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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열 그림의 뜻-풍요로운 시장, 서소문 밖 풍경

sosoart 2014. 1. 10. 11:12

최열 그림의 뜻 

(58)풍요로운 시장, 서소문 밖 풍경

최열

그림의 뜻(58)  정선 - <소의문 망 도성도-운리제성>

술 취해 바위틈의 눈 씹어 먹고 醉嚼巖間雪 
광기 부리다 두건도 잃어 버렸네 狂遣頭上巾 
이런 때 급하게 흘러 흩어지고 時應投瀨散 
이런 곳 절로 맑아 머물겠지     境自着淸眞

-박은, 「만리뢰」, 『읍취헌유고(挹翠軒遺稿)』

정선, 소의문 망 도성도-운리제성, 종이, 37.5×61.4cm, 삼성미술관리움 소장




시야의 폭을 한껏 넓혀 그린 한양풍경은 여러 점 있지만, 정선(鄭敾, 1676-1759)의 <운리제성(雲裏帝城)>은 무척 독특하다. 이 그림은 지금 서울역 서쪽 편의 언덕배기 중림동 약현성당 높은 곳에 서서 동쪽의 한양을 한눈에 바라본 모습이다. 
화폭 왼쪽 끝에 먹색 짙은 삼각형 산은 금화터널이 뚫고 지나가는 안산이고 안개 숲을 건너면 사직터널이 뚫고 지나가는 인왕산이다. 인왕산 너머 성벽 안쪽으로 경희궁과 경운궁(덕수궁)이 즐비하고 숲을 넘어 화폭 상단으로 올라가 보면 구름 안개가 뒤덮여서 하늘과 구분이 되지 않는다. 경복궁은 오히려 오른쪽으로 밀려나 화면 오른쪽 상단에 지붕을 오밀조밀 드러낼 뿐이다. 
화폭 중앙을 가로지르는 길고 긴 점선은 한양성곽이다. 성곽은 왼쪽 인왕산에서 점선으로 이어져 내려오다가 소나무 사이로 가려진 서대문을 지나 화폭 한가운데 이르면 서소문이 우뚝하고 번화한 칠패시장을 에돌아가면 다시 남대문에 도달한다. 남대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곧장 또 하나의 산을 타고 오르는데 바로 남산이다. 화폭 하단은 지금 무악재와 독립문에서 서대문 네거리를 지나 의주로의 만리재와 서울역 뒤편 길을 거쳐 청파로에 이르는 기나긴 냇가를 안개 자욱한 띠로 채워두었다.

이 그림의 특별한 점은 무엇보다도 <운리제성>이란 제목에 있다. 그 뜻은 ‘구름 속[雲裏] 하늘의 도성[帝城]’인데 기운이 하늘로 솟구치는 시절을 상징한다. 화폭 왼편 최상단에 구름을 잔뜩 채워 하늘과 이어두었으니 말 그대로 하늘의 도시임을 상징하고자 한 것이다. 또한, 성벽을 화폭의 가로지르는 수평선으로 사용함으로써 위아래를 확연히 나누어 상단은 성안, 하단은 성 밖으로 나누고 있다는 점이다. 
하늘의 도성이란 뜻을 지닌 ‘제성’이란 황제의 나라인 중국에서나 사용할 낱말인데 이 그림에서 그런 제목을 쓴 까닭도 궁금하지만, 더욱 의심스러운 건 최상단에 임금의 산인 백악산 대신 하늘을 배치하고 또 그 바로 아래 경복궁이 아닌 민가를 배치했다는 점이다. 이 그림만으로는 결코 답할 수 없는 의문에 불과하지만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있다. 하늘 아래 구름 가득한 자리가 바로 인왕산과 백악산 사이의 땅으로 장동 일대라는 사실이다. 
장동 일대는 장동김씨의 세거지로 이른바 정선의 후원자인 김창집, 김창협, 김창흡과 같은 이들이 대를 물려 살고 있던 터전이다. 정선 자신도 이곳 어느 곳인가에서 살았을 뿐만 아니라 흥미로운 사실은 화폭 하단 오른쪽 구석에 이 그림을 그린 해를 병신년(丙申年)이라고 밝힌 것으로 본다면 그 1716년은 숙종의 ‘병신처분’이 있던 해로 장동김문이 잃어버렸던 권력을 회복하는 시점이었다. 그 다음해 5월 김창집이 영의정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이런 사실과 연결시켜 본다면 권력의 우여곡절을 견디면서 저 장동김문의 복권을 기념하되 상승일로를 희망하는 형세를 은유한 작품인 셈이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지나친 바가 있고 따라서 하늘로 치솟는 기세라든지, 구름안개 출렁대는 기운이라든지, 성안과 성밖의 두터운 중층구조를 통해 국운이 상승하는 시대의 풍요로움을 연출하려 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림의 한 가운데 뚜렷한 문루는 소의문(昭義門)인데 시청에서 중앙일보사 쪽으로 가는 어간에 있었지만 1914년에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또한 이곳 일대에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명나라 장수를 기리는 사당인 선무사(宣武祠)도 있었고 그 전에는 오랜 세월 명나라 사신을 영접하던 태평관(太平館)이 있었는데 사신 중 장성(張珹)이 읊은 「태평관」은 온통 명나라 자랑으로 가득하다.

출처: 서울아트가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