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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언어-정상화論/ 윤진섭

sosoart 2014. 2. 14. 10:53

침묵의 언어-정상화論

윤진섭

침묵의 언어 -정상화論



 화면이 화면 자체로 말한다고 할 때 가장 그 본령에 접근한 작가가 바로 정상화다. 그의 화면은 침묵한다. 침묵한다고 하는 것은 대상에 대한 뚜렷한 표징이 없다는 말이다. 일체의 이미지를 사상(捨象)하여 절대 공간을 창출한 것이다. 

 아니, 애초부터 그의 화면에는 이미지가 없었다. 1950년대에서 1970년대 초반에 이르는 비정형 회화(Informel) 작품에도 이미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의 작품들은 캔버스의 여기저기에 산재한, 물감이 말라 표면의 질감이 두드러진 둥근 형태들이 돋보이는 추상화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색채로는 흑과 백이 주조를 이루고 형태로는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기름의 흔적을 연상시키는 이 시기의 작품들은 그러나 이미 70년대의 단색화 작업의 기미를 노정하고 있었다. 큰 단위의 면적에서 작은 단위의 면적으로의 이행, 그의 단색화는 실로 이러한 국면의 전환이 가져온 결과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부단한 노동의 집적이기도 하다. 카펫이 씨줄과 날줄의 부단한 교차에 의한 노동의 산물이듯이, 정상화의 단색 캔버스역시 끊임없는 손의 수고, 즉 반복되는 물감 메우기의 연속인 것이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제작과정에 대한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정상화의 작품은 캔버스에 징크 물감을 바르고 이를 건조시킨 다음, 캔버스 천을 가로 세로로 일정하게 주름을 잡을 때 생성되는 균열의 과정을 일차로 한다. 이 때 사선의 주름도 경우에 따라 잡게 되는데, 그 형상은 마치 바둑판처럼 질서정연한 모습을 띤다. 그 다음에는 수차례 반복되는 아크릴 칼라의 집적이 따른다. 도자기의 상감을 연상시키는 이러한 제작기법은 정상화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에 의한 것이다. 캔버스의 주름을 잡을 때 생기는 균열, 다시 말해서 바탕 면에 생성된 물감의 파편을 떼어내고 그 속에 아크릴 물감을 채우는 공정을 반복하는 것이 그 특유의 제작기법인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과정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행위성이 두드러진 수행(performance)의 예술, 그것이 바로 정상화의 단색화인 것이다.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정상화의 위치는 1958년에서 1961년에 이르는 <현대전>의 참가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 전위미술의 첨단에 서 있었다. 현대미술가협회의 회원으로서 비정형 회화(Informel) 운동의 중심적 존재로 활동을 했으며, 이러한 그의 활동은 조선일보사가 주최한 <한국현대작가초대전>과 <악뚜엘전>(1962-1964)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1960년대를 아우르는 실험 공간에서 대다수의 현대미술가협회 회원들이 국내에 머물렀던 것과는 달리, 정상화는 1969년에 도일, 1977년에 도불하기까지 약 8년 동안 일본에 머물게 된다. 말하자면 그가 프랑스에서 일본, 그리고 다시 프랑스에 체류하게 되는 1967년부터 1992년까지의 긴 시간은 국외자로서 한국 화단을 바라보는 입장에 있던 기간이었던 것이다. 그의 경력을 보면 이 기간 동안에 그는 확실히 한국보다는 해외에서의 활동에 주력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색화로 대변되는 그의 작품 경향은 특히 1970년대의 한국 단색화 경향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그가 현대화랑과 <에꼴 드 서울전>을 비롯한 서울의 주요 전시회에 간헐적으로 초대를 받은 이유도 따지고 보면 화풍상의 이러한 동질성에 뿌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그는 그러한 활동과 작품의 내용, 그리고 동지적 연대감으로 인하여 현재 권영우, 김창열, 김기린, 박서보, 윤명로, 윤형근, 이우환, 정창섭, 하종현으로 대변되는 한국 단색화의 정상급 원로작가의 반열에 올라 있다.  



 다시 말하지만, 정상화의 작업은 끊임없는 노동에 의한 ‘과정(process)의 예술’이자, ‘수행(performance)의 예술’이기도 하다. 이 두 양태가 그의 단색화를 특징짓는 키워드인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후자는 그의 작업이 지닌 마치 선(禪)과 같은 수행적 측면을 지니고 있어서 주목된다. 

 과정으로서의 예술이란 무엇인가? 그의 작업은 마치 피륙을 짜듯이 철저히 계산된 논리에 의한 노동의 산물이다. 징크 물감으로 바탕을 조성하는 일에서 시작하여 밑칠이 마른 캔버스를 가로 세로 일정한 간격으로 접는 일, 그리고 그렇게 해서 균열을 이룬 캔버스에서 물감의 파편들을 떼어내고, 다시 그 속에 아크릴 칼라 물감을 채워 넣는 일 등이 수공에 의한 공산품의 제조과정을 닮고 있다. 이를 베 짜기나 카펫 짜기와 같은 길쌈 일과 비교해 보면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길쌈에 따르는 필수 요소는 씨줄과 날줄에 의한 교직이다. 이것이 형성되지 않으면 길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빠르게 움직이는, 북을 쥔 손놀림은 그러니까 정상화의 더디지만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물감 채우기의 수행(修行)과 꼭 닮았다. 씨줄과 날줄의 교차에 의한 피륙의 교직은 그에게 있어서 가로 세로의 물감 채우기의 수행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노동이고 지난한 과정 그 자체인 것이다. 길쌈이 한 벌의 피륙으로 대단원의 노동의 막을 내리듯이, 정상화의 물감 채우기는 캔버스에 생긴 균열의 틈에 아크릴 물감을 채움으로써 수행의 막을 내린다. 

 수행으로서의 예술이란 무엇인가? 그의 작업 자체가 행위의 수행성(performance)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단색화 작품에서 검출되는 주요 요소에는 색이나 면 외에도 특히 행위성이 포함된다는 점에서 이 수행성 개념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따르는 필수적인 요소다. 그러나 그의 수행은 매우 제한적이다. 그것은 회화 본래의 의미인 환, 즉 ‘아무렇게나 마구 그린 그림’이라는 사전적 의미에서 벗어나 있다. 그의 단색화는 자신이 부여한 규칙, 즉 그림의 문법에 충실하다. 그것은 가로와 세로로 접은 캔버스의 일정한 모듈에 근거한다. 마치 바둑판을 연상시키는 정상화의 절서 정연한 화면은 그의 행위가 스스로 정한 규칙을 벗어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프랭크 스텔라의 초기 변형 캔버스(shaped canvas) 작품에서 보는 것처럼, 논리화한 회화가 필연적으로 겪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이다. 그 운명의 궤적을 그 역시 밟고 있는 것이다. 정상화의 단색화가 지닌 이 논리적 명징성은 곧 화면의 투명성이기도 하다. 그의 화면은, 그것이 청색이든, 흑색이든, 아니면 백색이나 고동색이든 간에, 균질적으로 투명하다. 거기에는 사물을 연상시키는 어떤 이미지도 존재하지 않으며, 캔버스 그 자체가 하나의 신체가 되고 있다. 그것은 곧 사물 그 자체이기도 하다. 

 

 사물의 사물성, 캔버스라고 하는 이 명징한 신체는 마치 하나의 피륙처럼 일정한 모듈 안에서 이리저리 갈라지고 튼 피부로 덮여 있다. 투명한 청색의, 깊숙이 가라앉은 흑색의, 혹은 윤기가 감도는 흰색의 이 피부들은 곧 살에 대한 은유다. 우리는 흔히 어떤 사람의 피부를 가리켜 “살결이 유난히 곱다”고 말한다. 그것은 피부의 질감을 가리키는 것이다. 육안으로 보기에 매끄러워 보이는 피부도 돋보기로 보면 무수한 굴곡과 미세한 주름이 존재함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피부는 이처럼 무수한 굴곡과 미세한 주름의 집합인 셈이다.

 마찬가지로 정상화의 단색화는 무수한 굴곡과 미세한 주름의 집합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인체가 살로 이루어진 반면에 정상화의 캔버스는 물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다르다. 그러나 이 둘이 언어적 차원에서는 서로 만난다. 비유가 그것이다. 가령, 그의 작품을 두고 ‘뱀 가죽을 연상시키는’, ‘어린이의 보드라운 살결을 닮은’, ‘번들거리는 흑인의 피부와 같은’ 등등의 묘사가 가능하다면, 그것들은 곧 그의 단색화가 지닌 ‘몸성’을 표현하는 어사들이다. 

 


 정상화의 단색화를 현대미술사의 맥락에서 파악할 때, 그것의 정확한 위치는 과연 어디가 될 것인가? 

그것을 과연 애드 라인하르트의 흑색 모노크롬 작품 <추상회화 No. 34>(150x150cm, 1964)나 프랭크 스텔라의 <뉴 마드리드>(1961)에 견줄 것인가. 아니, 그렇게 해야 마땅한 것인가. 단언하자면, 우리의 그런 습관은 결국 우리의 생생한 몸의 결을 죽인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단색화 작가들의 지난한 작업을 서구의 기준점에 조회하고 그 준거의 틀 안에서 해석하는 한, 우리의 독자적인 ‘몸성’은 살아날 길이 없으며, 그것의 의미나 그것이 지닌 진정성, 나아가서는 미학적 정체성은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의 문화적 특수성을 제대로 발현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올바른 작명이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단색화(Dansaekhwa)’ 혹은 ‘단색파(Dansaekpa)’란 내가 2000년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의 일환으로 기획한 <한일현대미술단면전>의 서문에 쓴 이후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는 용어이거니와, 이는 특히 정상화와 같은, 대표적인 단색화 작가의 작품에 부합하는 것이다. 


 박서보의 선긋기가 지닌 행위성, 윤형근의 짙은 갈색의 침투, 하종현의 캔버스 뒷면에서의 물감 밀어붙이기, 김기린의 검정색 물감의 분무 행위는 정상화의 물감 채우기와 함께 다같이 한국 단색화가 지닌 수행성의 특징을 아우르는 어사들이다. 그것은 모두 한국의 문화적 토양에서 배태된 고유의 미적 특질들이다. 그것은 단색화 혹은 단색파라는 고유의 용어에 감싸일 때 문화적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 주지하듯이, 그것을 ‘모노크롬(monochrome)’ 혹은 ‘미니멀(minimal)’이라는 서구의 특정한 유파나 회화적 현상을 아우르는 보통명사의 우산 속으로 스스로 편입시킬 때, 우리의 문화적 전망은 요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작명의 작업은 오랜 설득과 합의의 과정이 필요하긴 하지만, 실천적 가치가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시 정상화의 청색, 백색, 흑색, 갈색의 단색화 작품들을 본다. 그것은 마치 씨줄과 날줄이라는 트랙 위에서 삐져나오려고 애쓰는 피부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 살의 조직들은 견고하게 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것들은 그 자체 물감덩어리이기도 하면서 단면을 지닌 물감의 파편들이다. 그것은 색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빛에 가깝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이 캔버스의 표면에 부착된 색료가 아니라 파장이라는 색채 과학의 진실을 믿는다면, 정상화의 캔버스 표면에서 반짝이는 저 은빛 비늘들은 그대로 빛인 것이다. 각도들 달리하는 섬세한 은린들의 집합인 단색 화면은 색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것은 그윽하기도 하고, 깊이 우려낸 차의 맛처럼 섬세하기 그지없다. 그것은 한국의 역사와 전통이 작가의 몸을 빌려 깊이 체현한 것이다. 메를로 퐁티의 잘 알려진 표현을 빌리면, 화가의 신체를 세계에 빌려줌으로써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편으로 볼 때, 한국의 문화가 정상화의 신체를 빌려 ‘몸성’으로 체현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종합하자면, 애드 라인하르트도, 프랭크 스탤라도 아닌, 한국의 특정한 작가들의 신체를 통해 발현된 문화의 미적 정수가 바로 단색화인 것이다.   


정상화의 단색화 작품들이 드러내는 저 침묵의 절대 공간은 도저한 깊이를 보여준다. 그것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색의 여행을 떠나게 만든다. 명징한 논리에 의한, 그러나 한 편으로는 우연의 작용에 몸을 맡기는 이 미적 모험은 그 연륜에 값하는 노련함과 지적 세련미를 아울러 보여준다. 그렇다면 관객은 이제 눈의 여행을 떠나볼만 하지 아니한가.   

     

윤진섭

출처: 김달진 미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