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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한탄강 현대 야외조각 흐름전 / 지역 이미지를 디자인하는 야외조각김성호

sosoart 2014. 3. 15. 15:56

김성호 

〔카탈로그 서문〕제4회 한탄강 현대 야외조각 흐름전 / 지역 이미지를 디자인하는 야외조각

김성호


〔카탈로그 서문


제4회 한탄강 현대 야외조각 흐름전

지역 이미지를 디자인하는 야외조각

 

 

김성호(미술평론가)


 

 

 

 

야외조각전 : 지역문화와 예술프로젝트의 만남

한국에서, 북과 접경지대인 DMZ가 초래한 개발제한, 인구 저밀도 등으로 인해, 연천군 지역민들이 피부로 체감하는 문화소외 현상은 그 어느 지역보다 큰 편이다. 그런 면에서, 분단의식 고취라는 취지의 ‘안보관광’ 정도가 활성화된 이 지역에서 모색되어야 할 문화적 인프라 구축은 매우 시급한 일이다. 다행스럽게 이곳은 굽이치는 한탄강과 드넓은 녹지를 갖춘 천혜의 가족 휴양지와 더불어 세계적인 ‘전곡리선사유적지’를 지니고 있기에 문화적 인프라 구축을 위한 바탕으로서 결코 손색이 없다고 할 것이다. 연천군은 이곳에 구석기 문화관련 축제를 개최해왔을 뿐만 아니라 《2010연천국제조각심포지움》의 경우처럼 현대예술의 접목을 꾀하는 일련의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실천해왔다.

 

2011년 개관한 ‘전곡리선사박물관’은 이러한 기획을 가속화할 수 있는 훌륭한 토양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이곳의 드넓은 야외공간에서 2010년 1회 행사를 치른 이래 올해 4회에 이른《한탄강 현대 야외조각 흐름전》은, 올해 14회를 맞은 《민통선예술제》와 더불어, 어느덧 연천군의 대표적 예술행사로 자리매김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특히 이 조각전은 선사유적지라는 관광명소를 지역 전체로 확장하는 문화벨트화(化)를 견인함으로써 연천 지역의 문화적 여건과 환경 개선에 있어 긍정적 파급력을 미쳐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전시는 연천군의 지역 이미지를 새롭게 디자인하고, 지역 문화에 대한 공공적 기제와 역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전초 기조의 역할을 도맡는다.

 

이 조각전은, 연천군이 주최하고 ‘민통선예술제조직위원회’가 주관하는 민관 협력의 순수예술행사로 기획되었다. 조각가 개인들의 미적 가치와 예술성을 선보이는 작품이 출품되었지만, 전시 자체는 미술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전제하지 않는 ‘불특정 다수의 일반 대중’을 향수의 ‘주체자(subject)’로 설정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출품작들은 ‘공공조각’의 성격마저 지닌다. 따라서 ‘맥락(context)’으로서의 ‘장소 속 조각’ 혹은 ‘장소로서의 조각’이란 공공조각의 위상은 출품작들에 지속적으로 요청된다. 여기서 맥락이란 구체적으로 ‘선사문화와 현대미술’이라는 낯선 영역들의 만남 그 자체이다. 따라서 주제와 형식은 제각각이지만, 거의 모든 출품작들은 물리적 공간에 귀속되는 차원을 넘어서 문화, 사회적 소통과 참여의 공간으로 확장하는 공공미술의 시대적 과제를 부여받았다고 할 것이다.

 



 전곡리 선사유적지 조각 전시공간 전경 

 

 

 

 

 

조각전 출품작들의 면모 : 다원주의와 공공성 사이

올해 전시에는 24인의 국내 현대조각가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자연의 메시지를 탐구하는 조각, 자연으로부터 환경으로 범주를 구체화하고 있는 조각, 현대인의 일상을 풍자하고 모색하는 조각 등 출품작들의 주제의식의 범주는 다양하다. 아울러 그것들의 조형언어 또한 재현, 표현, 추상, 제시, 상징, 은유, 직유 등 다채롭다.

 

조각가 차주만은 출품작〈유일에 대한 묵상-생명〉에서 아연으로 도금한 철파이프의 집적을 통해서 무수한 잔뿌리들이 모여 생성된 한 그루의 나무와 같은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지상위로 뿌리를 드러내면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는 나무줄기 형상은 오늘날 위험에 처한 자연환경에 대한 경각의 메시지를 은유한다. 그 메시지는 단순한 조형언어만큼이나 강렬해 보인다. 

 

차주만, 〈유일에 대한 묵상-생명〉, 아연도금철파이프, 2100 X 2100 X 4400 mm


 

또한 스테인리스 스틸봉을 용접해서 만든 이일호의 조각〈빅뱅〉은 외계에서 자라는 생명체와 같은 기묘한 추상적 형상을 통해서 한편으로는 동화적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또 한편으로는 조각이 표현할 수 있는 근원적이고도 조형적인 힘을 드러낸다. 

 

이일호, 빅뱅〉, 스테인레스, 스테인레스 볼, 1800 X 1800 X 3000 mm


 

한편, 김원근의 작품〈오월오월〉은 후덕한 몸매를 지닌 아빠, 꽃단장을 한 엄마와 함께 나들이를 나서는 어린이의 설레는 마음을 담았다. 시멘트 재료 위에 물감을 입혀 만들어 가히 ‘회화적 조각’이라 할 만한, 이 작품은 아빠와 엄마의 시선이 다른 곳을 응시하는 장면을 통해서 오늘날 대화가 필요한 핵가족의 일상을 풍자적으로 묘사한다.

 


 


김원근, 〈오월 오월〉, 특수시멘트, 1240 X 1000 X 2350 mm

 

 

그 외에, 부처의 수인(手印) 형상을 닮아있는 통통한 사람의 손만을 익살스럽게 크게 확대한 구상조각, 서로의 맘이 안 맞았는지 뾰로통해져 있는 한 소녀와 사자 한 마리의 갈등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동화적 조각, 야생동물 한 쌍이 얼굴을 맞대고 사랑을 나누는 듯한 형상을 충실하게 표현한 구상조각, 마치 한국의 전통적 석축(石築) 기법을 사용해서 만든 것과 같은 거대한 ‘연자(硏子)매’ 형상의 구조적 조각, 매끈한 표면을 지닌 산뜻한 색채의 추상조각 등, 각 세부 주제와 형식의 다양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차현주, 〈Hand〉, FRP, 2000 X 1500 X 2300 mm

 

이혁진, 〈이야기〉, 에폭시 레진, 아크릴 페인트, 1100 X 1000 X 2000 mm

 

김병규, 〈한글 조합된 공간〉, 오석, 1900 X 1900 X 2000 mm

 

이 전시에 있어서 관건은, 조각가마다의 개성이 흠씬 묻어나는 다원주의 조각들을 맘껏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서도 정작 공공미술의 기능과 역할 등을 소홀히 한 작품들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다분히 비판적 모색과 개선이 요청되는 지점이다. 그런 점에서 관객의 참여와 이에 반응하는 상호작용적 조각, 휴식과 놀이로서의 역할마저 수용하는 공공적 조각, 수평지향의 친환경 디자인적 조각과 같은 공공성의 기제를 보다 더 적극적으로 탐색하는 작품들이 다음 전시에서는 보다 더 많이 선보일 필요성이 있겠다.

 

류신정, 〈해돋이〉,스테인리스 스틸, 우레탄 도색, FRP, 2000 X 15000 mm

 

 

 

 

 

지역 이미지를 설계하는 야외조각전 : 공공디자인과 공공미술 사이

이번 야외조각전은 경기 연천군을 문화와 예술의 장으로 변모시키는 데 있어 그 역할이 주요해 보인다. 오늘날의 야외조각전은 지역의 컨텍스트를 밑그림으로 하는 ‘지역 이미지 디자인’을 일정부분 유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이 전시가 ‘선사문화와 현대조각의 만남’이라는 단순한 취지에서 그치기보다는 지역에서의 특성화된 문화적 맥락을 다양하고 지속적으로 적용하는 방식 또한 고려될 필요가 있겠다. 즉 단순한 순수 미술전뿐만 아니라 공공미술, 공공디자인의 개념들을 지속적으로 개발해나갈 필요가 있겠다. 실제로 일부 수상작들은 야외에서의 전시기간이 종료된 뒤 도시의 특정 공간으로 편입되는데, 이러한 환류(還流)의 방식은 매우 주요해 보인다. 이 전시가 지역 환경을 컨텍스트로 삼고, 지역 발전의 범주와 기대 속에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야외의 전시공간은 작품 보존과 관리에 대한 어려움, 작품 설치의 물리적 한계 등이 노정될 뿐만 아니라 관객을 컨트롤하는 것 자체가 용이하지 않은 까닭에 작품설치와 전시공간 구성에 있어서 효율성 창출이 관건이다. 전시 기획자의 어려움이 충분히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에 부합하여 필연적으로 따르는 콘텐츠 생산과 재정 투입에 있어서 주최측과 주관처의 긴밀한 협력이 절대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아울러 야외조각전이 장기적 기획의 틀 속에서 매년 순차적이고 확장 가능한 부제를 선정하는 방식 등, 차별화된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할 수 있겠다. 덧붙일 것은 야외조각전은 무엇보다 조각가들이 출품한 작품들이 관객들과 만나 이루어지는 유/무형의 문화커뮤니케이션 행위라는 점에서, 참여 작가들의 개별 작품들이 ‘공공성’이라는 커다란 이름 아래 소외되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할 것이다.

 

무국적 트렌드와 문화 다원주의가 팽배한 동시대에, 연천군의 특수한 지역 환경과 지역 문화로부터 자양분을 얻어 진행되는 ‘한탄강 현대 야외조각전’이 지역의 발전적 문화재생을 위해 관계자들의 다양한 문화협력을 통해서 앞으로도 새로운 모습들로 발전해나가길 기대한다. ●

 

 

출전 /

김성호, “지역 이미지를 디자인하는 야외조각 ”, (제4회 한탄강 현대 야외조각 흐름전 2013. 5. 1_6. 30, 전곡리선사유적지), 카탈로그, 발행처_석장리미술관, pp.4-5.

 

출처: 김달진 미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