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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530리 길을 따라 2]

sosoart 2014. 5. 25. 22:10

[섬진강 530리 길을 따라 2]
작성자 문화재청
작성일 2014-05-19 조회수 477

 

 

 

 

 

- 3일차
임실 신평-덕암리 신덕천-용암리 진구사지 석등-쌍암리-옥정호-운암정-운암대교-임실 필봉농악전수관-회문산-백운마을-강진면 백운마을-덕치면 일중리

 

 

보물인 임실 진구사지 석등(보물 제267호)을 만날 수 있는 구간이다. 용암리 북창 보건진료소 골목을 끼고 돌면 석등의 위용을 맞닥뜨린다.
통일신라시대 석등으로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며, 간주석이 둥근 북의 형태를 띠고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산 속에 물이 있고 물 속에 산이 있다. 국사봉(475m)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옥정호 풍경이다. 예까지 흘러온 섬진강물이 거기 가둬져 있다. 국사봉 뒤쪽으로는 오봉산 다섯 봉우리들이 솟아 있다. 국사봉을 내려와 옥정호를 끼고 한참 돌면 운암정에 닿는다.
운암정 맞은편엔 조선 숙종 때 효자인 운암(雲巖) 이흥발(1600∼1673)의 효행을 기리는 조삼대(釣蔘臺)가 있다. 조삼대는 운암이 중병에 든 홀어머니를 위해 강에서 낚시를 하는데 하루는 물고기 대신 산삼을 낚아 병을 치유했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운암삼거리 막은댐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섬진강댐이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기 전 시절을 이야기한다. "예전에는 물 반 고기 반이었지. 도랑을 타고 고기들이 시커멓게 올라가던 시절이 있었어." 마을이 수몰되고 난 후 주민들 대부분은 전주나 인근 지역으로 떠나갔다.

 

 

운암대교를 지나 '임실 필봉농악전수관'(강진면 필봉리)에 닿는다. 마을 옆의 산 모양이 붓끝처럼 생겨 필봉산인데 그 산 이름에서 마을 이름을 따왔다.
근대화과정에서 사라져간 마을 풍물굿의 정신을 전승하고 있는 곳이다. 우도인 이리풍물굿이 연희집단의 특징을 띤다면 호남 좌도지역을 대표하는 필봉풍물굿은 마을굿의 특징을 지니고있다.
필봉풍물굿은 1988년 중요무형문화재 11-마호로 지정된 이래 양순용(상쇠) 선생과 박형래(설장고) 선생이 기능보유자가 되면서 호남풍물굿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1994년 상쇠 양순용 선생이 타계한 뒤 양진성씨가 상쇠를 이어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의 꽹과리 소리는/ 조선인의 혼 깨우는 소리/…막힌 데 뚫고/ 높은 데 넘고/ 갈라진 데 합치고/ 두 소리를 한 소리로/ 두 마음을 한 맘으로/ 깽매 깽매 쿵덕 쿵덕…>('꽹과리 소리 한평생'중) 양순용 선생을 기리는 문병란 시인의 추모시에서도 필봉풍물굿의 정신을 만날 수 있다.
옥정호의 마지막 지점인 회문산을 돌아내려와 강진면 백운마을에 닿는다. 강둑을 타고 걸으면서 바라보는 수변풍경은 그지없이 아름답다.
덕치면 일중리 지나 장산리(진뫼마을)도 들러보면 좋을 곳. 시인 김용택의 고향마을로만 여기기 십상이지만 또다른 아름다움들이 숨쉬고 있다.
‘월곡양반 월곡댁 손발톱 속에 낀 흙, 마당에 뿌려서 일곱 자식 밟고 살았네…어머니 아버지 가난했지만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섬진강 푸른물에 징검다리>란 산문집의 저자인 김도수씨가 이곳 고향마을 밭에 세워놓은 '부모님 사랑비'가 마음을 울린다. 지난 2007년 이 땅 수많은 마을마다 서 있는 정자나무들을 대표해 '풀꽃상'을 받은 진뫼마을 정자나무도 만날 수 있다. 시멘트다리 아래쪽으로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놓은 징검다리도 있어 강변 마을의 정겨움을 더한다.

 

 


- 4일차
임실 덕치면 구담마을-회룡마을-장구목-동계면 구미마을-구미교-구암정-석산리 마애여래좌상-적성면 시목마을-어은정-적성교-유적교-화탄-유등초등학교

 

 

직선이기를 한사코 거부하고 에스(S)자로 굽이쳐 흐르는 강의 아름다운 곡선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곳. 아름드리 느티나무 그늘 아래 영화 <아름다운 시절> 촬영지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는 언덕배기다. 구담마을은 그렇듯 아름다운 섬진강 풍경을 안고 있는 마을이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아름다움은 회룡마을을 지나 순창 장구목까지 계속된다. 움푹움푹 패인 부드러운 바위들. 거인의 발자국 같은 자리엔 찰랑찰랑 물이 고여 있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쓰다듬어야 저렇듯 출렁이는 물결 모양을 바위에 새길 수 있는 것일까.

그 아름다움이 세상에 발각돼 한때 도난 당했다가 주민들이 눈물겹게 되찾아온 바위도 있다. 이름하야 ‘요강바위’. 높이 2m, 폭 3m에 무게가 무려 15톤. 요강바위의 깊은 속은 작은 동굴 같다.
무엇이든 제자리에 있을 때 빛나는 법. 되찾아온 요강바위가 일러주는 가르침이다. 장구목에서 구미마을로 가는 길은 호젓한 오솔길이다. 구미(龜尾)마을 입구에는 거북이 모양의 자연석과 남근석이 나란히 마을을 지키고 서 있다.
거북바위에는 이 마을의 유래담이 전해온다. 마을 너머에 취함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스님이 맨날 구미마을에 와서 시주를 해갔단다. 스님이 가만 보니 거북이 꼬리가 마을을 향하고 있어 마을은 잘 살고, 절은 빌어먹는 게 아닌가 생각되어 거북이 꼬리를 홱돌려서 절 쪽으로 해놓았단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절이 번성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눈치를 채서 거북이 꼬리를 마을쪽으로 돌려놓으면 밤중에 절에서 또 돌려놓고, 싸움이 되풀이되었다. 그러다 스님이 화가 나서 지팡이로 거북이 머리를 내리치니까 똑 부러져버렸다고 한다. 욕심을 경계하는 이야기다.
구미마을은 대대로 남원양씨가 집성촌을 이루어 600여 년을 살아온 마을. “풍수로 보면 여기가‘금귀몰니(金龜沒泥)’ 터여. 금거북이가 꼬리를 감춘 형상인게 명당이지.”
마을 어르신들의 말씀에 자부심이 넘쳐난다. 마을엔 ‘남원양씨 종중문서’(보물 제725호)가 보관된 보물각도 있다. 고려 공민왕 때 받은 과거 합격증인 홍패와 백패, 조선 명종 때 받은 사령교지 등도 보관돼 있다 한다.
구미교를 건너 옛 구암교 옆으로 난 강둑을 따라가면 구암정(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131호)이다. 구암 양배의 학문과 덕망을 추모하기 위해 1901년에 세운 정자라고 한다.
발품을 좀더 팔면 석산리 마애여래좌상(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184호)을 볼 수 있다. 유적교에 이르러 마을을 거쳐가면서는 줄곧 책여산을 보며 걷게 된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의 모습이 차곡차곡 책을 쌓아놓은 것 같다고 하여 책여산(冊如山)이다.
유등초등학교 앞길에는 정주석(배말뚝)이라고 돌멩이 하나가 우뚝 서 있다. 새끼줄에 고추를 매달아 감아놓았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이 마을은 배가 물을 넘는 형상이어서 배가 떠내려가지 못하도록 정주석을 세웠단다. 마을의 안녕을 바랐던 사람들의 마음이 그 돌에 깃들어 있다.

 

 

 

 

 

 

 

섬진강을 따라 걸으며 만나는 문화재들

 

임실 용암리 진구사지 석등(보물 제267호)

임실 신평면 용암리에 있는 석등으로, 압도적인 크기가 일단 눈길을 모은다. 높이는 5.18m로 흔히 고복형 석등이라 부르는 이형(異形)의 석등중에서도 큰 규모이다.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6.36m)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이며 비례와 균형미도 탁월하다. 크기에 걸맞게 조각 솜씨 또한 오종종하지 않다. 석등이 있는 이곳에는 대좌를 완벽하게 갖춘 석조비로자나불(전라북도유형문화제 제82호)과 철불도 있어 상당한 위세를 떨치던 절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1992년부터 2001년까지 진행된 발굴조사결과 '진구사(珍丘寺)'라는 절 이름이 새겨진 기와와 벽돌과 망새(치미), 금속공예품, 청자, 비석 조각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보물로 지정된 이 석등이다. 절에서 흔히 보는 여느 석등과 달리, 불을 밝히는 화사석(火舍石)의 받침대 기둥이 장구 모양을 띠는것이 가장 큰 특징. 이러한 특징을 지닌 석등을 ‘고복형(鼓腹形) 석등’이라고 부른다. 화엄사 각황전 앞의 석등, 청량사 석등, 개선사터 석등, 실상사 석등도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 고복형 석등이다.


순창 석산리 마애여래좌상(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184호)

순창 적성면 북쪽의 두류봉(545.4m)이 동쪽으로 뻗어내려 섬진강과 만나는 산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높이 2.5m 정도의 평평한 바위 면에 얕은 부조로 새겨져 있는데 오른쪽 대좌부분이 약간 떨어져 나간 것을 제외하면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몸에 비해 크게 표현된 불상의 얼굴, 큼직한 코와 두툼한 입술 등 고려시대 마애불의 조각수법을 잘 보여준다. 토속화된 얼굴속에 깃든 간절한 서원이 오늘에도 전해진다.

 

 

출처; 문화재청