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리지 생각/ 박시교
나무가 나무에게 기대어
푸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기대어
정겹습니다
눈물이
내게 기대어
따뜻했으면 합니다
- 시집『아나키스트에게』(고요아침,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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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나무의 몸통이나 가지가 서로 맞닿아서 성장하면 맞닿은 부분이 압박을 견디다 못해 껍질이 벗겨지면서 생살이 부딪혀 하나로 이어지는 현상을 ‘연리지’라고 한다. 연리된 나무들은 서로 양분과 수분을 공유하며 광합성도 함께 한다. 뿌리를 달리하는 두 나무 가운데 한 나무가 죽어갈 때 다른 한 나무가 수분과 영양을 공급해 두 나무가 하나로 살아나는 경우도 있다. '나무가 나무에게 기대어 푸르른' 첨예한 생명 현상을 연리지를 통해 보게 된다. 엄밀하게는 나뭇가지가 서로 이어지면 연리지라 하고 나무의 줄기가 서로 이어지면 연리목이라 한다. 실제로는 연리목 보다 연리지가 더 희귀한 사례다.
뿌리를 함께 하는 두 나무가 한데 어우러져 하나 되는 연리지를 두고 부모를 같이 하는 형제간의 돈독한 우애를 상징하기도 하며, 부부간의 깊고 깊은 사랑과 아름다운 금슬을 노래할 때 자주 인용하기도 한다. 꼭 그렇게 뿌리의 연고나 특별한 인연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사람은 고독한 섬이 아니라 함께 어우러져 사는 존재이다. ‘사람 인’을 한자로 풀이해 보면 두 사람이 서로 기대어 있는 형상이다. 사람이란 그렇게 만나고 어울려서 기대어가며 살아간다. '사람이 사람에게 기대어' 있는 모습만으로도 정겹다.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들었던 고통과 어려움을 함께하면서 자신들의 어깨에 지워진 짐의 무게를 나누는 것이다.
힘든 일이나 고통을 스스로 감당한다는 생각은 자신을 더욱 힘겹게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도움과 위로 없이 모든 것을 혼자서 감당하려들 때 외로움과 슬픔은 더욱 깊어진다. 고통이나 슬픔, 굶주림이나 질병은 혼자만 짊어져야 할 짐이 아니다. 사람은 그 고난과 슬픔을 함께 나누면서 살아가야 하는 숙명적 존재이다. 홀로 태어났지만 서로 몸을 부비고 기댈 수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은 사람답다. 그리고 다른 이를 위해 흘리는 따스한 눈물 한 방울이 세상을 훈훈하게 데우는 연료다. ‘눈물이 내게 기대어 따뜻했으면’ 하고 소망하는 그 마음이 바로 세상을 굳건하게 떠받히는 사랑이며, 그 사랑이 세상을 아름답게 가꾼다.
그러므로 시인이 연리지를 보며 느낀 ‘연리지 생각’은 곧 사랑이다. 사람이 서로 기댄다는 것은 서로의 마음이 스며드는 일이고, 그가 슬프면 내 마음에도 슬픔이 번지고 그가 웃으면 내 마음에도 기쁨이 퍼지는 사랑의 감정인 것이다. 우리가 기대는 곳은 사람만이 아니다. 우울한 날에는 하늘에 기대고 가로등에 기댄다. 휴식이 필요할 땐 나무에 기대고 누군가 몹시 그리울 땐 창가에 기대고 별에 기댄다. 그리고 기적이 필요할 땐 하느님께 기댄다. 부비고 기댈 언덕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이고 다행인가. 신경림 시인은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고 했지만, 나에겐 인기척만 느껴도 따뜻해지는 ‘그녀’가 있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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