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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범모 미술시평 - 박수근은 과연 국민화가인가

sosoart 2014. 5. 10. 23:29

윤범모 미술시평 

(15)박수근은 과연 국민화가인가

윤범모

박수근, 올해는 탄생 100주년의 해 그리고 내년이면 작고 50주년의 해를 맞이한다. 이를 계기로 박수근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우리 사회는 지난 반세기 동안 참으로 많이 바뀌었다. 정말 대변혁의 시대를 맞았다. 농경사회는 쇠퇴했고 첨단전자산업시대로 진입했다. 무엇보다 박수근이 즐겨 그렸던 농촌풍경이나 도시 변두리의 모습은 지금 보기 어렵다. 불과 두 세대를 넘기기도 전에 우리 사회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했다. 쉽게 말해 해외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지금은 해외원조를 주는 나라로 환골탈태했다. 전쟁 이후의 빈곤한 후진국에서 세계 경제 10위권 운운의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다. 압축성장의 표본이라 했다. 하지만 압축성장은 여러 가지의 문제점을 안고 있어 사회문제로 부상되기도 한다. 급격한 도시화 현상은, 그러니까 박수근적 풍경의 제거는, 그만큼 인간성 상실의 시대를 맞게 했다. 얻은 것만큼 잃은 것이 있다는 의미이다. 아니, 어쩌면 얻은 것 이상으로 잃은 것이 더 많을지 모른다. 사람답게 산다는 의미에서는.

박수근을 두고 ‘국민화가’라는 표현을 쓴다. 여기서 국민화가라는 용어는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 즉 최고의 화가라는 의미 같다. 국민적 관심의 인기화가, 이런 표현과 박수근과 어울리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한국인’은 박수근을 좋아할까. 여기서 ‘한국인’이라고 범주설정을 제한한 것은 다름 아니다. 박수근은 세계적 화가의 반열에 올라가 평가받은 기회조차 없었다. 국내의 지방 순회전은 물론 해외 전시 한 번 제대로 치러본 적이 없다. 그래서 아직은, 불행하게도 아직은, 박수근은 국내용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반성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말로만 국민화가 운운했지 정말 국민적 화가다운 대접을 했는가. 현재 박수근의 유존 유화작품은 350점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전작도록 하나 만든 바 없다. 아니, 전문연구가 하나 제대로 양성한 바 없다. 정말 말로만 국민화가, 어쩌고 이다. 미술시장에서만 최고가격의 화가로 주목의 대상이었지, 학술적 연구의 대상이라든가, 미술관 기획전시 작가로 본격적으로 부상된 바 없다. 그런데 국민화가라는 것이다. 가나아트는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4개층을 할애하여 박수근 회고전(1.17-3.16)을 개최했다. 기왕에 개최되었던 어느 박수근 전시보다 두 배가 넘는 작품을 선보였다. 소장가 40여 명의 협조를 얻어 100여 점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번 출품작의 시가 평가액은 1,000억 원이 넘는다. 그러니까 보험료만 계산해도 3-4억 원이 넘는다는 뜻이다. 보험료는 그냥 날아가는 돈이다. 웬만큼 용기와 재력을 담보하지 않고는 추진할 수 없는 전시이다. 그래서 이번 전시의 지방 미술관 순회전 성사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그래도 주최 측은 외국전을 포함하여 지역 순회전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고 있다. 출품작 가운데는 <빨래터>도 포함되어 있다. 국내 미술품 경매사상 최고의 가격을 기록했던 작품, 바로 45억 2,000만 원의 고가 작품이다. 단군 이래 최고가격의 작품, 이 그림의 주인공인 박수근, 그래서 국민화가라는 평가가 양해되는 항목인가. 사실 경매가 아닌 박수근 작품의 거래 가격으로 100 억 원대 이상을 기록한 바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젊은 작가 작품이 수 백억 원대를 기록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국력의 차이를 심하게 느끼게 한다.

박수근, 빨래터(Washerwomen by the Stream), 1959, Oil on canvas, 50.5×111.5cm


박수근은 말했다. 자신은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린다고. 그래서 그는 평범한 서민의 일상을 화면에 담았다. 생활을 담보하는 아낙네, 노동력이 있는 청장년층이 누락된 전쟁 이후의 피폐했던 사회의 단면, 그래서 기저색은 회색조였고 구성이나 묘사도 단순했다. 앙상한 나무들, 그 나무는 이파리 하나 허용하지 못할 정도로 궁핍의 상징이다. 박수근 그림은 우리 어린 시절의 풍속도이다. 비록 가난했지만, 인간미만큼은 넘쳐흐르던 시절의 사회상이다. 전후(戰後) 한국인의 자화상이다. 이런 측면에서 박수근 그림은 한국인에게 따뜻한 정서를 환기한다. 즉 고향회귀 정신이 존재하는 한 국민적 관심의 작가로 꼽힐 것이다. 하지만 박수근은 과연 국민화가인가. 이 질문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얻는다해도 박수근은 국제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평가받을 것인가. 우리는 아직도 이 같은 부분에 대한 본격적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바닥에서 머물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이름도 좋은 ‘문화국가’라고 자랑하고 있다. 국민화가의 실체도 잘 모르면서.

 

출처: 김달진 미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