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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열 그림의 뜻 -(61)이백오십년 권력의 산실 장동김문 세거지에서 벌인 꽃놀이

sosoart 2014. 4. 8. 19:27

최열 그림의 뜻 

(61)이백오십년 권력의 산실 장동김문 세거지에서 벌인 꽃놀이

최열

그림의 뜻(61) 작자미상 - <장동김문 세거지>

봄이 다 가도록 마을에 찾아오는 사람 없어 經春門巷斷來尋
버들 꽃이 다 떨어진 한 정원은 깊숙하네 落盡揚花一院深
주렴 밖에 해 높을 때 잠에서 막 깨어나니 簾外日高初睡起
건너편 숲 꾀꼬리가 맑은 소리 보내오네 隔林黃鳥送淸音


- 김상헌, 「봄이 다 지나간다[經春]」,『 청음집(淸陰集)』 제 2권



작자미상, 장동김문 세거지-청풍계첩 중, 1620, 종이, 38×51cm, 여주이씨 정산종택 소장





1620년 봄 어느 날 인왕산 자락의 김상용 집 태고정에서 일곱 명의 문인들이 시회를 벌였다. 그 일곱은 병조판서 이상의(李尙毅, 1560-1624), 판돈녕부사 민형남(閔馨男, 1564-1659), 예조판서 이덕형(李德泂, 1566-1645), 형조판서 이경전(李慶全, 1567-1644), 호조판서 김신국(金藎國, 1572-1657) 그리고 이필영(李必榮, 1573-1645 이후), 최희남(崔喜男) 같은 이들이었으니까 대신들의 꽃놀이였던 셈이다. 그런데 이들의 모임은 심상치 않은 바가 있다. 더구나 그 7인은 당시 권력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대립, 경쟁하고 있던 대북당과 소북당 인물들이요, 그 모임 장소는 뜻밖에도 서인당의 영수라 할 김상용(金尙容, 1561-1637)의 집이라는 사실이 그러하다.
이들의 모임이 열린 1620년 봄날이라면 전쟁영웅이자 1608년 왕에 즉위한 광해왕(光海王)의 눈부신 정책으로 임진왜란의 황폐함을 딛고 국가 재건의 발걸음에 박차를 가하던 무렵이었다. 한편으로 대비폐위 논쟁이 극심하던 1617년 3월 9일 당대의 권력자들 셋이 장원서(掌苑署)에서 모였다.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대북당의 일원으로 인목대비를 폐위시키자는 이이첨, 유희분과 이를 극력 반대하는 박승종이 그들이다. 하지만 모임은 결렬되었고 다음해 1618년 1월 29일 대비를 서궁(西宮)으로 폐위하였다.

대비 폐위사건 두 해 뒤에 열린 7인 모임에 참가한 형조판서 이경전이 대북당인이었고 호조판서 김신국, 예조판서 이덕형이 소북당인이었으며 병조판서 이상의가 남인당원이었다. 특이한 건 그 집 주인 김상용이 집에 없었다는 점인데 김상용은 서인당원으로 지난 1617년 인목대비 폐모론이 일어남에 벼슬을 버리고 원주로 물러나 은신하던 중이었다. 이렇듯 정쟁이 치열한 시절, 주인도 없는 집에 그것도 소속당이 다른 이들이 모여 정치토론도 아닌, 꽃놀이를 즐긴다는 건 기이한 장면이다. 이들은 태연히 시를 읊고 그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 책을 엮었다. 그 책이 바로 『청풍계첩(淸風溪帖)』이다.

 『청풍계첩』에 끼워져 있는 단 한 장의 그림에 묘사된 풍경은 바로 저 김상용의 집이다. 이 집은 장동 일대를 거의 차지할 만큼 넓었는데 바로 장동김문(壯洞金門) 세거지다. 김상용은 1608년부터 주변 일대에 별업(別業)을 조성해 나갔는데 이 조경사업은 상당한 규모여서 와유암(臥遊菴), 청풍각(淸風閣), 태고정(太古亭), 회심대(會心臺)를 새로이 건축하는 것이었다. 이 가운데 와유암은 아주 특별한 곳이다. 김상헌이 자신의 저서 『청음집(淸陰集)』에 쓰기를 명화, 고적(古蹟)을 진열하고 감상하는 곳이 와유암이라고 하면서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창임절간문유수(窓臨絶磵聞流水)>라는 서예작품이 걸려 있었다고 특별히 기록해 둘 정도였다.

화폭 복판에 세 개의 연못이 있고 오른쪽에 기와지붕, 왼쪽에 태고정이 자리 잡고 있다. 태고정 서쪽으로 계곡 물줄기가 폭포처럼 흐르고 그 뒤로 인왕산이 겹겹이 쌓여 어깨를 펼치는데 오른쪽으로 조선의 진산 백악산이 치솟아 꼭대기만 내보이고 있다. 시원스런 공간감각이 눈부신 이 풍경화를 보고 있노라면 7인 모임에 가담한 이들이 세 해 뒤 인조정변을 계기로 엇갈린 운명이며 제집을 비우고 몸을 숨겼던 김상용이 정변 뒤 우의정까지 오른 이래 그야말로 솟구쳐 오르는 가문의 위세란 게 무엇인지 싶다. 무려 15명의 정승(政丞), 35명의 판서(判書), 3명의 왕비(王妃)를 배출한 그 땅이 인간의 운명을 가르는 것일까. 이곳의 작은 주인 김상헌이 부르는 봄 노래 ‘봄이 다 지나가다’를 새겨보면 느긋한 풍경이지만 그들 가문의 눈부신 미래를 예고하는 듯 설렌다.

 

출처: 김달진 미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