 있다.
울주 천전리 각석은 태화강 상류 물줄기인 대곡천(大谷川) 중류 기슭 암벽에 새겨진 그림과 글씨다. 여기를 걸어가는 길도 반구대 암각화 가는 길만큼이나 멋지다. 걷는 내내 물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온통 바위로 이뤄진 골짜기를 풍성한 물이 흐르면서 내는 소리다. 대곡천이 대곡천인 까닭을 물소리를 들으니 알겠다. 각석에 있는 마름모꼴, 동심원, 나선형 등 기하학적 문양은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제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천전리 서석(書石)'이라고, 신라시대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800자 남짓 명문도 남아 있다. 법흥왕 때 씌어진 글자들로 이를 보면 당시 신라의 모습을 알 수 있다.
- 포항 냉수리 신라비
울주 구량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64호)는 나이가 대략 550년으로 짐작된다. 조선 세조때 단종복위운동이 들통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갈 때 한성부판윤을 지낸 죽은(竹隱) 이지대(1369~1459)가 여기로 들어오면서 갖고 와 연못가에 심은 나무라 한다. 이지대를 기리는 유허비도 함께 서 있다. 옛날 사람들은 오래된 나무에는 영혼이 있다고 믿었다. 그런 믿음으로 나무를 우러름의 대상으로 삼고 신성시했다. 구량리 은행나무도 마찬가지다. 나무를 해코지하면 해를 입는다고 믿어 함부로 손대지 않았다. 나무 밑둥 구멍에 대고 아들을 낳지 못한 부인이 정성들여 빌면 아들을 낳을 수 있게 된다고 믿었다. 나무는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냐에 따라 입혀지는 의미와 해석이 달라진다. 구량리 들판에 서 있는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 마을 사람들의 사랑과 아낌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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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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